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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조국, 그 굴레에 대하여…

등록 2014-05-07 19:34수정 2014-05-07 21:21

연극 ‘아버지 나라의 여인들’ 공연 장면. 사진 엘지아트센터 제공
연극 ‘아버지 나라의 여인들’ 공연 장면. 사진 엘지아트센터 제공
연극 ‘아버지 나라의 여인들’
폴란드 연출가 ‘얀 클라타’ 작품
홀로코스트서 살아남은 엄마와
자유인 추구하는 딸의 갈등 통해
현대인에게 조국·가족 의미 물어 

검정·빨강 등 원색의 강렬한 무대
오페라·가스펠 등 다양한 음악도
지난달 ‘고음악계의 별’ 조르디 사발의 내한공연을 보러 온 박찬욱 감독을 먼발치에서 본적이 있다. 음악애호가로 유명한 그는 사발이 기획한 자장가 앨범 <닌나난나>의 수록곡을 자신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도 등장시켰다. 영화에는 사발이 연주하고 아내와 딸이 부르는 노래 <마레타(Mareta, mareta no’m faces plorar 엄마, 엄마 날 울리지 말아요)>가 나온다. 엄마 금자와 입양간 딸 제니는 통역이 있어야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사이’다.

이달 16~17일 엘지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폴란드 연극 <아버지 나라의 여인들>의 홍보영상에도 똑같은 노래가 등장한다. 나치의 유대인학살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어머니의 상처와 그로 인한 딸과의 갈등을 다룬 이 연극에서 ‘엄마 엄마 날 울리지 말아요’라는 노래는 모녀간 소통불능을 에둘러 드러낸다. 실제 연극에는 이 노래가 나오지 않지만 이 작품의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

<아버지 나라의 여인들>(보제나 케프 원작, 얀 클라타 연출)은 시적 언어와 상징들로 빼곡하다. 어머니와 딸의 머리카락은 탯줄처럼 하나로 꽁꽁 묶여있다.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만, 서로 결박한 머리카락만 당길 뿐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악마의 시간을 견뎌온 어머니의 트라우마로부터 딸들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가족의 유대는 서로 옥죄는 질긴 속박일 뿐이다. 아무리 풀려 해도 풀리지 않는 머리카락은 이들이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폴란드의 과거와 현재다. 어머니와 딸들이 입은 검은 드레스는 외세에 침탈당한 ‘아버지의 나라’의 깊은 치욕과 상흔을 상징한다. 검은 상처의 조국과 그로 말미암은 검은 상처의 가족이라는 굴레.

폴란드를 대표하는 젊은 연출자 얀 클라타(41)는 관객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에게 국가는, 조국은 무엇인가? 우리는 가족, 국가, 역사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가?’

겉으로 이 작품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아픔과 고난의 기억을 딸에게 강요하면서 자신의 희생을 보상받으려는 폴란드계 유대인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딸의 갈등을 그린다. 하지만 그 뒤에는 애국을 강요하는 조국과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인으로 살고자 하는 전후 세대의 갈등이 웅크리고 있다.

폴란드를 한자로 쓰면 파란(波蘭)이다. 폴란드의 역사는 ‘파란’의 연속이었다.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등에게 분할지배되는 등 끊임없는 전쟁에서 남성들이 죽어갈 때, 여성은 다음 세대를 길러내야 하는 임무를 떠안았다. 희생은 유대인에게 더 가혹했다. 2차대전 폴란드 희생자 600만명 중 유대인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전쟁을 겪은 세대와는 달리, 전쟁과 공산주의에 대한 악몽이 없는 전후세대는 한 가족의 일원으로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역사의 굴레와 책임을 옭아매려는 기성세대와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어째, 우리나라 얘기 같지 않은가?

음악극적 요소를 지닌 이 연극의 또 다른 특징은 눈과 귀를 자극하는 강렬한 무대다. 검은 원피스와 빨간 하이힐을 신은 여인들이 등장한다. 검은색은 상처이고 빨간색은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이다. 어머니와 딸들이 한목소리로 합창하다가 갑자기 각자의 목소리로 노래부른다. 합창은 가족의 유대이고 각자의 노래는 개인의 자율성이다. 이 작품은 줄거리를 알기 쉽게 나열하는 대신, 오페라부터 가스펠까지 다양한 음악과 인상적인 안무를 통해 묵직한 주제를 화려하고 경쾌하게 전달한다.

연출가 얀 클라타는 39살에 폴란드 국립극장의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이 작품으로 수많은 국외 페스티벌에서 작품상과 연출상을 거머쥐었다. ‘우리에게 조국과 가족은 무엇인가’라고 물은 연출가는 그 대답을 관객 몫으로 남겨뒀다. 휴식 없이 1시간 30분 동안 폴란드어로 공연되며 한국어 자막이 제공된다. (02)2005-0114.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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