1974년 울릉도 간첩단 조작사건을 다룬 연극 <상처꽃-울릉도 1974>의 제작자 임진택(오른쪽)씨와 연출가 김수진씨가 24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사옥을 찾았다.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우리도 정치인들처럼 악수나 해보자”는 임씨의 말에 웃으며 서로 손을 잡았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연극 ‘상처꽃…’ 제작 임진택·김수진
최근 국가정보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이 드러났지만, 40년 전인 1974년에도 국가정보기관이 조작한 ‘울릉도 간첩단 사건’이 있었다.
유신독재시절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울릉도 섬 주민들과 전북대 교수 등 47명을 중앙정보부 지하 밀실에 강제 구금한 뒤, 온갖 고문을 가해 ‘간첩’, 혹은 ‘간첩과 내통’했다는 허위 사실을 자백받았다. 32명이 기소됐고 그 중 3명은 사형이 집행됐다. 최근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당시엔 그 한달 뒤인 4월3일에 일어난 ‘민청학련과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가려졌고 오랫동안 역사에 묻혀있었다.
극단 길라잡이(대표 양정순)가 ‘울릉도 간첩단 사건’을 연극 <상처꽃-울릉도 1974>로 만들어 4월3일부터 5월31일까지 서울 혜화동 눈빛극장 무대에 올린다. 마당극 연출의 1세대인 임진택(64·극단 길라잡이 예술감독)씨와 일본극단 신주쿠 양산박의 대표인 재일동포 김수진(60)씨가 손을 맞잡았다.
1974년 ‘울릉도간첩단’ 피해자·가족
치유과정 인터뷰해 연극으로 제작
임진택 “자책감·미안한 마음 담아
치유의 연극으로 만들고 싶었다”
김수진 “무관심은 폭력을 되풀이…
무거운 주제 재밌게 풀어내겠다”
정치인 등 60여명 카메오 출연
9월엔 서대문형무소 앞 텐트공연 “지난해 6월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 개소식에 갔다가 울릉도 간첩단 사건 이야기를 처음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치유받는 사람들 중에 이 사건 피해자들과 가족들이 있다는 거에요. 최창남 목사가 2012년 발표한 <울릉도 1974>를 구해 읽고는 몹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분들이 그 오래된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있었는데 그 전에는 간첩의 가족들이라고 해서 어디에도 의지할 데 없고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는 게 가장 충격이었어요.” 연극을 기획한 임진택 예술감독은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40년 전 민청학련 사건으로 고통을 받았으면서도 동시대에 벌어진 사건을 모르고 있었다는 자책감에 견딜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폭력에 짓밟혀 상처받았으면서도 여태껏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피해자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 ‘치유의 연극’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함께 만난 김수진 연출가는 “울릉도 주민들만이 아니라 재일동포들도 많이 겪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재일동포 사업가 서좌영·우영(가명) 형제나 우리가 잘 아는 서승·준식 형제처럼 많은 재일동포들이 간첩조작사건에 휘말렸습니다. 그들 역시 아무도 지지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울릉도는 일본보다 작은 섬이지만 똑같이 한국의 역사 안에서 빠져나간, 그래도 고향이 그리워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은 우리 재일동포 1세대들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울릉도 간첩단 사건’에서 중앙정보부는 재일동포 이좌영씨를 조총련 간첩으로 몰았다. 그는 “권력의 폭력을 무관심하게 생각하면 되풀이된다”라면서 “무거운 이야기이지만 마당극 형식을 가지고 재미나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임 예술감독은 “김수진씨가 재일동포 연출가로서 한국사의 비극적 사건을 열정을 가지고 무대에 올릴 적임자라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연출가로 지목했다”고 귀띔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 김지하씨가 농촌계몽용으로 극본을 쓰고 임진택씨가 연출해 한국 최초의 마당극으로 발표된 <진오귀>가 1975년에 일본에서 공연되었다. 당시 대학생이던 김수진씨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지하 구명운동의 일환으로 재일동포들이 올린 그 공연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 길로 일본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가라 뉴로가 이끄는 극단 상황극장(텐트극장)을 찾아가 연극인생을 시작한다. 그 뒤 1985년 소설가 황석영씨가 마당극 <통일굿> 대본을 들고 일본을 찾았을 때 극단 상황극장의 동료인 김구미자(56)와 함께 출연하면서 임진택씨의 ‘마당극 연출론’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1987년 6월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정의신(57), 김구미자씨 등 재일동포 연극인들과 독자적인 텐트극단인 신주쿠양산박을 만들었다. 그는 “임진택 선생님을 통해서 연극에 발을 들여놓았고 한국적인 연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오랜 인연을 소개했다.
