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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얘기하고 싶어지는 얘기

등록 2014-08-21 20:09수정 2014-08-21 21:02

연극 <우리 노래방에 가서…얘기 좀 할까> 중 한 장면
연극 <우리 노래방에 가서…얘기 좀 할까> 중 한 장면
리뷰 l ‘우리 노래방에 가서…얘기 좀 할까’
노래방서 펼치는 대화와 단절
재담에 웃고 소통엔 몰입하게 돼
연극이 시작할 될 때가 됐는데, 웬 청년이 대걸레를 들고 무대를 청소 중이다. 관객 앞에다 밀대를 쑥 내밀며 “발 좀 들어 보세요”라고 한다. 그러더니 이내 연출자의 콘셉트를 ‘씹기’ 시작한다. “아니, 노래방이 노래하는 곳이지 얘기하는 곳이라니, 말이 됩니까 이게.” 아, 이 청년도 배우구나. 연극은 이미 시작됐구나. 그리고 콘셉트가 ‘대화’이구나.

여자 친구와 다퉜을 때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얘기라도 하고 싶다. 커피숍은 맘 놓고 떠들 수가 없다. 밀폐된 공간에서 남들 눈 의식하지 않고 소리치고, 달래고, 빌어보고 싶다. 그런 곳은 바로 노래방. 노래방은 노래도 하지만 대화하는 곳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지난 9일 막 올린 연극 <우리 노래방에 가서…얘기 좀 할까>(민준호 작·연출)의 출발점이다.

20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은 웃음이 넘쳐났다. 일단 노래방 주인의 재담이 재미있다. 하지만 답답하다. 배우들은 서로 가까워지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서로 밀쳐냈기 때문이다.

무대는 노래방과 놀이터로 꾸며져 있다. 노래방 기기와 천정의 거울공이 보통 노래방과 다르지 않다. 뒤에는 미끄럼틀과 그네가 있다. 그런데 연극에서는 놀이터를 화장실이라고 우긴다. 일상 공간의 쓰임새에 대한 뒤집기. 노래방에서 밥 먹고 대화한다. 실제로는 놀이터인 화장실에서 놀고 울고 분노를 터뜨린다.

‘노래방 무대’를 찾은 손님을 보자. 먼저 아버지와 아들. 시골에서 올라온 아버지는 아내 없이 키운 아들이 객지에서 밥이나 제대로 챙겨 먹고 다니는지 늘 안쓰럽다. 오늘은 아들에게 재혼 얘기를 꺼내려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버럭버럭” 화 내고 아들은 “바락바락” 대든다. 대화 단절. 평소 대화 부재가 부른, 서투른 화법이 원인.

이번엔 아버지와 싸우고 나온 아들과 여자친구. 아들은 노래방에서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는 건 아닐까’ 늘 의심하던 여자친구를 다그치고 욕설을 퍼붓는다. 자신을 끔찍이 사랑해준다는 사실은 알지만, 남자친구의 ‘과도한 애정’에 ‘쿨한’ 것을 좋아하는 여자친구는 결별을 선언한다. 대화 단절. 과도한 집착이 원인.

아버지와 재혼상대인 중년여성은 어떤가. 서로 애틋함을 확인했지만 결혼생활에 자신이 없던 중년여성은 남자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또다시 대화 단절. 서로 배려하다 보니 깊은 속내를 털어놓지 못한 게 원인.

그러므로 소통 부재의 시대에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를 묻는 게 이 연극의 핵심이다. 관객들은 배우들의 ‘대화’와 ‘단절’에 몰입한다. 하지만 곧 몰입에서 곧 이탈하기도 한다. 배우의 얘기가 곧 자신의 얘기와 겹치면서, 자신의 생각 속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친절한’ 노래방 주인은 관객이 느껴야 할 몫까지 장황하게 설명하려 들었다. 관객 스스로 곱씹어 볼 부분이 줄어든 셈이다.

어쨌든 관객들은 저마다 하나씩 ‘얘기 거리’를 품고 극장을 나선다. “엄마, 아빠 또는 애인과 노래방에 가서 얘기 좀 할까?” “아니, 노래방이 아니더라도 이참에 얘기 좀 해야겠다.” 10월19일까지. 1544-1555.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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