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지하2층 전시실에 진열된 종묘대제 때의 제례상.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국립고궁박물관 ‘종묘특별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종묘’
역사·제례·음악 등 한자리에
의궤 기록 따라 신실 ‘제사상’ 재현
조상과 교감 위해 덩어리째 바쳐
신실·부엌 훑고 종묘 제례악 마무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종묘’
역사·제례·음악 등 한자리에
의궤 기록 따라 신실 ‘제사상’ 재현
조상과 교감 위해 덩어리째 바쳐
신실·부엌 훑고 종묘 제례악 마무리
그로테스크한 풍경이었다. 금방이라도 비린내가 날 듯한 시뻘건 생고기 덩어리들이 함엔 그득했다. 소 모양, 코끼리 모양, 부릅뜬 눈 모양의 거대한 술동이들도 상 위에 늘어서 주위를 위압했다.
역대 조선 임금이 선왕들에게 바친 종묘의 제사상 풍경은 기묘하다. 엄숙하지만, 으스스한 느낌이 앞서 다가온다. 전시장 한쪽을 채운 제사상은 규모나 양감, 차린 음식의 재료나 모양새 등에서 엽기적이란 인상도 준다. 고기와 생곡식 낟알을 가득 채운 상 말고도 여섯개의 거대 동물모양과 기묘한 문양을 새겨놓은 큰 금속 술항아리를 얹은 술상이 하나 더 앞에 붙는다. 제사상의 주인공은 돼지와 양과 소의 각 부분 고기 덩어리를 큼지막하게 썰어 첩첩이 쌓아놓은 ‘생갑’이란 쟁반이다. 혼백을 보내기 위해 희생한 가축의 생간과 곡식을 함께 태우는 번간로란 화로가 가장자리에 놓인 것도 눈길을 끈다.
지난달 29일 개막한 서울 경복궁 안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2층의 ‘종묘’ 특별전에서 가장 흥미로운 볼거리는 종묘 각 신실에 놓인 제사상을 재현한 공간이다. 실제 종묘제례에 쓰는 제기들을 조선의 의궤와 각종 종묘 기록에 따라 그대로 살렸기 때문에 옆에서 직접 지켜보는 듯한 생동감을 느끼게 된다. 제상 앞 바닥에는 구멍이 뻥 뚫렸다. 제사 시작 때 구멍에 울창주란 술을 흘려 지하에 깃든 영령인 백(魄)을 불러올렸다고 한다. 고대 주나라에서 연유한 유교 제례의 극한을 기묘하게 보여주는 제상 풍경이다.
현재 정전 내부 신실은 19실이며, 별묘인 영녕전 신실은 태조의 4대조를 모신 중앙 4실을 포함해 16실에 이른다. 임금은 새벽 1시부터 다음날 동이 훤하게 튼 뒤인 오전 8시 넘어까지 계속 선왕들의 신실을 옮겨가며 제사를 치렀다. 정전에 들기 전에 목욕재계하고, 임시거처인 망묘루에서 조상들 업적을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런 과정 자체가 대단한 체력과 정신적 수양을 요구하는 것이었기에, 조선왕실은 관련 매뉴얼 만들기에 공을 들였다. 종묘 의례와 관련해 왕실행사 기록집인 의궤에 행사도를 남겼고, 병풍 등의 도설도 만들었다. 실제로 전시장에는 사람 키만한 책인 <종묘등록서>가 나와 있다. 1705년 숙종 31년부터 1789년 정조 13년까지 종묘 각실 보관물의 관리 변화 상황은 물론, 봉안된 책과 보인(인장) 등의 세부와 제작연대 등이 칼같이 엄정한 필체로 낱낱이 적혀 있다.
우리는 종묘를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물질적 공간으로 기억한다. 신실 19칸의 공간을 단일지붕 아래 수백년간 길게 확장해나간 이 엄숙한 건축을 지배한 것은, 유교 제례의 도덕률이 말하듯 우주와 땅에서 온 망자(혼백)와 만나 이룬 합일의 정신이었다. 합일과 교감을 하려면 덩치 큰 음식들로 조상들을 즐겁게 해서 분위기를 풀어주어야 한다. 익힌 고기, 생고기 덩어리를 조상에게 통째로 바치는 ‘궤식’(饋食)을 제사의 핵심 절차로 중시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다른 유물들 보는 재미도 커서 동선은 술술 풀려간다.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의식인 ‘부묘’ 관련 유물과 행렬도를 필두로, 임금이 선왕을 생각했던 애모의 공간인 망묘루, 사계절 종묘의 다양한 대형 영상과 제례 장면 애니메이션, 제사 음식을 준비했던 ‘신들의 부엌’ 전사청 엿보기, 성찰과 회고의 음악인 보태평 같은 종묘제례악 곡까지 산책하듯 훑어볼 수 있다. 차분한 감색으로 마감한 3개실에 제기, 제의를 담은 의궤, 그림 병풍, 가구, 현판, 악기, 주렴 등 다양한 종류의 유물 330여 점과 영상, 사진 등을 입체적으로 엮은 이 전시는 종묘제례악의 은은한 가무곡을 들으면서 마무리된다. 한바퀴 돌면 종묘에 얽힌 지식과 사실들을 머리와 몸으로 두루 사색하고 느끼게 되는 수작 전시다. 정교한 도판과 짜임새 있는 편집으로 전시를 녹여넣은 도록도 종묘에 관한 최고의 개설서로 손색이 없다. 8월3일까지. (02)3701-7631, 7637.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임금과 왕비의 신위가 봉안된 신실 앞에 곡식과 생고기 등을 바치는 장대한 제사상을 실물 그대로 재현했다.(왼쪽) 종묘제례상 앞에 별도로 차리는 준소상(술상)에 놓는 제기들. 각각 네개씩 술동이가 보인다. 코끼리·소모양을 하거나 표면에 산이나 닭, 봉황이 새겨졌다. 술동이들 사이에 있는 것이 술잔(작)이다. 모두 고대 주나라의 청동제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오른쪽)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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