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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현대미술에 녹아든 사진 요지경…쓰나미 벽이 울고 아마존이 왔다

등록 2014-09-15 19:34수정 2014-09-15 21:22

티벳의 주술문화가 녹아든 중국 작가 보무의 설치작품.
티벳의 주술문화가 녹아든 중국 작가 보무의 설치작품.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 가보니

‘사진의 서사’ 주제 250여명
준비 부족으로 사진술 소개 그쳐
팔마의 인물초상 등 작품 돋보여
#1. 쓰나미가 할퀸 사진들

너덜너덜한 타일 벽 같았다. 알고보니 물에 젖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변색된 사진들이 붙어서 만든 ‘슬픈 벽’이다. 2011년 3월 쓰나미(해일)가 일본 도호쿠 민가 곳곳을 할퀸 뒤 운명이 바뀐 사진들이다. 작가그룹 ‘추억구조 프로젝트’는 건물 잔해 속 사진들을 모았다. 가족의 추억이 깃들었던 사진들을 주인에게 찾아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심하게 훼손된 사진들은 결국 주인을 못 찾고 설치작품 일부가 되었다. 얼룩지고, 찢기고 해진 사진들의 벽을 훑어보면 앳된 아이와 가족 일가의 윤곽들이 드문드문 애잔한 잔상으로 남는다.

#2. 아마존이 울렁거린다

캄캄한 방. 선뜻 눈앞에 다가오는 건 30m나 되는 감광지다. 그 표면에 걸치듯 담긴 거대한 나무의 이미지.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쯤 이 거대 감광지 양옆으로 페루 탐보파타 강 아마존 우림의 생물, 수풀을 담은 날것 사진들이 흩어져있다. 페루 작가 로베르토 후아르카야가 2년여 고투하며 찍은 이 포토그램 사진들은 카메라 없이 정글 속 빛을 모아 감광지에 바로 인화한 작품들이다. ‘아마존 일부를 옮긴 듯 했다’는 평대로, 전시장에 밀림이 생동하는 듯했다. “살아있는 존재로, 산 것에 대한 상징으로서 아마존을 담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지금 성당못 근처의 대구문화예술회관 1, 2층에는 세계 사진가들의 기기묘묘한 표현 방식들을 재현한 간이 사진미술관이 6달 만에 뚝딱 차려졌다. 국내 최대의 국제사진축제라는 2014대구사진비엔날레 전시장이다. 12일 시작한 전시에서 총감독인 스페인 기획자 알레 한드로 카스테요테는 ‘사진의 서사’란 주제 아래 31개국 작가 250여명의 작품들을 끌어모았다. 비엔날레는 제도권 밖에서 불온한 이슈를 제기하는 것이 본령이지만, 이 전시는 근래 사진술의 다기한 표현 양상을 정리하는 데 치중한다. ‘기원, 기억, 패러디’를 주제삼은 주전시장과 이탈리아 현대사진들을 도열시킨 특별전 풍경은 영낙없는 특설 미술관이다.

2006년 창설 이래 5회째지만, 대구에서 2년마다 비엔날레가 열리는 사실은 아는 이들이 적다. 뚜렷한 지향점 없이 행사 때마다 주제는 물론, 기획자와 스태프들이 싹쓸이로 바뀌어왔다. 1년도 안되는 준비기간에 예산은 계속 줄여온 관행을 되풀이하면서 브랜드 세우기에 실패했다. 총감독 알레 한드로가 임명된 것이 3월이다. 전시 테마, 콘텐츠를 연구하기 위한 절대시간이 없었다. 현대 사진술의 다양한 면모를 우아하게 보여주는 교양 콘텐츠 전시로 변질된 것은 필연적인 선택이다. 사정 모르는 관객들은 포토그램, 콜라주, 설치, 라이브아트 등 갈수록 현대미술에 녹아들어가는 동시대 사진 요지경들을 즐기면 된다.

르네상스 회화의 착시기법을 ‘만드는 사진’ 기법으로 응용한 루이스 곤잘레스 팔마의 인물초상.
르네상스 회화의 착시기법을 ‘만드는 사진’ 기법으로 응용한 루이스 곤잘레스 팔마의 인물초상.
16세기 르네상스 회화의 착시요소들을 ‘만드는 사진’으로 끌어온 루이스 곤잘레스 팔마의 인물초상, 사진들의 거대 모자이크로 대도시 풍경과 얼룩말 이미지를 재구성한 빅 뮤니즈의 대작, 티벳의 주술적 이미지가 넘실거리는 중국작가 보무가 배를 들여 내놓은 설치작업과 이중초상 작업이 독특한 눈맛을 낸다. 사진의 서사란 주제에 맞춰 영화처럼 이미지 전개를 보여주는 대작들도 곳곳에 있다. 이탈리아 작가전시는 난해하지만, 세부를 잘 살린 구도, 남근을 정물사진에 넣는 등의 위트가 돋보인다. 아시아 작가들의 자연, 사람 풍경을 보여주는 딸림 전시 ‘만월’은 신기 가득한 이갑철 작가의 인물사진들이 우뚝하다. 위안부 출신 한중일 할머니들 사진모음과 여성 사진가들의 전쟁사진 섹션으로 나뉜 석재현 감독의 ‘전쟁 속의 여성’전(대구예술발전소)은 단순나열식 구성이 아쉽다. 할머니들의 일상적 삶을 밀착해 찍은 김영희씨의 작업, 베트남 전장의 산자와 죽은자를 극명하게 대비시킨 종군기자 캐서린 르로이의 명작들이 눈에 와닿았다. 10월19일까지. (053)655-4789.

대구/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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