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춘천에서 활동하는 라온 오케스트라는 2009년 텔레비전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모여 만들었다. 이들은 보육원, 장애인시설, 병원 등 소외된 곳을 찾아 연주하는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라온 오케스트라 제공
[문화‘랑’]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주부, 회사원, 교사, 의사 등 보통사람들이 뭉쳐 하나의 특별한 화음을 낸다. 시민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건 그리 녹록지 않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의 오케스트라에 대한 꿈은 계속된다. 음악이 좋고 사람이 좋고 무엇보다 행복하기 때문이다.
주부, 회사원, 교사, 의사 등 보통사람들이 뭉쳐 하나의 특별한 화음을 낸다. 시민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건 그리 녹록지 않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의 오케스트라에 대한 꿈은 계속된다. 음악이 좋고 사람이 좋고 무엇보다 행복하기 때문이다.
“베토벤 바이러스에 감염된 분들을 찾습니다. 3월27일 저녁 8시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분, 악기를 다뤄보고 싶은 분,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고 오케스트라 활동을 꼭 해보고 싶은 분들은 모두 모이세요.” 병원 엘리베이터에 붙은 공고를 보자, 환갑의 최애선씨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가슴속에 쟁여둔 잉걸불이 순식간에 불기둥으로 솟구쳤다. 결혼 전 가지고 있던 첼로를 30년 만에 꺼내들었다. 2009년 춘천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라온’은 이렇게 시작됐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2008년)는 보통사람들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드라마 인기를 타고 너도나도 오케스트라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는 그리 녹록지 않다. 우선 단원을 이끌 지휘자나 전문강사 확보가 쉽지 않다. 연습공간과 공연장 마련도 늘 고민거리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의 오케스트라에 대한 꿈은 계속된다. 음악이 좋고 사람이 좋고 무엇보다 더없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세종문화회관이 이들을 위해 멍석을 깔았다. 다음달 14~1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일대에서 열리는 ‘생활예술오케스트라 축제’다. “우리는 오케스트라 단원이다”라는 당당한 자부심이 곧 광화문에 쩌렁쩌렁 울린다.
“부엌의 첼로, 아동시설의 호른 다 모여라”
시민 오케스트라에서 활동중인 한 직장인은 아동복지시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시설에는 학생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있었다. 그는 호른을 불었다. 이 오케스트라는 지난해 뉴욕 카네기홀에서도 공연한 바 있다. 학창 시절이나 지금이나 그에게 오케스트라는 하나의 등불이다.
직장과 집안일에 쫓기다 뒤늦게 꿈을 이룬 이들도 있다. 주부 50여명으로 구성된 ‘송파뮤즈 오케스트라’다. 20대에서 70대까지 대부분 비전공자로 구성된 음악봉사단이다. 부엌 의자에서 켜던 첼로와 바이올린이 마침내 더운 김을 내뿜으며 ‘화음의 한솥밥’을 지었다. 작은 소리가 모여 거대한 하모니를 만들어낸다는 건,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다.
서울·수도권은 물론이고 지역에서도 오케스트라 열풍은 뜨겁다. ‘베토벤 바이러스’ 바람을 타고 5년 전 창단된 춘천 ‘라온 오케스트라’는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는 홍옥정 단장을 중심으로 모였다. 54명 단원 가운데 기악 전공자는 한 명뿐이다. 엄덕기(41·교사) 단무장은 “우리 단체의 특징은 모자·모녀 같은 가족단원이 있다는 점이다. 단원의 대화가 곧 가족의 대화인 셈”이라고 했다. 이들은 보육원, 장애인시설, 병원 등 소외된 곳을 찾아 봉사활동에 열심이다. 정통 클래식보다는 ‘가브리엘 오보에’,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은 영화음악을 주로 연주한다.
