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앞에 선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고선웅 연출가(오른쪽)와 한승석 작창. 이들은 “새로운 옹녀의 시대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연출 고선웅·작창 한승석
연출 고선웅·작창 한승석
제대로 만났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연극 <푸르른 날에>에서 비극적 역사를 웃음으로 녹여낸 스타연출가 고선웅, 명창 안숙선의 애제자이자 굿음악·타악까지 섭렵한 소리꾼 한승석. 다음달 무대에 오르는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를 만들면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마치 십년지기처럼 가까워 보였다. 대본과 연출을 맡은 고선웅과 작창(作唱)과 작곡을 맡은 한승석(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을 27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이번에 한 선생님이 없었다면 작품이 미궁에 빠질 뻔했어요. 배우들의 내공을 뛰어넘는 작창이 나와야 작품이 잘 되죠.” 창극이 처음인 고선웅이 운을 뗐다. 하긴 판소리가 현재 다섯바탕만이 남아있고, 유실된 일곱바탕의 하나인 <변강쇠전>의 창을 복원하려면 그 고민이 오죽했을까. “소리(창)의 텍스트는 박동진 선생 것밖에 없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고 선생님 대본의 정서와 맞지않아, 2박3일 합숙까지 하며 창을 모두 새로 만들었어요. 물론! 방은 따로 썼지요.” 한승석이 말했다. 옹녀의 성격이 ‘색녀’가 아니라 ‘삶을 개척하는 여성’으로 그린 대본에 맞춰 전면적 작창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판소리 ‘변강쇠전’ 비틀어 창극 제작
기존 이미지 벗고 새로운 옹녀 탄생
역사적 사실·떠돌이 인생 담아
판소리부터 대중가요까지 활용
한 “2박3일 합숙하며 전면 작창”
고 “한 선생이 작품 미궁서 구해”
사실 <변강쇠전>은 외설과 음란의 상징이었다. 특히 변강쇠와 옹녀의 성기를 묘사한 부분이 그렇다. “강쇠놈이 여인의 두 다리 번쩍 들어 옥문관을 굽어보는구나. (변강쇠의 창)늙은 중의 입일는지 터럭은 돋고 이는 없네. (옹녀의 창)동네 어른 만났는가, 어린 아이 인사하듯 꼬박꼬박 까딱까딱.” 이런 <변강쇠전>이 인생을 개척하는 옹녀의 옹골찬 모습과 떠돌이 인생의 회한을 담은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정력남 변강쇠에 고정된 시선에 마침표 점을 찍고, 새로운 옹녀의 시대를 연 것이다. “변강쇠전을 보는데, 작품이 제게 말을 걸어왔어요. 변강쇠는 장승 곁에서 ‘일’을 치렀다는 이유로 장승들의 미움을 받아 중간에 죽으니까, 끝까지 살아남은 옹녀를 주인공으로 삼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상부살(서방 잡아먹는 살)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원작대로 옹녀가 변강쇠 초상을 치르는 데 집중하는 대신, 장승들과 전쟁을 치르게 한 거죠.” 고선웅은 옹녀에게 남성 지배층에 반발하는 캐릭터를 심었다. 또 옹녀의 탄생 배경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같은 역사적 사실을 입히고, 떠돌이 인생의 회한을 담아냈다. 헐벗은 옹녀에게 ‘휴머니티의 옷’을 입힌 것이다. “판소리 다섯바탕이 살아남은 이유는 주인공들이 고난을 이겨내고 인간다움을 지향하는 내용입니다. 변강쇠전 등 일곱바탕이 사라진 이유는 기본적으로 ‘교정의 대상’(본받을만한 인물이 못된다는 의미)이라는 점이죠. 그런데 고 선생님이 인간다운 인물로 재탄생시켰어요. 옹녀의 어머니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난리통에 겁탈당하면서 옹녀를 낳게 되는데, 여기서 한이 생기는 거죠. 이 부분에서 무릎을 탁 쳤어요. 옹녀의 성격이 한순간에 확 바뀌는 부분이죠.” 한승석의 설명이다.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판소리를 주로 하되, 민요, 비나리, 굿음악, 시조, 심지어 대중가요까지 활용한다. 창극의 매력은 눈대목, 오페라로 치면 아리아다. “옹녀가 육체관계는 이미 했지만 진짜 자기 마음의 문을 여는 대목의 사랑가인데요.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가가 ‘사랑사랑 내 사랑아~’라고 부른다면 여기서는 ‘사어라앙 사어라앙 내 사어라앙아~’ 라고 계면조로 부르는 거예요. 사람들이 어! 사랑가가 왜 이리 슬프지? 이럴 수 있는데, 옹녀의 인생을 따져보면 슬프고 회한이 많은 게 맞아요. 연출 선생님한테 만약 이걸 바꾸면 작창 사표 낸다고 협박조로 얘기했어요.” 한승석이 얘기하자 고선웅이 “‘그래도 좋네’라는 눈대목도 좋아요, 싸~한 게”라고 말을 보탠다. 이 사랑가는 세 번 정도 연주되고 중간마다 배경음악으로도 쓰인다. 메인 테마곡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은 나그네길~”로 알려진 최희준의 <하숙생>도 등장한다. 트로트 반, 소리 반으로 섞었다. “제가 그 노래를 너무 좋아해요. 