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49) 안동대 교수
‘매혹의 음색’ 펴낸 김진호 교수
바흐가 ‘악음’서 제외한 음은 ‘소음’
다른 문화권 음계 ‘평균율’에 사라져
음악에 소음과 음색 더 담아내야
바흐가 ‘악음’서 제외한 음은 ‘소음’
다른 문화권 음계 ‘평균율’에 사라져
음악에 소음과 음색 더 담아내야
졸졸 냇물 흐르는 소리, 바람부는 소리, 천둥 치는 소리는 왜 음악이 될 수 없을까? 왜 피아노, 바이올린, 가야금 같은 악기 소리만을 음악이라고 부를까? 음악에서 쓰는 음을 ‘악음’이라 부르고, 냇물과 파도 소리는 악음에서 제외해 ‘소음’이라 부른다. 언제부터 그렇게 됐을까?
“바로크시대 바흐는 수학·과학에 기반해 평균율을 만들었습니다. 평균율은 그 이전 다른 문화권의 조율방식을 몰아냈습니다. 오늘날 세계화 이전에, 바로크시대 평균율체계를 통해 전세계가 이미 글로벌화한 겁니다. 우리는 감수성의 글로벌화를 자본주의 글로벌화 이전에 이미 겪었다는 거죠. 그런 무차별한 평균율의 공격에 궁상각치우 같은 전세계의 다른 음계들이 대책 없이 당한 거죠.”
김진호(49·사진) 안동대 교수는 ‘악음과 소음 판별 기준’을 설명하기 위해 바로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는 최근 소음과 음색의 측면에서 서양음악을 톺아보는 이론서 <매혹의 음색>(갈무리)을 펴냈다. 8일 서울 서교동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바흐가 갈래 잡은 악음에서 제외된 음은 모두 소음이 됐다고 했다. “바흐는 음고(높낮이)의 차원에서 신의 기량을 보여줬지만, 리듬과 음색의 차이에서는 기계 수준의 기량을 보여줬습니다. 16분 음표 일색인데다, 악기 음색에 관심을 전혀 가지지 않았어요. 악보에 악기 이름도 안 썼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플루트로 연주하는 부분도 플루트로 연주하라고 정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김진호는 왜 소음과 음색을 그렇게 중요하다고 보는 걸까? “서양음악사는 소음을 악음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고, 악음이 가진 음색의 측면과 소음의 풍부한 음색을 점점 더 중요하게 여겨온 과정입니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에 악음보다 소음이 더 많지만, 수많은 매혹적인 소음과 음색이 무시돼왔습니다. 그래서, 소음이나 악음의 음색적 측면에 대해서도 더 주의를 기울이자는 게 제 결론입니다.”
김진호 교수는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했다. 그는 “재학시절 만난 진은숙(작곡가)과 조수미(소프라노)의 카리스마는 정말 대단했다”라고 기억했다. 하지만 80년대 가장 뜨거운 시대를 살아온 그는 음악만으로는 목마름을 채울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사회학과에 편입했다. 그 뒤 파리 4대학에서 ‘현대음악과 음악학’ 박사를 받은 그는 피아노협주곡 ‘유리 절벽 위에서의 축제’ 등을 작곡했다. 김진호는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지속가능한 공존을 위협하는 정치경제사회체제에 관심을 두고, 음악창작의 지침과 모델로 삼고 있다.
음악가인 그는 역설적으로 ‘음악중독’을 경계했다. “산길을 걷는데 어떤 이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어요. 인기척을 내도 비켜주지 않는데 가만 보니 귀에 이어폰을 꽂았더라고요.” 세상과 단절한 채 음악에 탐닉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게임과 마약에 중독된다고 하는데, 중독은 전두엽의 판단기능을 마비시키고 마비된 뇌는 그 사람이 사회적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방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음악도 혹시 사람들에게 중독효과를 주는 것이 아닐까요?” 음악가들이 현실에 둔감한데다, 음악이 현실을 가리는 귀가리개, 눈가리개로 작용한다는 통찰이다.
그는 ‘바그너와 히틀러’를 사례로 들어 설명했다. “히틀러는 12살 때 악극 ‘로엥그린’을 보고 눈물을 흘렸고, 바그너로부터 정치적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렇다고 바그너의 음악이 파시스트적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또 다른 ‘바그너 마니아’인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에게는 파시즘의 광기가 아닌 과학적 영감의 원천이 됐기 때문이다. “저는 바그너에 열광해서 파시스트가 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앎으로써, 바그너를 들을 때 주의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측면이 히틀러를 열광케 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합니다.”
김진호는 음악이 잘못된 방식으로 뇌를 지배하는 것을 우려했다. “나는 우울하지 않지만, 나의 뇌를 음악에 빌려줌으로써 내가 원하지 않는 감정을 얻고, 내 자아가 왜곡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성찰해야 합니다.”
글·사진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