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낮 12시께 광주시 북구 운암동 광주시립미술관 1층 전시실에서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출품 작가 이윤엽(왼쪽)씨가 홍성담 작가의 작품 사전 검열에 항의해 벽면에 전시된 작품을 떼어내고 있다.
재단쪽 황당 제안에
국내외 참여작가 14명 탄원
“내일까지 전시 안하면 철수” 통첩
국내외 참여작가 14명 탄원
“내일까지 전시 안하면 철수” 통첩
“엎질러진 물을 앞으로 한달 동안 쓸어 담는다고요? 그사이 물은 말라버릴 텐데….”
광주의 한 미술인이 던진 촌평이다. 8일 개막한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달콤한 이슬: 1980년 그 후’는 사상 초유의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비엔날레재단은 돈줄을 쥔 광주시의 채근으로 홍성담 작가의 박근혜 대통령 풍자 걸개그림 <세월오월>의 전시를 막았다. 이후 불거진 ‘사전 검열’ 파문은 다른 국내외 참여작가 10여명도 잇따라 출품작을 철수하겠다고 반발하면서 전시가 좌초될 위기로 번졌다.
12일 오키나와 작가들과 케테 콜비츠의 판화를 출품한 사키마미술관이 작품 철수 입장을 밝히자 재단 쪽은 13일 수습책을 발표했다. 약 한달 뒤인 9월16일 홍 작가의 작품 전시 여부 등을 결정짓는 대토론회를 하자는 제안이었다. 여론은 되레 더욱 들끓고 있다. 14일 국내외 참여작가 11명과 오키나와 참여작가 3명, 사키마미술관 쪽이 이용우 재단 대표이사와 윤장현 시장에게 탄원서를 보냈다. 사퇴한 윤범모 책임큐레이터가 즉각 복귀하고 홍 작가의 그림이 16일까지 전시되지 않으면 출품작을 철수하겠다는 최후통첩이었다. 홍 작가와 다른 동료작가들도 ‘시간을 벌어 책임을 피하려는 꼼수’라며 토론회에 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특별전에는 14개국 작가 47명이 참여했다. 탄원서를 낸 작가들 작품과 케테 콜비츠 판화들은 국가폭력 등을 다룬 전시의 핵심이다. 재단 쪽은 한점만 걸더라도 전시한다는 입장이지만, 16일 이후 작품이 대거 철거되면 껍데기 전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현지 사정을 아는 미술인들은 출발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했다. 지난해 재단이 혈세 20억원을 들여 특별전을 따로 치르겠다고 결정할 당시부터 논란이 있었다. 비엔날레 본전시에 넣지 않고, 별도 전시를 해야 할 당위성에 대한 의문과 과도한 예산지원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다. 재단 쪽이 ‘광주정신’을 내세워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성찰과 숙고가 필요한 대형 기획전을 무리하게 꾸리려다 세부 준비가 허술해져 사달이 났다는 말이다. 실제로 특별전은 기획방향과 작가 선정 등을 이용우 대표이사와 윤범모 책임큐레이터가 도맡는 ‘투톱시스템’이었다. 청와대를 의식한 시 쪽이 박근혜 풍자 그림을 빼라고 압박하자 윤씨가 큐레이터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서 운영체계가 곧장 붕괴된 셈이다. 미술평론가인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후진적 검열도 문제지만 행정력·기획력·소통 등에서 제대로 된 전시 준비 경험을 갖지 못한 한국 미술계의 맹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라고 짚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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