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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현대음악계의 큰별 진은숙 “좋은 예술가란…”

등록 2014-10-12 19:36수정 2014-10-13 14:41

작곡가 진은숙(53) 씨. 사진 서울시향 제공
작곡가 진은숙(53) 씨. 사진 서울시향 제공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 예술감독 방한
북미·유럽 5개 악단이 공동위촉한
‘클라리넷 협주곡’ 뉴욕필 개막서 초연
다채로운 음색·변화무쌍 전개 환호

“창작 때마다 지옥 갔다 오는 고통
흐트러질 때면 음악 안에 날 가둬
‘아르스 노바’ 서울시향 수준 높여”
지난 9월23일 미국의 대표적 교향악단 뉴욕필은 2014~2015년 시즌 개막무대 프로그램으로 한국 작곡가 진은숙(53)씨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올렸다. 뉴욕필을 포함해 북미 및 유럽 5개 악단이 공동위촉한 작품의 미국 초연 무대였다. 앨런 길버트 예술감독이 직접 작품에 대해 소개하고 협연자인 클라리네티스트 카리 크뤼쿠가 특징적 주법을 시연한 뒤 본연주가 이어졌다. 클라리넷이 휘파람처럼 등장해 팡파레로 변화해가는 1악장, 독주 클라리넷과 오케스트라 클라리넷의 멀티포닉스(배음을 이용해 하나의 운지로 여러 개의 음을 내는 주법)를 기발하게 요리해낸 2악장, 재즈의 즉흥연주를 연상시키는 3악장은 다채로운 음색과 변화무쌍한 전개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객석에서는 현대음악으로서는 이례적이라 할 만큼 열광적인 환호가 쏟아졌다. 이튿날 <뉴욕타임스>는 문화면의 커버 스토리로 진씨의 인터뷰와 공연 리뷰를 대서특필했다.

이뿐이 아니다. 지난 5월에는 정명훈의 지휘로 베를린필이 진씨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했다. 현존하는 한국 작곡가의 작품을 베를린필이 연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동양인 여성 최초로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 상주 작곡가로 선정된 진씨는 지난 8월 페스티벌 기간 중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의 지휘로 신작 ‘사이렌의 침묵’을 세계 초연하기도 했다.

내년 상반기에만 해도 1월에는 쾰른 서독일 방송 교향악단이 진씨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독일 초연하며, 2월과 3월에는 LA필하모닉과 BBC심포니가 진씨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주할 예정이다. 진씨는 현재 보스톤 심포니, 영국의 사우스뱅크센터 등 4개 단체가 공동 위촉한 작품을 쓰고 있으며,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 필 사임 전 마지막 시즌(2017-2018년 시즌) 에 연주하기 위해 직접 위촉한 작품, 2019년 영국 코벤트가든에서 공연할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후속작 <거울 나라의 앨리스> 등을 구상 중이다.  

진은숙은 오늘날 가장 바쁜 작곡가 중 한 명이며, 명실공히 현대음악계를 주도하는 큰 별로 대접 받고 있다. 작곡 외에도 서울시향과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에서 각각 현대음악 연주 프로젝트 ‘아르스 노바’와 ‘뮤직 오브 투데이’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한창 손길이 많이 가는 사춘기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하다. 지난 7일, 아르스 노바 공연차 내한한 진씨를 만났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작곡가 진은숙(53) 씨. 사진 서울시향 제공
작곡가 진은숙(53) 씨. 사진 서울시향 제공
- 최근 뉴욕 필의 <클라리넷 협주곡> 연주에 대한 청중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고 들었다.

“리허설과 연주 무대에서 지휘자 앨런 길버트가 열성을 다해줬다. 해설과 시연까지 곁들여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 뉴욕의 청중은 호기심이 많고 지적인 갈구가 있다. 평소 청중의 호응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데, 주변에서 이 정도면 엄청난 반응이라고 말해주더라. 그러나 나의 관심은 곡의 완성도가 어떠한가, 연주가 잘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 스케줄이 굉장히 다양하고도 많다. 창작 시간과 집중력은 어떻게 확보하나.

“지금까지는 남편(핀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기획자 마리스 고토니)의 도움으로 간신히 해오고 있다. 내 생활의 중심은 작곡과 현대음악 프로젝트 예술감독으로서의 일 두 가지다. 앞으로는 창작에 더 집중하기 위해 본질적인 것 말고는 정리해나갈 생각이다. 그래서 콩쿠르 심사나 강연은 하지 않고 있다. 요즘은 내 작품이 발표되는 곳에도 못 가는 경우가 많다. 음악 외적인 일로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는 음악을 듣거나 피아노를 치면서 나를 끌어다가 다시 음악에 가두려 한다. 정명훈 지휘자가 단 5분이라도 시간이 나면 문을 걸어 잠그고 피아노 연습을 하시는 걸 보고 배우는 게 많았다.” 

- 예술적인 영감에 대한 자극이나 환기가 필요할 땐 어떻게 하나.

“좋은 음악이나 책, 그림을 접한다. 타인이 이뤄 놓은 예술 작품을 접하고 그것을 깊이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의 아이디어나 비전 같은 게 생기곤 한다.”

- 다시 태어나도 작곡을 하겠나. (진씨는 여러 인터뷰에서 ‘작곡할 때마다 지옥에 갔다 오는 듯한 고통, 자신이 벌레가 된 듯한 초라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스스로 작곡을 위해 태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던데, 난 아니다. 지금도 먹고 살 길이 있으면 안 하고 싶다. 그 만큼 힘들다는 이야기다.”

- 작곡가로서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지점은 어디인가.

“‘오리지널리티’를 갖는 것, 남이 하지 않은 나만의 것을 이뤄내는 것이다. 이루기 힘든 목표이지만, 좋은 예술가란 바로 그 ‘오리지널리티’로 결정되는 것 아닐까. 그것을 달성해가는 과정이 예술가의 인생인 것 같다. 우선은 죽기 전에 스스로 완벽하다 싶은 곡을 단 한 곡이라도 쓰고 싶다.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웃음)”

- 바쁜 와중에도 서울시향의 아르스 노바를 위해 기획은 물론 연주자 섭외에까지 나서고 있다. 지난 2013년부터 개인적으로 받는 연간 5000만원의 후원금도 이 프로그램을 위해 기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왜 이런 정성을 들이는 것인가.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사실 그게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는 정명훈 지휘자가 서울시향을 발전시키는 일을 돕고 싶어서다. 서울시향이 월드 클래스의 오케스트라가 되려면 정통 레퍼토리만으로는 안 된다. 현대음악을 포함해 다양한 음악을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아르스 노바를 시작한 지 9년째인데, 청중의 호응도 높아졌지만 무엇보다 단원들이 많이 변했다. 예전 같으면 어렵다며 피하던 현대 곡들을 이제 굉장한 수준으로 연주한다. 새로운 음악을 수용하는 능력과 자신감이 생겼다. 그 만큼 악단이 발전했다는 거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사진 서울시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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