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씨의 신작 ‘태양의 도시 II’(큰 사진). 길이 33m, 높이 7m의 전시실 바닥과 벽을 거울조각들로 뒤덮고 전등 빛을 내쏘아 지금 문명의 풍경을 황량한 분위기로 표현한 작품이다. 작은 사진은 안개에 싸인 다른 신작 ‘새벽의 노래 III’ 앞에 선 이불 작가의 모습이다.
한국현대미술 대표 여성작가
문명적 통찰 담은 대작들 선봬
문명적 통찰 담은 대작들 선봬
“어떠세요? 얼어붙은 바다 같기도, 황막한 광야 같기도 하죠? ”
거대한 전시실을 온통 크고 작은 거울조각들로 뒤덮어놓은 방을 나오자 작가 이불(50)씨가 물었다. 29일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하 전시실에는 기괴한 거울방이 선보였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여성작가 이씨가 내놓은 회심의 신작 ‘태양의 도시 II(Civitas Solis II)’다.
취재진에 공개한 신작은 길이 33m, 폭 18m, 높이 7m의 규모의 공간설치 작품이다. 대형 전시실의 사방벽면과 바닥면 전체를 거울과 그 조각들로 빼곡히 채워 관객들은 조각들 틈 사이로 미로를 헤치듯 조심스레 다녀야 한다. 마치 얼음을 깨는 쇄빙선이 항해하는 모양새다. 전시실 안쪽에는 구석 곳곳에 설치된 전구들이 거울조각과 벽면에 빛을 내쏜다. 관객들은 그 빛들이 반사되어 자신들 모습이 기괴한 덩어리처럼 굴절되어 나타나는 거울 벽면을 지켜보면서 광야를 걷는 듯한 느낌에 빠지게 된다. 디지털 온라인 등을 통해 만인의 생각과 주장이 홍수처럼 전파되는 지금 문명의 풍경은 총체적 인식이 아닌, 파편적인 인식을 끌어모아 만들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생각을 반영한 작품이다.
그 옆 천장 높은 방에는 역시 신작인 ‘새벽의 노래 III(Aubade III)’가 뿌연 안개에 싸인 채 매달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독일 근대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의 기념비 건축과 20세기 초 비행하다 추락한 힌덴부르크 비행선 같은 모더니즘 상징물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조명탑 구조로 발전시킨 형태라고 한다. 투명 강화플라스틱인 폴리카보네이트의 조각들을 얼기설기 엮어 매달린 수직 탑모양으로 만든 이 조형물은 표면에 붙어 깜박거리는 엘이디(LED) 조명등과 전시장을 채웠다가 사라지는 안개가 어우러지면서 세기말적인 이미지를 연출한다. 중세 유럽의 사랑시에서 노래한 우리 삶의 아름다움, 죽음의 필멸성 등을 현대적 맥락에서 성찰한 내용을 담고있다고 미술관 쪽은 설명했다.
이불씨는 90년대 허공에 매달린 알몸 퍼포먼스와 썩은 생선을 치장하는 ‘화엄’, 유기적인 몸과 로봇이 결합된 ‘사이보그’연작 등으로 주목받았다. 여성성과 시대 상황이 갈등하며 빚어내는 불안과 고통을 표상했던 그의 작업은 2000년대 중반부터 ‘나의 거대서사’ 연작을 통해 문명적 통찰로 외연을 넓혀왔다. 이번 두 신작은 최근 작가가 좇아온 사유의 흐름을 스펙터클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현대자동차 후원으로 올해부터 10년간 해마다 한명씩 국내 중진작가를 지원하는 프로젝트인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의 첫 기획이다. 내년 3월1일까지. (02)2188-6072.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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