흔히 오케스트라를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한다면 그에 딱 들어맞는 단체가 ‘가우디움’이다. 학생, 회사원, 예술인, 출판인, 방송인, 의사, 약사, 교사, 주부 등 다양한 분야의 70여 명이 모였기 때문이다. 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김동혁(43·성결대 겸임교수) 대표는 “우린 거창한 목적보다는 그냥 즐기려고 음악을 한다”고 했다. 기악 전공자가 한 명도 없지만, 지휘를 전공한 김 대표를 중심으로 오케스트라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이번 ‘생활예술오케스트라 축제’에서 연주할 곡은 말러 교향곡 1번이다. 이들은 토요일마다 월 60만원을 내고 빌린 서울 낙성대 연습실에서 ‘귀를 세우고 미간을 좁히며’ 구슬땀을 흘린다.
김 대표는 오케스트라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개인적으로 악기를 다루던 사람들이 소속감을 가지면 책임감이 강해진다. 다른 예술과 달리, 연주는 그 순간이 지나면 되돌릴 수 없어 긴장감이 엄청나다. 하지만 그런 위기를 넘긴 다음 느끼는 희열 또한 엄청나다.”
다양한 사람들 모여 ‘하모니’
주부로 구성된 음악봉사단도
연습실·공연장 확보 어려워
지역문화회관 개방 필요성
새달 생활예술오케스트라 축제
51개 단체서 2200여명 참여
시민 자율적 축제 열고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연주를 하고 있으면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할 정도로 나만의 인생이 가득 차오르는 걸 느껴요.”(전민숙), “일본에 세계 유명 국민축제인 ‘국민문화제’가 있다면, 이제 대한민국에는 생활예술오케스트라 축제가 있습니다.”(나카야마 사토루) 이번 축제에 참여한 단원들은 이렇게 만족도가 높다. 오디션 심사를 맡았던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늘 봐오던 국내외 정상급 연주와는 다른 아마추어의 열정이 느껴졌다. 이들 오케스트라는 마음을 맞추고 음률을 맞추고 서로 소통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보통시민들이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먼저 지휘자를 정하고 악기별 단원을 모아야 한다. 특정 악기에만 지원자가 몰려 희소한 악기는 연주자가 부족하다는 점도 극복할 과제다. 무엇보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가장 어려운 점은 연습실과 공연장 확보다. 연습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걷어 어떻게 한다 치더라도 공연장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기 때문이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집계를 보면, 자치단체의 문화예술회관은 모두 204곳에 341개 공연장이 있다. 공연장의 기동률은 서울이나 도심 지역은 70%를 웃돌지만, 전국적 평균치는 35%에 그치고 있다. 지역 문화회관이 주민들의 예술·연습공간으로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세종문화회관이 마련한 ‘생활예술오케스트라 축제’(sejongpac.or.kr)에는 51개 단체 2200여명이 참여했다. 지금까지의 관 주도에서 탈피해 이들의 대표가 직접 공연프로그램을 짰다. 앞으로 이들은 지속적은 네트워크를 맺고, 시민예술의 꽃을 활짝 피우겠다는 각오다. 내년에는 전국적으로, 2016년에는 세계 오케스트라 단체 교류행사로 확대할 구상도 해뒀다.
축제 일정을 보면, 다음달 14~18일 단체별 공연이 있다. 마지막 날인 19일 연합공연에는 600명의 윈드오케스트라의 야외공연에 이어 100명의 참가단체 연합 오케스트라가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연합공연 지휘를 맡은 임헌정 코리안심포니 음악감독은 “생활오케스트라 운동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는 음악을 더욱 가까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뜨거운 열정과 아름다운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02)399-1612, 1618.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주부로 구성된 음악봉사단도
연습실·공연장 확보 어려워
지역문화회관 개방 필요성
새달 생활예술오케스트라 축제
51개 단체서 2200여명 참여
주부들로만 구성된 ‘송파뮤즈 오케스트라’는 직장과 집안일에 쫓기다 뒤늦게 꿈을 찾아 모였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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