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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베를린필 마스터가 청각장애 꿈나무에 전한 한 수
“클라리넷, 노래하듯 불어보렴”

등록 2014-07-07 19:09수정 2014-07-07 20:37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주자 발터 자이파르트가 지난 6일 오후 인천 도화동 이건창호 본사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에서 인공와우수술을 받은 손정우군을 지도하고 있다. 사랑의달팽이 제공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주자 발터 자이파르트가 지난 6일 오후 인천 도화동 이건창호 본사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에서 인공와우수술을 받은 손정우군을 지도하고 있다. 사랑의달팽이 제공
윈드퀸텟 목관 5중주단 가르침에
인공달팽이관 수술 학생들
“가문의 영광” 자신감도 활짝
백발의 발터 자이파르트는 미간을 좁히며 소년의 클라리넷 선율에 귀를 세웠다. “브라보, 브라보!”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주자 자이파르트는 박수를 쳤다. 세심하고 따뜻한 조언이 이어졌다. 연주를 마친 손정우(17·서울 동북고)는 청각장애를 안고 태어났지만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통해 잃어버린 소리를 찾은 클라리넷 연주자다. 자이파르트는 “오페라가수가 노래를 하듯이 클라리넷을 불어보렴. 이탈리아 사람들은 발음이 빠르기 때문에, 스타카토를 연주할 때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듯이 혀놀림을 빨리해야 한단다”라고 했다. 그는 정우와 악보를 번갈아 쳐다봤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를 가르치는 장면 같았다. “자, 이제 다시 연주해볼까?” 대가의 말에 정우는 크게 한번 심호흡을 했다. 다시 두 볼을 부풀렸다. 불과 몇 분 새 음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지난 6일 인천시 도화동 이건창호 본사에서 ‘베를린필하모닉 윈드퀸텟 목관 5중주단’과 청각장애 학생들로 구성된 ‘사랑의 달팽이 클라리넷 앙상블’의 마스터 클래스가 진행됐다. 해마다 무료음악회를 여는 이건창호가 제25회 이건음악회 초청 연주자들과 청각장애 학생들의 만남을 주선했다.

“정말 저에게는 가문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기술적인 것보다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음악성을 배우고 싶어요.” 정우는 “제 연주로 저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이유와 희망을 얻게 하고 싶고, 음대에 진학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여덟살 때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받은 정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클라리넷을 잡았다. 자연음이 아닌 기계음으로 들어야 하는 핸디캡을 딛고 실력은 나날이 늘었다. 비장애 학생들과 겨뤄 2011년 전국학생음악콩쿠르에서 특상, 올해에는 지난달 서울오케스트라콩쿠르에서 고등부 클라리넷 3등을 차지했다.

클라리넷은 여러 악기 중 가장 사람의 음색과 비슷하다고 한다. 사람을 안아주는 따뜻한 느낌이다. 의사들도 청각장애인들의 재활치료에 클라리넷을 권한다. 건강한 청력을 가진 이들이 들을 수 있는 음역은 20~2만 헤르츠인데,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받으면 500~2000 헤르츠 음역만 들린다고 한다. 정우는 잘 안 들리는 음역의 곡은 열심히 외우고, 상상력과 느낌으로 채운다.

다른 목관악기에 대한 마스터 클래스도 이어졌다. 오보에를 불던 장애인 연주자는 소리가 나오지 않자 당황했다. 주변 사람들도 마치 자신의 일처럼 함께 진땀을 흘렸다. 다른 연주자에게 레슨 기회가 넘어갈 상황이었다. 음악회 예정시간에 쫓겨 이제 마스터 클래스에 남겨진 시간은 채 십 분도 되지 않았다. 베를린필의 오보에 주자 안드레아스 비터만은 어쩔줄 몰라하는 연주자에게 “릴렉스!”라며 긴장을 풀라고 했다. 문제는 긴장이 아니라 혀를 대는 리드에 있었다. 비터만은 리드를 손질해 다시 악기에 끼운 뒤 불어보라고 했다. 그제서야 제대로 된 음이 나왔다. 두 사람은 함께 웃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꼬리도 일제히 올라갔다.

‘제25회 이건음악회’는 부산, 고양, 서울 공연을 마치고 8일 인천 문화예술회관, 9일 광주문예회관을 끝으로 순회공연을 마무리 한다. (032)760-0898.

인천/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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