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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원로 극작가 이강백의 화두 “우리는 어떤 악기인가”

등록 2014-05-15 19:13

연극 <챙>은 연극계의 거목으로 평가받는 극작가 이강백의 작품이다. 산울림 제공
연극 <챙>은 연극계의 거목으로 평가받는 극작가 이강백의 작품이다. 산울림 제공
심벌즈 연주자 그린 ‘챙!’ 무대 올려
“오케스트라는 사회 축소판이죠”
바이올린 주자의 활이 일제히 허공을 찌를 때도, 호른 주자의 볼이 찢어질 듯 부풀 때도 그는 잠자코 있었다. 그렇게 1악장, 2악장, 3악장이 지나갔다. 침묵은 길었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신세계로부터> 4악장 64번째 마디. 마침내 심벌즈가 “챙!”하고 절정의 순간을 울렸다.

개관 29돌을 맞은 소극장 산울림이 <챙!>을 무대에 올렸다. 한국연극계의 거목 이강백 작, 임영웅·심재찬 연출의 이 작품은 사회의 축소판인 오케스트라와 심벌즈 주자를 통해 인생과 예술의 의미를 묵직하게 짚어낸다.

가상의 오케스트라단 심벌즈 주자 함석진이 비행기 사고로 실종된지 1년, 단원들은 그를 추억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지휘자와 단원 그리고 그의 아내는 지상에 심벌즈만 남기고 떠난 함석진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꺼내놓는데….

극작가 이강백(67·서울예대 극작과 교수)은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오케스트라에서 어떤 악기인가”라고 묻는다. 그는 우화적 표현기법으로 현대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한국현대 희곡작가의 대표주자다.

소극장 산울림이 가상의 심벌즈 연주자 함석진의 삶을 통해 인생과 예술, 협력과 배려의 의미를 살펴보는 연극 <챙>을 선보였다. 산울림 제공
소극장 산울림이 가상의 심벌즈 연주자 함석진의 삶을 통해 인생과 예술, 협력과 배려의 의미를 살펴보는 연극 <챙>을 선보였다. 산울림 제공
“오케스트라는 여러가지 악기들이 모여 있다는 점에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각 악기의 독특한 음색이 가장 잘 살아나도록 여러 악기가 서로 협력하고 배려한다. 그것이 없다면, 오케스트라는 아름다운 화음을 내지 못하고 듣기 싫은 불협화음만 내게 된다.” 그는 협력과 배려를 강조했다.

그런데 왜 꼭 심벌즈였을까. 이강백은 교향악을 들을 때마다 “챙!”하고 울리는 게 어떤 악기인지 궁금했다고 한다. 현악기나 관현악기는 아닌 것 같은데, 타악기 중에서 가끔 연주하는 심벌즈 같았다고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1987년 독일에 어학연수를 갔었는데 민박집에서 심벌즈 연주자가 되려는 음대생과 한 방을 썼다. 그는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고 민박집 거주자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그런데 오케스트라 연주에는 심벌즈가 겨우 한 두번 울리거나 아예 울리지 않는다. 온갖 미움과 냉대를 받는 줄 알면서도 심벌즈 연주자가 되려 노력하는 그에게 강한 매력을 느꼈다.”

작가가 그 음대생한테 안쓰러운 마음을 넘어 심벌즈를 작품으로까지 만든 까닭은 뭘까. 극중에서 함석진이 단원들에게 전하는 유언을 들어보자. “(오케스트라 연주 동안) 거의 대부분 심벌즈는 침묵합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내가 침묵 속에서도 연주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언젠가 나는 영원히 침묵하겠지요. 절정의 순간 챙! 울리는 심벌즈 소리가 영원한 침묵도 하나의 오케스트라 음악임을 증명할 것입니다.”

관객은 스스로 답변하도록 내몰린다. 나는 어떤 악기인가. 화려하고 경쾌한 바이올린인가, 아니면 강렬한 트럼펫인가. 그도 아니면 묵직한 콘트라베이스인가. 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절정의 한 순간을 맞는 심벌즈도 있다는 것을 알아 두시라.

개관 29년 기념작답게 산울림을 창단한 연출가 임영웅과 산울림 출신 연출가 심재찬이 한국연극을 대표하는 이강백과 최상급의 호흡을 맞춘다. 여기에 관록의 배우 한명구와 손봉숙의 연기도 모자람이 없다. 절정이나 파국같은 높낮이는 크지 않다. 시종 잔잔하지만 생각하게 하는 연극이다. 6월8일까지. (02)764-7462.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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