이번 연극의 대본은 극단 길라잡이의 대표 양정순(51)씨가 ‘숨’에서 피해자와 가족들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인터뷰한 것을 바탕으로 썼다. 또 민중판화가 김봉준씨가 미술감독을 맡고, <울릉도 1974>의 원작자이며 민중가요 ‘노동의 새벽’ 등의 작곡가인 최창남 목사가 주제가를 지었다. 노래극 <노동의 새벽>에 참여한 최정배 음악감독이 ‘아름다운 것들’, ‘타박네야’, ‘세노야’ 등 서정적인 치유 곡으로 음악을 꾸민다.
공연에는 배정미, 조상욱, 성형진, 손경원씨 등 40대 초반의 남녀 배우 8명이 노래와 악기를 익혀서 자신이 막 태어났을 시대의 아픔을 표현한다. 특히 함세웅 신부(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 이사장), 인재근 국회의원(고 김근태 의원의 부인), 이명춘 변호사(울릉도사건 담당변호사), 송기인 신부(진실화해위원회 초대 위원장),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배우 문성근 등 60여명이 특별 카메오로 출연한다. 9월께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마당에서 텐트극장으로 공연할 계획이다. 070-8158-3754.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1974년 ‘울릉도간첩단’ 피해자·가족
치유과정 인터뷰해 연극으로 제작
임진택 “자책감·미안한 마음 담아
치유의 연극으로 만들고 싶었다”
김수진 “무관심은 폭력을 되풀이…
무거운 주제 재밌게 풀어내겠다”
정치인 등 60여명 카메오 출연
9월엔 서대문형무소 앞 텐트공연 “지난해 6월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 개소식에 갔다가 울릉도 간첩단 사건 이야기를 처음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치유받는 사람들 중에 이 사건 피해자들과 가족들이 있다는 거에요. 최창남 목사가 2012년 발표한 <울릉도 1974>를 구해 읽고는 몹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분들이 그 오래된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있었는데 그 전에는 간첩의 가족들이라고 해서 어디에도 의지할 데 없고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는 게 가장 충격이었어요.” 연극을 기획한 임진택 예술감독은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40년 전 민청학련 사건으로 고통을 받았으면서도 동시대에 벌어진 사건을 모르고 있었다는 자책감에 견딜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폭력에 짓밟혀 상처받았으면서도 여태껏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피해자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 ‘치유의 연극’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함께 만난 김수진 연출가는 “울릉도 주민들만이 아니라 재일동포들도 많이 겪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재일동포 사업가 서좌영·우영(가명) 형제나 우리가 잘 아는 서승·준식 형제처럼 많은 재일동포들이 간첩조작사건에 휘말렸습니다. 그들 역시 아무도 지지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울릉도는 일본보다 작은 섬이지만 똑같이 한국의 역사 안에서 빠져나간, 그래도 고향이 그리워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은 우리 재일동포 1세대들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울릉도 간첩단 사건’에서 중앙정보부는 재일동포 이좌영씨를 조총련 간첩으로 몰았다. 그는 “권력의 폭력을 무관심하게 생각하면 되풀이된다”라면서 “무거운 이야기이지만 마당극 형식을 가지고 재미나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임 예술감독은 “김수진씨가 재일동포 연출가로서 한국사의 비극적 사건을 열정을 가지고 무대에 올릴 적임자라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연출가로 지목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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