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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이야기 감옥’ 탈출한 복희, 이젠 즐겁니

등록 2014-09-09 19:35수정 2014-09-10 13:34

<즐거운 복희>의 한 장면. 사진 남산예술센터 제공
<즐거운 복희>의 한 장면. 사진 남산예술센터 제공
리뷰 l 즐거운 복희
이강백 작가·이성열 연출 연극
펜션 주인들의 관 장사 이야기
이것은 ‘관 장사’에 관한 ‘이야기’다. 관은 ‘죽음을 팔기’ 위한 도구다. 그러므로 ‘장사를 치른다’는 말은 ‘장사를 한다’는 말과 같다.

장군이 죽었다. 장군은 외딴 호숫가 펜션 주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장군은 저명인사였다. 다른 펜션 주인들이 모였다. 장군을 이곳에 묻으면 추모객들로 붐빌 테지. 그러려면 장군의 딸 복희가 더 슬픈 표정을 지어줘야겠어, 흑흑! 빚을 내 분양받은 펜션 주인들은 추모객 덕에 돈푼깨나 만진다.

이번엔 나팔수가 죽었다. 사랑하는 복희와 도망치려다 익사했다. 펜션 주인들이 다시 모였다. 장군의 죽음을 추모하던 나팔수의 죽음? 아, 비 오는 날이면 호수 속에서 슬픈 나팔소리가 들리고, 흑흑! 이건 정말 비극의 대박이야! 슬픈 복희로 살기에 지친 복희는 펜션에 불을 지른 뒤,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고 다람쥐처럼 사라진다.

이번엔 복희가 죽었다. 도망갔지만 죽었다고 꾸몄다. 펜션 주인들은 이번에도 장사를 치르며 장사를 한다. 장군이 죽자 슬픔에 못 이겨 딸도 죽었답니다, 흑흑! 덕분에 펜션 주인들의 지갑은 두둑해졌다. 이들이 만든 ‘이야기의 프레임’에서 복희는 슬픈 배역이어야만 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관 장사’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방점은 ‘관 장사’가 아니라 ‘이야기’에 찍힌다.

지난달 말 막이 오른 연극 <즐거운 복희>의 주제는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는 인간을 만든다”이다. 이 작품은 ‘영원한 동시대적 알레고리의 작가’ 이강백(67)과 견고하고 단단한 해석을 보여주는 연출가 이성열(52)의 두번째 합작품이다. 두 사람이 만든 2009년 <봄날>은 연극평론가협회가 뽑은 그해 ‘연극 베스트 3’에 올랐다.

알레고리 수법으로 표현한 인물은 각각 탐욕, 명예욕 등을 상징한다. 이 수법은 ‘이야기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주제의식을 극대화하지만, 또 한편으론 당대의 복잡한 현실을 담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 그래서 다소 1970년대적으로 보인다. 그런들 어떠하랴. 지금의 정치 현실을 보면 너무너무 70년대적인데 뭘….

이성열 연출은 배낭을 메고 탈출하는 복희의 모습을 슬쩍 비쳤다.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갇혀 슬픈 복희, 청순가련을 넘어 ‘청승가긍’을 강요받던 복희는 그 뒤 어찌 됐을까? 이야기의 감옥을 탈주한 다음, 이 연극의 이야기는 마침내 끝났을까? 웬걸, 무대 밖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현실의 ‘복희’들에게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하다. 우리 시대의 스토리텔러인 정치와 자본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생산해내야만 한다. 이야기가 곧 권력이고, 이야기가 곧 이윤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프레임에서 밀리면 정치생명이 하루아침에 끝나고, 거대 기업도 순식간에 망한다. 그래서 궁금하다. 슬픈 이야기를 탈출한 복희는 또 다른 이야기에선 행복해졌을까? 이제 제목대로 ‘즐거운 복희’가 됐을까? 21일까지.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02)758-2150.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남산예술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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