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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불륜 남녀의 재회…‘치정’ 아닌 ‘정치’ 문제

등록 2014-06-23 18:40

연극 <스카이라잇>(데이비드 헤어 작, 최용훈 연출) 사진 컬티즌 제공
연극 <스카이라잇>(데이비드 헤어 작, 최용훈 연출) 사진 컬티즌 제공
리뷰 l 스카이라잇

90년대 신자유주의 광풍의 영국
‘지금 여기’의 먹고사는 얘기로
불륜을 한꺼풀 벗기자 ‘치정’이 아니라 ‘정치’가 드러났다.

눈 내리는 밤, 3년 만에 재회한 50대 사업가와 30대 빈민학교 여교사. 지금은 세상을 등진 사업가의 아내가 둘 사이를 눈치채자 30대 여성은 그를 떠났었다. 고급 레스토랑 프렌차이즈 사업가 톰(이호재 분)과 한때 직원이자 연인이던 카이라(오지혜 분)는 재회의 밤을 함께 보낸다. 남녀의 설렘과 떨림은 빼곡하다. 그들의 떨림에도, 둘 사이에는 결코 메울 수 없는 틈이 있다. 이달 12일 막이 오른 연극 <스카이라잇>(데이비드 헤어 작, 최용훈 연출)은 불륜 뒤에 도사린 ‘정치’를 탐색한다. 둘 사이엔 남성과 여성, 진보와 보수, 신세대와 구세대라는 갈등의 골이 깊다.

톰은 결코 카이라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제공했던 안락한 식사를 거부하고 카이라가 왜 떠났는지, 빈민학교 교사와 마찬가지로, 사회복지사, 보호관찰관, 상담사가 왜 사회에 필요한지. 그는 비록 직원들을 구조조정하지만 대출이자에 허덕이면서도 ‘부를 창출하는’ 기업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데도 ‘고얀 놈들! 이런 나를 존경하지 않는단 말이지.’ 이호재는 차분하면서도 마초적이다.

카이라는 3년 전 톰을 떠날 때의 그가 아니다. “기름진 음식들을 배불리 먹던 당신의 레스토랑을 떠난 다음에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걸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죠.” 그가 다니는 학교 학생의 40%가 이주노동자의 자녀다. “이스트 햄, 알잖아 그 동네. 다 좋은 아이들이라고는 말 못 하겠다. 그래도 걔들은 성공에 목매진 않아. 그래서 그런가,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 실업수당 타는 데 스펙은 필요없으니까.” 오지혜는 호소력이 컸다.

영국을 대표하는 좌파작가 데이비드 헤어는 이미 <에이미>(2010년)와 <은밀한 기쁨>(2014년)을 통해 국내 관객과 만났다. 채광창을 뜻하는 <스카이라잇>은 그가 1990년대에 집필했다. 이 작품은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휩쓴 영국 사회의 갈등구조를 파헤친다.

그런데 이상하다. 1990년대 영국이 2014년 한국 같다. 정리해고, 교원노조, 복지논쟁 등. 성수정 번역과 최용훈 연출의 힘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은유와 디테일로 가득한 원작을 생활어로 옮기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의 관객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호재는 2시간이 넘는 연극을 밀도있게 몰고 갔다. 객석이 커다란 식빵이라면, 60~70대 관객들이 곳곳에 건포도처럼 박혀 있었다. 최근 객석에서 이렇게 노년 관객의 비중이 높은 걸 본 적이 없다. 이호재라는 대배우를 보러 온 것이다. 사실 그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많은 대사를, 이렇게 쉬운 평상어로 전달하기 어려웠다. 식빵 같은 객석에는 파스타 냄새도 풍겼다. 오지혜가 직접 요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니, 이 연극은 먹고사는 얘기!

빵과 장미가 놓인 카이라의 아침 식탁에 햇살이 비치면서 연극은 끝난다. ‘빵과 햇살’은 ‘밥과 꿈’으로 읽힌다. ‘빵과 장미’는 켄 로치의 영화처럼 ‘밥과 인간다운 삶’으로 읽힌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컬티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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