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가 베르나르 프리츠
베르나르 프리즈 추상화 개인전
공장서 생산하듯 계획짜서 작업
공장서 생산하듯 계획짜서 작업
화면 위에 화려한 무지개빛 색채들이 선율처럼 이리저리 물결친다. 운율에 실린 싯구들이 그림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약동하는 듯하다. 다채로운 선을 타고 색채가 율동하는 그림들이 전시장 곳곳에서 펼쳐져 있다.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의 조현화랑에서 지난달부터 개인전을 열고 있는 프랑스의 대가 베르나르 프리츠(65·사진)는 독특한 추상그림을 그려왔다. 마르크시즘에 탐닉한 좌파 예술가로 자신을 소개한 그는 대부분 그림들을 10여분만에 슥삭 그렸다면서 “나는 노동자처럼 일한다”고 잘라말했다. 색채는 숨쉬듯 약동하며, 서정적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그림이 공장에서 생산 일정을 짜듯 치밀한 계획에 따라 나온다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그릴 색깔과 붓의 각도, 사용하는 붓의 크기 등 아이디어를 보조스태프와 상의해서 미리 짜고 작업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흔히 추상그림을 형상 없이 색조와 선의 움직임으로 작가의 자유로운 내면을 표현하는 유한층 취향의 그림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노동자 입장에서 계획적으로 생산하는 추상미술은 부르조아적인 기존 추상미술과 어떻게 다를까. 베르나르의 신작 15점은 이런 궁금증을 피워올린다. 작가의 대답은 거침 없었다.“마르크시즘을 정치적 맥락으로만 생각하는데, 사실 마르크스의 사상은 다양한 생각과 관념의 통로를 열어주고, 우리 삶과 문화에서 노동의 소박한 과정과 그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이런 맥락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주제와 형상을 철저히 배제하고 사전에 다른 사람들과 논의한 질서와 계획에 따라 작업해왔습니다. 관객들은 그 작업 성과를 보며 저마다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떠올리면 되는 겁니다. 미술의 민주화를 지향한다고 해야 할까요.”
40여년간 추상 색면회화를 그려온 베르나르는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프란시스 베이컨, 도날드 저드 등과 함께 참여한 거장이다. 지난해 미국 뉴욕 페이스갤러리에 이어 올해 프랑스 파리 페로탱 갤러리와 영국의 사이먼 리 갤러리에서 전시하며 활발한 작업을 벌이고 있다.
전시에 나온 신작들은 그림 위에 바른 레진안료의 두터운 층과 아크릴 물감의 유연한 선과 색감이 어우러져 있다. 규칙과 질서를 생각하며 작업하지만, 나오는 이미지들은 우연한 연상을 일으키곤 한다. 과장된 의미와 상찬으로 뒤덮여있으나, 여전히 실체가 모호한 한국의 70년대 단색조그림과 여러모로 비교해가며 볼 수 있는 전시다. 19일까지. (051)747-8853.
부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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