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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이방인이 예술로 번역한 섹스·재벌·민족…

등록 2014-09-01 19:36수정 2014-09-01 22:09

문타다스가 서울 도시공간의 조사 내용을 담은 모니터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2010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로 제자들과 서울을 찾았을 때 서울, 베이징, 도쿄 세 도시를 규정해온 사회적 규칙(프로토콜)을 분석하는 미디어 작업을 구상하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문타다스가 서울 도시공간의 조사 내용을 담은 모니터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2010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로 제자들과 서울을 찾았을 때 서울, 베이징, 도쿄 세 도시를 규정해온 사회적 규칙(프로토콜)을 분석하는 미디어 작업을 구상하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스페인 미디어아트 거장 문타다스
한·중·일 둘러싼 43개의 개념들
칠판에 정리하고 영상·PT 작업도
섹스와 포르노?

글자들 빽빽한 칠판 구석에 쓴 두 단어에 눈이 확 멎는다. 그 아래 한국과 중국, 일본의 현황(?)이 각기 다른 색깔의 세 나라 글자로 적혀있다. ‘한국-포르노 산업 연간 지출액 세계 1위’ ‘중국-지방경제 활성화의 도구’ ‘일본-테레쿠라(전화방), 부르세라 숍(소녀들이 본인 속옷을 파는 곳), 원조교제’.

이 칠판 글씨들은 스페인의 미디어아트 거장 안토니오 문타다스(72)가 최근 한달여 한국에서 작업하며 남긴 흔적들이다. 시골 할아버지 같은 작가가 칠판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8월6일 한국에 온뒤로 내가 질문처럼 던진 43개의 정치적, 사회적 열쇳말들에 대해 한국의 미술관 연구원, 건축가, 정치학자들과 대화하고 답을 찾아 정리한 결과지요. 이 개념들이 한·중·일 세 나라에서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이방인인 저와 세 나라 사람들이 소통한 과정이 작품이 된 셈입니다.”

그는 한국 실험미술의 산실인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지난달 25일부터 전시를 열고있다. ‘문타다스:아시안 프로토콜(Asian Protocols)이란 제목이 붙은 전시에서는 섹스, 민족, 재벌 등 43개 개념들이 한·중·일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영향을 미치는지를 삼면의 칠판에 정리해놓은 들머리 작업이 먼저 눈길을 끈다. ‘재벌’의 경우 한국은 ‘족벌소유, 족벌경영, 은행설립 불가능’, 일본은 ‘족벌소유, 전문인경영, 은행설립 가능’으로 명쾌하게 정리해 놓았다. 이 개념들에 연관된 세 나라의 특징적 사진, 그림 등을 붙여 만든 도형그림이 펼쳐지며, 서울, 베이징, 도쿄의 도시 환경과 문화적 특징을 영상·파워포인트로 엮은 작업들도 있다.

얼핏 도시에 대한 학술 아카이브 연구물처럼 비치기도 하는데, 볼수록 묘한 청량감을 일으킨다. 우리 대도시 공간에서 지나쳤던 일상적 풍경과 개념들을 중국, 일본 도시 공간의 차이와 비교해 이미지로 풀어주는 까닭일 것이다. 제각기 휴대폰 통화에 골몰하는 광주 시민들과 고층전망대에서 먼곳을 잠잠히 조망하는 도쿄시민, 진시황 병마용 장식품이 달린 회전문을 바삐 통행하는 중국인들을 비춘 영상이 그렇다. 작가는 “세 나라 도시 공간에서 각기 다른 양상으로 일어나는 생각들을 번역이란 과정을 통해 대비시키는 작업”이라며 “예술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문타다스는 현대 미디어아트의 새 영역을 개척한 석학이다. 1942년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프랑코 독재체제를 경험한 그는 70년대 이래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사회적 소통과 검열 문제, 인터넷·동영상 같은 정보 소통 수단의 유포 방식들에 대한 조사에 몰두했다. 이 자료들에 상상력을 접목시켜 사진, 비디오, 출판 등 미디어로 표현해온 프로젝트는 카셀도큐멘타와 베네치아 비엔날레 등에서 주목 받았다. 작품들이 연구자료처럼 보인다고 했더니, 그는 지하 전시장 한쪽의 검은 약병들을 가리켰다. “43가지 개념을 쓴 약병들 속에 제 상상력을 집약해 담았어요. 정치, 검열, 통제, 시간표, 규칙 같은 단어들이 쓰여진 약병 속 알약을 먹으면, 개념들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생길 겁니다. ‘정치’ 약병 속 알약을 오바마 미 대통령이 먹는다면, 중국에 대한 태도가 바뀔 지도 몰라요. 하하.”

작가는 방한기간 내내 토탈미술관에 틀어박혀 그를 ‘문 할아버지’로 부르는 연구원들과 전시 계획을 짜고 다듬는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26일 리움 개관 기념전을 관람하며 뒤늦게 망중한을 즐긴 그는 다음날 한국을 떠났다. 10월19일까지. (02)379-3994.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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