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록 페스티벌 브이록스(V-ROX)에서 한국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공연하고 있다. 러시아 관객들은 공연 뒤 백스테이지로 몰려들어 멤버들의 사인을 받았다. 서정민 기자
블라디보스토크 록 축제 ‘브이록스’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헤드라이너
4시간 걸친 한국밴드 5팀 공연에
관객 “케이록 최고” “대박” 열광
러 밴드 4팀, 10월 홍대 축제로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헤드라이너
4시간 걸친 한국밴드 5팀 공연에
관객 “케이록 최고” “대박” 열광
러 밴드 4팀, 10월 홍대 축제로
빅토르 최. 고려인 2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1962년 태어난 그는 소련의 전설적인 록 밴드 ‘키노’의 리더였다. 그가 발표한 음악은 독창적이었고, 국가의 억압에 저항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는 록스타였을 뿐만 아니라 사회변혁가로서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1990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의 나이 28살이었다.
“그는 정말 최고의 음악가이자 영웅이에요. 하지 말라는 걸 그는 했고, 그걸 또 하지 말라고 해도 또 했고, 계속했죠. 그런 사람은 유일해요.” 미에리에사 카트리나(20)는 말했다. 빅토르 최는 지금의 러시아 젊은이들에게도 여전히 우상이다. 빅토르 최 이후 러시아에서도 본격적으로 록 음악이 태동했다.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자본주의 나라에서 온 자유와 저항의 음악은 러시아 젊은이들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8월31일(현지시각) 오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바닷가에서 강렬한 전기기타 소리가 울려 퍼졌다. 2000여명의 러시아인이 흥에 겨워 몸을 흔들고 뛰어올랐다.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팀은 갤럭시 익스프레스. 한국에서 온 3인조 록 밴드다. 29일부터 사흘간 열린 록 페스티벌 ‘브이록스’(V-ROX)의 메인 스테이지 마지막 무대에 새까만 옷을 입고 오른 그들은 모든 걸 하얗게 불태웠다.
리가이 알렉세이 이그레비치(20)는 객석에서 태극기를 신나게 흔들고 있었다. 레게 음악인의 상징인 드레드록 머리를 한 그는 할아버지가 고려인이라 했다.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지만, 자신은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해 처음 브이록스에 와서 노브레인의 공연을 봤어요. 단번에 반했어요. 올해도 한국 밴드들이 온다고 해서 왔어요. 케이팝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케이록은 정말 최고인 것 같아요.”
브이록스는 러시아의 국민 밴드 ‘무미 트롤’의 리더 일리야 라구텐코와 블라디보스토크시가 지난해부터 주최한 록 페스티벌이다. 올해 2회를 맞아 러시아, 영국, 미국, 중국, 일본, 몽골, 한국 등의 밴드 70여팀이 참여했다. 지난해 한국 밴드 노브레인, 아폴로18,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등이 초청된 데 이어, 올해는 갤럭시 익스프레스, 이디오테잎, 데드버튼즈, 헬리비젼, 웁스나이스, 휴 키이스 등 6팀이 초청장을 받았다. 1980년대 데뷔 이후 러시아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활동한 일리야 라구텐코는 한국 록 음악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31일 메인 스테이지에서는 4시간 동안 5팀이 공연을 펼쳤는데, 모두가 한국 밴드였다. 한국 록의 날이었던 셈이다. 다른 어떤 나라도 이런 식으로 공연을 배정받지 못했다. 관객들은 다양한 스타일의 한국 록에 흠뻑 빠져들었다. 여성 보컬리스트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웁스나이스, 기타·보컬과 드럼의 단출한 2인조 구성으로 화끈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데드버튼즈, 실험적이고 몽환적인 연주를 들려주는 헬리비젼, 춤추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일렉트로 록을 구사하는 이디오테잎, 관객들을 우주로 내달리게 하는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이어지는 무대에 관객들은 잠시도 몸을 가만두지 않았다.
헤드라이너인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공연이 끝나자 사람들이 무대 뒤 백스테이지로 몰려들었다. 좋아하는 밴드의 이름을 외치며 가까이서 얼굴이라도 한번 더 보려고 난리였다. “대박”이라고 한글로 쓴 손팻말도 보였다. 갤럭시 익스프레스 멤버들은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앞서 한국 밴드들은 8월29~30일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클럽에서도 공연했다. 러시아에서 유행을 선도하는 이들이 찾는다는 고급 클럽이었다. 옷을 잘 차려입은 선남선녀들이 한국 록 음악에 취해 몸을 흔들었다.
브이록스 주최 쪽과 함께 한국 밴드들의 이번 공연을 진행한 공윤영 잔다리페스타 대표는 말했다. “이번 공연만으로 러시아 시장이 열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왜 계속 오냐고요? 재밌잖아요. 이곳 사람들은 한국 록을 진심으로 즐기는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을 보는 우리도 즐겁고요. 음악이 꼭 돈이 돼야 하나요? 즐거우면 그걸로 된 거죠.”
무미 트롤 등 러시아 밴드 4팀은 오는 10월10~12일 서울 홍대 앞 일대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 잔다리페스타에 출연할 예정이다. 한국과 러시아 록의 교류는 계속된다.
블라디보스토크/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