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의 색종이 연작들을 집대성한 런던 테이트모던 기획전을 찾은 관객들이 마티스의 색종이 대작 ‘잉어와 잉꼬’ 연작을 보고 있다.
런던 테이트모던 ‘마티스 기획전’
재즈 연작·스테인드글라스 작품 등
말년 ‘색종이 걸작’ 수소문 집대성
재즈 연작·스테인드글라스 작품 등
말년 ‘색종이 걸작’ 수소문 집대성
20세기초 서구 미술판을 휘젓고 다닌 입체파 거장 파블로 피카소(1881~1973)에겐 딱 한사람 두려워하는 맞수가 있었다. 11살 위 형님이자, 친구였던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1869~1954)다. 법학도 출신으로 고고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마티스는 야수파라는 색채 지상주의, 근대색채회화의 비조로 꼽힌다. 그림에서 어느 것하나 남에 빠질 것 없다는 자존심이 하늘을 찔렀던 피카소지만, 색채의 마술사라는 마티스의 감각적 내공 앞에선 고개를 숙여야했다. 두 거장은 각자의 화폭에서 무한의 자유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피카소가 형태를 마음껏 주물러 듣도보도 못한 선과 형을 창안했다면, 마티스는 자연과 문명의 질서에 규정되지 않은 색깔의 무한한 자유를 추구했고, 마침내 만년 불세출의 걸작으로 일가를 이룬다. 피카소가 “그는 뱃속에 태양을 품고있다”는 찬사를 바치게 만든 마티스 말년의 색종이 연작들이다.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인 영국 런던이 마티스의 색종이 열기로 뜨겁다. 화력발전소 건물을 개조한 리모델링으로 유명한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그의 색종이 명작들을 집대성한 기획전 ‘앙리 마티스:더 컷-아웃츠’ (9월7일까지)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전시는 이미 4월17일 개막했지만,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관객들로 인산인해다. 출품작들은 과슈(불투명 수채)물감을 입힌 색종이를 일일이 오려 붙여 작업한 크고 작은 ‘커팅 아우츠(cutting outs)’ 130여점이다. 1937년 관절염과 각종 지병으로 더이상 붓질을 할 수 없게 되자 대신 가위를 들고 시작한 것들이다. 1954년 니스에서 숨질 때까지 17년 동안 혼을 불태우며 재즈 악보, 스테인드 글라스, 태피스트리, 책 표지, 장식화 등 미술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꽃피운 마티스표 색종이 연작들의 찬란한 잔치라 할 수 있다.
20년 이상 테이트모던 관장을 맡고 있는 니콜라스 세로타 경이 진두지휘한 이 전시는 수년동안 세계 곳곳에 흩어졌던 마티스의 색종이 걸작들을 수소문해 한데 모은 기념비적인 전시다. 무려 14개의 전시실에 각각 소주제를 붙여 거장이 다양한 형태로 디자인하고 고안한 색종이 연작들을 시기별로 나눠 선보이고 있다. 춤추는 무희나 재즈연주자, 해초 등을 색색의 종이조각들로 콜라주한 작품들은 국내에서도 간간이 일부가 전시되곤 했지만, 색종이 작업의 초창기부터 타계 때까지의 양식의 변모상을 생생한 실물 작업과 스케치, 작업 광경을 찍은 천연색 기록영화들을 통해 총체적으로 조망한 전시는 전무후무하다. 재즈의 선율과 음색을 블루톤의 배경 위에 색점과 인간을 표현한 유명한 재즈연작과 그 콘셉트를 적은 글씨 메모들과 자유롭게 춤추는 누드상들이 초반부에 명멸한다면, 중후반부는 형상조차 벗어나 색종이로 고도의 추상세계로 진입하는 거장의 마지막 흔적을 보여준다. 특히 전시의 끝인 14번방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상징하는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색과 빛이 녹아드는 황홀경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관람비용이 18파운드 (한화 3만원)나 되지만, 이외에도 ‘시와 꿈’‘구조와 명확성’‘전화된 비전들’ 등 무료로 볼 수 있는 4개의 근현대 미술 기획전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려 현대미술의 성찬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전시다.
장소와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을 혁파하는 마티스의 작품은 백색의 전시공간과 액자에 갇힌 것만이 미술이 아니라는 진리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런던/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1950년대 니스 자택에서 휠체어를 타고 색종이 작업 중인 말년의 마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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