펜을 사면 ‘인생은 나그네길’이라고 먼저 써요. 변강쇠하고 옹녀가 계속 떠돌이인생을 사니까 이게 민중의 삶을 대변했다, 애환을 담았다고 할 수 있어요.” 고선웅이 평소 좋아하는 곡이 마침 창극의 주제와도 맞아떨어진 셈이다.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은 ‘예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 고선웅을 콕 찍어 대본과 연출을 맡긴데다, 한승석은 6년 동안 국립창극단에 몸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은 1968년생 동갑이다. 한창 연습중인 두 사람에게서 이번 작품에 대한 열정이 일찍 찾아온 더위보다 강렬했다. 6월11일~7월6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만~5만원. (02)2280-4114~6.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기존 이미지 벗고 새로운 옹녀 탄생
역사적 사실·떠돌이 인생 담아
판소리부터 대중가요까지 활용
한 “2박3일 합숙하며 전면 작창”
고 “한 선생이 작품 미궁서 구해”
사실 <변강쇠전>은 외설과 음란의 상징이었다. 특히 변강쇠와 옹녀의 성기를 묘사한 부분이 그렇다. “강쇠놈이 여인의 두 다리 번쩍 들어 옥문관을 굽어보는구나. (변강쇠의 창)늙은 중의 입일는지 터럭은 돋고 이는 없네. (옹녀의 창)동네 어른 만났는가, 어린 아이 인사하듯 꼬박꼬박 까딱까딱.” 이런 <변강쇠전>이 인생을 개척하는 옹녀의 옹골찬 모습과 떠돌이 인생의 회한을 담은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정력남 변강쇠에 고정된 시선에 마침표 점을 찍고, 새로운 옹녀의 시대를 연 것이다. “변강쇠전을 보는데, 작품이 제게 말을 걸어왔어요. 변강쇠는 장승 곁에서 ‘일’을 치렀다는 이유로 장승들의 미움을 받아 중간에 죽으니까, 끝까지 살아남은 옹녀를 주인공으로 삼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상부살(서방 잡아먹는 살)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원작대로 옹녀가 변강쇠 초상을 치르는 데 집중하는 대신, 장승들과 전쟁을 치르게 한 거죠.” 고선웅은 옹녀에게 남성 지배층에 반발하는 캐릭터를 심었다. 또 옹녀의 탄생 배경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같은 역사적 사실을 입히고, 떠돌이 인생의 회한을 담아냈다. 헐벗은 옹녀에게 ‘휴머니티의 옷’을 입힌 것이다. “판소리 다섯바탕이 살아남은 이유는 주인공들이 고난을 이겨내고 인간다움을 지향하는 내용입니다. 변강쇠전 등 일곱바탕이 사라진 이유는 기본적으로 ‘교정의 대상’(본받을만한 인물이 못된다는 의미)이라는 점이죠. 그런데 고 선생님이 인간다운 인물로 재탄생시켰어요. 옹녀의 어머니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난리통에 겁탈당하면서 옹녀를 낳게 되는데, 여기서 한이 생기는 거죠. 이 부분에서 무릎을 탁 쳤어요. 옹녀의 성격이 한순간에 확 바뀌는 부분이죠.” 한승석의 설명이다.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판소리를 주로 하되, 민요, 비나리, 굿음악, 시조, 심지어 대중가요까지 활용한다. 창극의 매력은 눈대목, 오페라로 치면 아리아다. “옹녀가 육체관계는 이미 했지만 진짜 자기 마음의 문을 여는 대목의 사랑가인데요.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가가 ‘사랑사랑 내 사랑아~’라고 부른다면 여기서는 ‘사어라앙 사어라앙 내 사어라앙아~’ 라고 계면조로 부르는 거예요. 사람들이 어! 사랑가가 왜 이리 슬프지? 이럴 수 있는데, 옹녀의 인생을 따져보면 슬프고 회한이 많은 게 맞아요. 연출 선생님한테 만약 이걸 바꾸면 작창 사표 낸다고 협박조로 얘기했어요.” 한승석이 얘기하자 고선웅이 “‘그래도 좋네’라는 눈대목도 좋아요, 싸~한 게”라고 말을 보탠다. 이 사랑가는 세 번 정도 연주되고 중간마다 배경음악으로도 쓰인다. 메인 테마곡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은 나그네길~”로 알려진 최희준의 <하숙생>도 등장한다. 트로트 반, 소리 반으로 섞었다. “제가 그 노래를 너무 좋아해요. 펜을 사면 ‘인생은 나그네길’이라고 먼저 써요. 변강쇠하고 옹녀가 계속 떠돌이인생을 사니까 이게 민중의 삶을 대변했다, 애환을 담았다고 할 수 있어요.” 고선웅이 평소 좋아하는 곡이 마침 창극의 주제와도 맞아떨어진 셈이다.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은 ‘예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 고선웅을 콕 찍어 대본과 연출을 맡긴데다, 한승석은 6년 동안 국립창극단에 몸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은 1968년생 동갑이다. 한창 연습중인 두 사람에게서 이번 작품에 대한 열정이 일찍 찾아온 더위보다 강렬했다. 6월11일~7월6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만~5만원. (02)2280-4114~6.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