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천연색’전이 차려진 옛 서울역 3등 대합실에 폐허처럼 놓인 설치작품 ‘꽃의 속도(폐허)’와 작품 앞에 선 최정화 작가. 위태롭게 기울어진 짝퉁 샹들리에 아래서 작가는 “성스러움과 속됨이 서로 통하는 마당”이라고 전시장을 설명했다.
‘한국미술 돌연변이’ 최정화 개인전
플라스틱·비닐 엮고 소쿠리탑 쌓아
천여점 꽃 화두로 ‘비엔날레식 연출’
“우리 근대의 모습이자 내면 표현해”
키치적 작품들로 미술 후진성 비판
“이젠 정말 작가로서 미술 갖고 놀것”
플라스틱·비닐 엮고 소쿠리탑 쌓아
천여점 꽃 화두로 ‘비엔날레식 연출’
“우리 근대의 모습이자 내면 표현해”
키치적 작품들로 미술 후진성 비판
“이젠 정말 작가로서 미술 갖고 놀것”
“최정화의 세상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웰컴 투 마이 월드.”
머리를 빡빡 깎은 작가 최정화(53)씨는 폐허 더미 위 의자에 앉아 ‘환영사’를 날렸다. 그가 앉은 옛 서울역 3등 대합실 안은 역사에 달았던 옛 문짝과 창틀, 폐자재들로 가득했다. 먼지가 풀썩 날렸지만, 작가는 호기롭게 “아름다운 것들은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다”며 법어처럼 운을 뗐다. 그의 머리 위엔 플라스틱으로 만든 불량품 샹들리에가 위태롭게 흔들리며 깜빡거렸다.
대합실 창문밖엔 서울역 노숙자, 시민들과 함께 1달 넘게 만들었다는 7m 높이의 소쿠리탑 8개가 열주처럼 서있다. 기둥 아래 자는 노숙자들도 보였다. 80년대 이래 조악한 플라스틱 생활용품과 장난감, 잡동사니 등을 엮어 미술과 일상, 상품과 작품 사이를 넘나들어온 작가에겐 딱 맞춤한 풍경이다. 역사 외벽엔 ‘우리모두가 꽃’이란 펼침막이 펄럭거리고 지붕엔 70년대 만화주인공 ‘로보트킹’의 비닐 조형물이 놓여 일어났다 자빠졌다를 되풀이한다. 뭘 해보려해도 줏대를 갖고 할 수 없던 과거에 대한 냉소다. ‘한국미술의 실패 그 자체’라고 자신을 규정한 작가가 말한다. “이게 우리 근대입니다. 내면의 폐허지요. 싫다고 밀칠 수 없는, 그래서 싸안아야 하는 모습들이지요. 저는 이 잡동사니 폐허를 모아 꽃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가 옛 서울역사인 문화역서울 284에 연출한 자칭 ‘비엔날레급’ 기획전은 ‘총천연색’ 제목이 붙었다. 3일부터 시작한 이 기획전의 무대 서울역사는 근현대기 민중이 이합집산하며 세속의 절정을 빚어냈던 곳. 지난 연말 문화역 284의 민병직 큐레이터와 만난 그는 알록달록한 잡동사니 컬렉션과 신구작들로 역사를 채우되 진흙탕 연꽃피듯 속세에서 의미를 뽑아올리는 절집 분위기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역 전관에 풀어낸 작품들은 1000점이 넘는다. 중앙홀에는 비닐백으로 14m높이의 탑 ‘꽃의 여가’를 세웠다. 산신도, 여행가방을 개조해 만든 무당 방석, 싸구려 가구, 로봇 장난감 등 수십년 모아온 잡동사니 컬렉션을 안쪽복도에 박물관처럼 진열해놓고, ‘꽃궁’ ‘꽃숲’으로 명명했다. ‘당신도, 우리도 모두 꽃’란 불교적 화두를 내세워 과거 현재 온갖 작업들을 곳곳의 방마다 비엔날레식으로 연출했다. 99년 국제화랑 전시 당시 경찰이 전시를 막았던 교통경찰상은 1, 2층 계단 사이 진열창 안에 유물처럼 들어갔다. 귀빈실은 배추수레와 밥상탑이 섰고, 2층 대식당은 시민들과 함께 모은 온갖 색깔의 플라스틱 병뚜껑을 색색이 풀어놓은 ‘꽃의 만다라’가 펼쳐진다. 안쪽 주방은 강원도 나무 김치독과 엎어놓은 장독대들이 강강수월래 하듯 원형으로 돌아가며 기를 뿜는다. ‘뽀글뽀글’‘엉망진창’ 등의 열쇠말로 작가가 설명해온 날림 근대화의 단면들이 불가의 화엄세상처럼 한자리에 모여들었다.
“‘1987년 중앙미술대전 입상으로 존재를 알린지 30여년만에 정식작가로 처음 나서는 무대입니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면서 미술은 취미처럼 대하며 놀았는데, 이젠 작가로서 미술을 갖고 놀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의외다. 평소 신념을 거의 내뱉지 않던 작가가 결연한 마음을 내비친다. 대학로 살바, 이태원 공간 ‘꿀’, 가슴시각개발연구소 등을 만들어 잡동사니 채워진 야릇한 공간을 주물러온 그다. 즐기지 못하고 보여주기 급급한 한국미술 틈새를 넘나드는 디자인 비즈니스가 특기였다. 그런 작가가 이제 작품으로 진정성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한다. 작가는 2층 옛 서울역 부재 전시실에 놓인 작품 한점을 주목하라고 했다. 고대 그리스풍의 플라스틱 모조기둥과 이를 받치는 중국제 플라스틱 좌대. 조잡한 우리 근대와 한국미술의 속물주의를 꼬집는 태도, 생각을 처음 명쾌하게 드러낸 작품이라고 그는 자부했다. 작가로 변신하겠다는 최씨가 다짐대로 천변만화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자신의 플라스틱 세상을 얼마나 업그레이드시킬지 주목된다. 10월19일까지. (02) 398-790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98년 국제화랑 전시 당시 경찰이 전시를 불허해 논란을 빚은 교통경찰상. 진열장 안에 유물처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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