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미란(47). 사진 놀이패 한라산 제공
놀이패 한라산 윤미란 대표
강정 3대 모녀의 삶 다룬 ‘이녁’
‘혜화동 1번지’ 초청에 서울 공연
1인 5역 모노드라마서 춤·노래도
“제주 여인의 삶이고 내 얘기다”
강정 3대 모녀의 삶 다룬 ‘이녁’
‘혜화동 1번지’ 초청에 서울 공연
1인 5역 모노드라마서 춤·노래도
“제주 여인의 삶이고 내 얘기다”
“이녁벳기 어수다!”
제주 토박이말로 “당신밖에 없어요”라는 뜻이다. 해군기지가 건설중인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가 제주 여인의 몸을 빌려 ‘뭍사람’인 우리에게 던지는 말이다.
제주 토박이 배우 윤미란(47·사진)이 4·3 항쟁에서 강정까지 여인 3대의 삶을 통해 제주의 아픔을 맵짜게 졸여내 푸짐하게 한 상 차려냈다. 바로 24일부터 8월3일까지 서울 대학로 ‘혜화동 1번지’ 무대에 오르는 모노드라마 <이녁>(방은미 연출)이다. 윤미란은 10대에서 70대까지 1인 5역을 소화한다. 휴가철을 맞은 이들에겐 제주는 관광지일 뿐. 윤미란이 이녁들, 곧 뭍사람들에게 들려주고픈 ‘진짜 제주’는 어떤 모습일까? 공연을 앞둔 21일 그를 만났다. 마당극 전문극단 놀이패 한라산의 대표인 윤미란은 2007년 전국민족극한마당에서 민족광대상을 받은 바 있다.
“강정은 우리에겐 고향인데, 어떤 분들은 그 땅이 다 너희 거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우리가 죽더라도 구럼비는 남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강정 말고도 또 다른 마을에도 구럼비가 있어요. 거기서 만들어진 역사나 이웃과 나눈 소통이 다 공동체적 삶입니다. 그건 한번 깨진 뒤엔 복원하기 힘들잖아요. 해군기지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구럼비 바위도 10% 정도만 깨졌어요. 겉보기엔 시멘트로 덮여 있지만 걷어내면 됩니다.”
윤미란에게 강정은 곧바로 ‘4·3’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숙명처럼 숨을 쉬어도 ‘4·3 숨’을 쉬었어요. 그리고 최근 강정마을 사태까지 모든 제주 사람들이 함께 앓고 있어요. 이 문제는 제주를 넘어 밀양 송전탑, 세월호 참사 등 전국적으로 동시대 한국분들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제의식은 묵직하지만 대사는 차지고 맛깔스럽다. 제주 토막이말은 파도가 구럼비를 간질이듯 귓가에 찰랑댄다. <이녁>은 일반적인 모노드라마의 형식을 벗어나 60여년의 시공을 넘나들며 춤, 노래, 판소리까지 아우른다.
물명주빛 구럼비 앞바당(바다)에 넘실대는 파도. 갑자기 평화롭던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건설을 싸고 쑥대밭이 됐다. 팔순을 코앞에 둔 미랑의 할망은 정신줄을 놓고 말문마저 닫았다. 열두살이던 무자년 4·3학살 때 가족을 모두 잃은 한 많은 세월이었다. 미랑의 어멍은 어르신들이 함께 돌아가신 ‘4·3 제삿날’을 맞았는데 외아들은 해군기지를 반대하다 감옥에 갇혀 있다. 미랑은 맞선 날까지 받아놓았지만 머릿속은 온통 해군기지 생각뿐이다. 할망과 어멍 그리고 자신을 있게 한 저 바당을 죽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이녁>은 연출가 동인인 ‘혜화동 1번지’ 5기 동인 초청으로 서울 무대에 서게 됐다. 지난 3월 제주에서 초연한 이 작품을 지켜본 동인 한 명이 “제주에서만 보기 아깝다”며 다른 동인들의 동의를 받아 마련한 무대다. 이 작품 1시간20분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윤미란은 대사를 어떻게 다 외웠을까? “에이, 그거는 외우는 게 아니라 제주 여인의 삶이고 또 내 이야기라 일상 안에 녹아 있는 거지요. 이데올로기나 이런 게 아니기 때문에 내 안에 고여 있던 것이 저절로 터져나오는 거죠.”
공동으로 대본을 쓴 방은미 연출은 꼬박 3년째 강정마을에서 ‘싸우고’ 있다. 그는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연극 <나비>를 2010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뭍사람’ 방은미 연출은 강정에서 한국 문제, 나아가 세계적 문제로 시선을 넓힌다. “쌍용차, 강정, 용산참사의 머리글자를 따 스카이(SKY)라 하는데 이제 밀양과 세월호까지 합쳐 스카이엠에스(SKYMS)라고 해요. 이스라엘이나 미국이 벌이는 전쟁놀이 등도 이제 전세계적 시선 속에서 구럼비를 지키는 문제와 연계시켜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해군기지 다음은 공군기지가 들어올 수도 있지 않나요?” 010-6559-5722.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놀이패 한라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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