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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김추자의 흐느낌·아찔한 몸짓…나이 잊은 장노년들 ‘뜨거운 떼창’

등록 2014-06-29 19:22수정 2014-06-29 21:15

33년 만에 돌아온 디바 김추자(가운데)가 28일 저녁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컴백 공연에서 열창하고 있다.
33년 만에 돌아온 디바 김추자(가운데)가 28일 저녁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컴백 공연에서 열창하고 있다.
33년만의 복귀무대 가보니

김추자 나오자 3000여명 탄성
환갑 넘어도 카리스마는 여전

늦기전에·김상사…히트곡 메들리
관객들 앞으로 몰려나와 따라불러
공연장에서 그렇게 많은 장노년층을 본 건 처음이었다. 28일 저녁 김추자(63)가 33년 만에 복귀해 선보이는 공연 ‘늦기 전에’가 열리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 공연장 앞은 삼삼오오 모여 얘기꽃을 피우는 장노년층 관객들로 가득했다. 공연장에 들어갈 때 한 건강과즙음료 업체가 시음용 음료를 나눠줬다.

‘10, 9, 8, 7….’ 무대 뒤 영상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곧이어 1970년대 젊은 김추자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이 흑백 영상으로 비쳤다. 관객들의 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자신들의 청춘도 겹쳐졌으리라. 순간 무대 아래로부터 2014년의 김추자가 솟아오르는 발판을 딛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에는 알록달록한 밴드를 둘렀고, 검은색의 아방가르드한 옷을 입고 있었다. 3000여 관객은 커다란 박수와 환호성으로 반겼다.

첫 곡 ‘몰라주고 말았어’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달 초 발표한 34년 만의 새 앨범 <이츠 낫 투 레이트…몰라주고 말았어>의 타이틀곡이다. 오랜만의 무대에 긴장했는지 노래하는 목소리가 트이지 못한 것처럼 들렸다. 계단을 내려오며 노래하다가 중간에 주저앉아 몸을 흔들었다. “대체 얼마 만에 나온 거냐?”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옆 사람과 이렇게 속삭였다.

두번째로 신곡 ‘가버린 사람아’를 부르면서 김추자는 긴장을 풀고 왕년의 디바로 돌아왔다. 허스키한 목소리는 더욱 카랑카랑해졌고, 몸짓은 더욱 과감해졌다. 급기야 계단 꼭대기에 올라 벌렁 누워서는 다리를 브이(V)자로 벌리며 꼿꼿이 추켜세웠다. 객석에 침묵이 흘렀다. 1970년대 당시 김추자가 무대에서 엉덩이를 흔들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찔러댈 때의 충격을 다시 한번 받은 듯했다.

사회를 맡은 방송인 오상진이 무대에 올랐다. 근황을 묻는 오상진의 질문에 김추자는 “요즘 ‘오랜간만’이라는 말을 그 누구보다 많이 들었다. 음악도 좋지만, 애미 노릇과 가정살림도 음악 못지않다고 생각하며 잘 살았다”고 말했다.

추억의 히트곡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영상으로 금빛 미러볼이 비치고, 무대에는 붉은 옷의 여성 댄서들이 올라왔다. 김추자는 ‘거짓말이야’,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등 흥겨운 곡들로 분위기를 달궜다. ‘…김 상사’를 부를 땐 군복을 입은 남성들이 올라와 절도 있는 율동을 하기도 했다. 김추자는 거수경례를 하며 노래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빠르고 열정적인 노래를 잇따라 부르느라 힘이 빠졌는지 노래 음정이 흔들리고 불안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무인도’의 폭발적이고 허스키한 고음이 뿜어내는 카리스마는 불안감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막판에 “파도여~”를 부를 때는 흐느끼는 듯한 떨림 창법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후회’, ‘커피 한잔’, ‘빗속의 여인’, ‘미련’, ‘꽃잎’까지 이어진 히트곡 퍼레이드에 관객들은 시곗바늘을 되돌린 듯한 분위기로 한껏 들떠올랐다. ‘꽃잎’은 노래가 끝난 뒤 이어진 밴드의 후주가 압권이었다. 음악감독 송홍섭(베이스)을 비롯해 한상원(기타), 정원영(건반), 손성제(색소폰) 등 내로라하는 연주자들이 뭉쳤다. 이들은 하루 8시간 이상씩 연습하며 김추자의 복귀 무대를 준비했다.

‘봄비’(박인수)를 떠올리게 하는 발라드 신곡 ‘고독한 마음’과 트로트 성향의 신곡 ‘하늘을 바라보소’에 이어 ‘님은 먼 곳에’ 등 애절한 히트곡을 부르자 객석이 촉촉해지는 것 같았다. 애잔한 노래를 부를 때조차 김추자는 고개를 뒤로 한껏 젖히거나 사자갈기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음악에 심취한 듯한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공연 막바지에 오상진이 “오늘 공연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기분이 참 좋았어요.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예술을 남긴다고 합디다. 그동안 (가정을 꾸리며) 할 일을 해놓았으니, 이제는 예술을 제대로 해보려고요.”

이날 공연에선 후배 가수들의 축하 무대도 열렸다. 솔 가수 바비킴은 “저도 데뷔 20년을 맞았는데, 음악이 힘들고 지겨워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오늘 부모님과 비슷한 나이의 김추자 선배님의 열정적인 무대를 보고 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들국화의 전인권은 “우리 민족에게 자유란 걸 알려준 분이다. 옛날에도 대한민국을 흥분시켰고 앞으로도 흥분시키길 기대한다”며 ‘그것만이 내 세상’을 바치겠다고 했다.

인순이는 객석에 있다가 무대로 올라와 커다란 꽃바구니를 바쳤다. 김추자는 따뜻한 포옹으로 후배를 반겼다. 인순이는 “우리 시대의 전설이자 저의 우상이었다. 노래 처음 시작할 때 선배님의 노래로 연습을 했다. 당신의 열정과 용기에 진심으로 존경을 보낸다”고 말했다. 이에 김추자는 인순이의 볼을 가볍게 꼬집으며 “내가 33년 만에 노래하잖아. 인순이 무대를 보니 시원하고 에너지 넘치는 게 참 좋은데, 나이 들었을 때를 대비해 느린 발라드로 전향할 필요도 있어”라고 농담 섞인 조언을 했다.

‘늦기 전에’를 마지막 곡으로 부르고 사라진 김추자는 박수가 끊이지 않자 다시 나와 앙코르 무대를 선사했다. ‘님은 먼 곳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거짓말이야’ 등 히트곡 메들리를 한참 이어갔다. 나이를 잊은 관객들은 앞으로 몰려나와 노래를 따라 불렀다. 공연장의 ‘떼창’ 문화는 젊은이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이에스피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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