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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역사 잇는 ‘귀신·간첩 판타지’는 없었다

등록 2014-09-02 19:03수정 2014-09-02 21:10

‘미디어시티 서울 2014’의 주요 출품작들. 움직이는 키네틱 조각에 방울을 달아 기묘한 소리를 내는 양혜규씨의 설치작품.
‘미디어시티 서울 2014’의 주요 출품작들. 움직이는 키네틱 조각에 방울을 달아 기묘한 소리를 내는 양혜규씨의 설치작품.
막오른 ‘미디어시티 서울 2014’
‘귀신·간첩·할머니’ 주제 삼아
식민과 냉전 아픔 견딘 여성 부각
양혜규 ‘무당방울 설치작’ 등
개별 작품 돋보이나 맥락 허술
귀신과 간첩, 할머니들은 도처에 출몰했다. 그런데 간첩이 귀신 되고 귀신이 할머니로 변하며, 다시 할머니가 간첩으로 변신하는 이야기들은 보이지 않는다. 기대했던 변신과 융합의 드라마, 판타지는 어디에 있을까.

1일 오후 서울시립미술관 현관 앞에서 세월호 희생자를 달래는 이상순 만신의 새남굿판으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은 막을 올렸다. 국내 3대 비엔날레로 꼽히는 행사에 걸맞게 전시는 만듦새가 깔끔하다. 반면, 맥락은 성기고 허술하다는 평이다. 무속을 다룬 영화 <신도안><만신>을 만든 박찬경 예술감독은 20세기 근현대기 제국주의 침탈과 식민지, 냉전의 질곡을 겪은 아시아인들의 독특한 정신과 의식을 파헤쳐 보인다는 구상을 내비쳤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의 구상은 성공도 실패도 아닌 절충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개별 작품들로만 보면, 기획자의 안목과 선택이 돋보이는 수작들이 적지않다. 무당이 쓰는 방울을 선풍기나 움직이는 키네틱 조각에 달고서 소리의 춤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양혜규 작가의 들머리 설치 작품은 단연 돋보인다. 기계문명과 결합된 무속적 상상력이 신선하다. 제주 해녀의 노동과 생활을 ‘이어도사나’ 같은 노동요 등의 현장음과 영상으로 보여준 미카일 카리키스의 3층 극장에서 해녀의 삶은 다층적으로 재조명된다. 이 미술관의 전신인 조선총독부 시절의 고등재판소를 재현한 다무라 유이치로의 공간작업도 참신하다. 미술관의 역사적 장소성을 부각시킨 공간에서 작가는 낯선 영상을 틀어준다. 1764년 조선통신사 수행원 최천종이 일본에서 통역을 맡은 하급무사에 의해 흉기로 살해된 사건을 가부키 연극으로 공연한 장면과 당시 흉기를 일본 장인이 제작하고 횟감을 뜨는 장면이었다. 엉키고 엉킨 한일관계사의 미시적 단면들을 부각시킨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신인 일제강점기 고등재판소 경내를 재현한 다무라 유이치로의 공간설치 작업.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신인 일제강점기 고등재판소 경내를 재현한 다무라 유이치로의 공간설치 작업.
작품들과 결부된 ‘귀신, 간첩, 할머니’란 주제는 지적으로 흥미롭다. 세 주제어가 한 의미로 뭉쳐질 수도, 전혀 다른 의미로 갈라질 수도 있다. 귀신을 불러내어 아시아의 뒤엉킨 근현대사를 돌아보고, 간첩으로 표상되는 냉전, 식민의 상처를 보여주며, ‘귀신과 간첩의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 특히 여성들을 부각시키겠다는게 기획자의 의도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17개국 42팀의 작가들이 출품한 230여점의 작품들이 이런 주제의 흐름 속에서 전시라는 한 작품으로 집약됐다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았다. 2, 3층으로 올라갈수록 작품들의 맥락을 모으고 집중시키는 힘이 풀려가는 기색이다. 2~3층 곳곳의 방들마다 자리를 틀고서 아시아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현상들을 이야기하는 영상·설치·조각 작품들은 대부분 격리된 공간 속에 따로 배치돼 동선의 집중감을 떨어뜨린다. 단적으로, 2층에 있는 사진가 최원준씨의 ‘만수대마스터클래스’는 아프리카 나라들의 기념비적 대형 건물들을 지어주며 체제선전과 외화벌이를 했던 과거 북한 장인들의 그늘진 자취를 담은 작품인데, 다른 작품들과 동선이 격리된 방에 배치돼 북한 아카이브가 집적된 단순한 자료방처럼 보인다. 2000년 창립 당시 첨단 미디어아트를 보여주겠다던 취지가 사라지고, 여느 비엔날레와 비슷한 형식의 작품들 속에서 주제만 강조한 틀거지는 진부한 인상을 풍긴다.

이 비엔날레는 재단 사무국이 없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올해부터 직영 방침을 밝혔지만, 실상은 전시 연구를 맡아야할 학예사 1명만이 행정지원을 전담하는 구조로 행사를 지속하겠다는데 불과하다. 시 공무원들의 직접 간섭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는 점도 그렇다. 후임 관장의 성향에 따라 비엔날레 성격도 바뀔 수 있다. 지원시스템은 최소화하고, 미술관 실적은 쌓겠다는 발상으로 명문 비엔날레가 가능할지, 현장에 온 미술인들은 궁금해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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