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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오라토리오와 카스트라토

등록 2005-09-21 16:49수정 2005-09-21 16:54

노승림의무대엑스파일
금지와 억압속에서 ‘예술’ 꽃피우다

공연이란 사실 그 기원을 들여다 보면 참으로 원초적인 예술이다. 그 기원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신에게 기원하는 제사며 종교적인 의식이었고, 이후에는 스스로의 삶을 표현하고 위로하는 희락의 도구가 되었다. 경건함과 유희의 양쪽 극단을 오가는 이러한 예술 장르는 중세 시대 가톨릭 교회에게 참으로 통치하기 힘든 대상이었다. 중세시대의 실권자였던 로마의 교황청 스스로가 오페라며 연극 공연을 여지없이 맹목적으로 지지하는가 하면 극장을 죄악의 근원지로 지정하고 원천봉쇄에 나서는 등 일관성 없는 정책을 시행했다. 참으로 희귀한 제약과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공연예술, 특히 오페라는 대안을 모색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1701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교황청은 그에 걸맞는 ‘획기적인’ 지침을 발표했다. 로마의 클레멘트 11세는 신성한 해를 맞이하여 신을 기리는 차원에서 향후 1년간 극장에서 상연되는 모든 종류의 대중공연을 엄금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이러한 금지령은 스페인에서 벌어진 왕위계승 전쟁으로 정치적 분위기가 악화된 데 따른 조처였다. 1년간 예정되었던 교황의 칙령은 그러나 그로부터 10년이나 연장되었다. 1년 뒤에도 정치적 사정이 별반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자 교황은 다시 금지령을 1년간 연장했다. 1703년에는 자연재해가 이유였다. 1월과 2월 로마에는 두 차례에 걸친 대 지진이 발생했다. 도시 건축물의 절반이 파괴되는 대재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었다. 교황은 이를 신의 축복이라 여기고 감사의 표시로 또 향후 5년간 모든 극장에서의 공연을 금지시키는 공표를 내렸다. 이런 저런 이유와 금지령으로 인하여 오페라와 발레, 연극 공연은 로마의 공식적인 석상에서 모습을 감출 수밖에 없었고 1710년에 가서야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황청의 금지령에 의해 공연예술이 발전하지 못하고 쇠퇴의 길을 걸었느냐 하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교황청이 ‘대중’ 공연을 금지시켰다는 것에 착안하여 예술가들은 <오라토리오>라는 신생 장르를 개척했다. 종교적인 소재에서 출발한 이 새로운 차원의 극예술은 오페라의 대안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모았으며 그 누구보다 교회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폐쇄된 극장대신 부유한 장관과 추기경의 궁전으로 무대가 옮겨졌고 여기에서 벌어지는 공연은 교황도 막을 수 없었다. 초창기 오페라 작곡가로 활동하던 작센 출신의 젊은 헨델과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 칼다라도 오라토리오 작곡가로 전향하여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이 시대의 금지와 억압은 스스로 또다른 사회적 문제를 유발시키기도 했으니, 다름 아닌 카스트라토가 그것이다. 1500년대 교황청으로부터 여성들의 공연을 금지시키는 칙령이 발표되자 작곡가들은 여성 가수의 대역으로 카스트라토(거세한 소프라노 목소리의 남성 가수)를 기용했다. 이들은 오페라가 잠시 금지되었던 18세기 말까지 활동하였고, 당연히 오라토리오에서도 주역가수로 노래했다. 결혼이 금지된 남자 성직자들에게, 남성과 여성 대역의 남성이 부르는 사랑의 이중창은 남성과 여성의 그것보다도 더 자극적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 시대 카스트라토가 교황청의 사랑을 받고 예술의 꽃으로 만개한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을지 모른다.

노승림 공연 칼럼니스트/성남문화재단 홍보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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