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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베토벤인가? 리스트인가? 괴물이다!

등록 2014-10-15 19:07

[리뷰] 트리포노프 피아노연주회

23살 자신만의 영역 뚜렷해
재연가 아닌 작곡가 보는 듯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 사진 마스트미디어 제공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 사진 마스트미디어 제공
지난 14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23·사진)는 지난해 첫 내한 당시 청중이 농담처럼 내뱉던 말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이 친구 혹시 외계에서 온 괴물 아냐?”

대개의 피아니스트가 작곡가의 의도를 구현해내는 재연가에 가깝다면, 그는 자신을 작품에 그대로 투영해 작곡가의 현신(現身)이 되는 듯하다. 트리포노프의 연주는 특정 작품에 대해 관례화된 접근법들을 전혀 따르지 않아 거장들의 기존 연주를 바탕으로 한 평가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마치 작곡가가 살아 있다면 이렇게 연주할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에 설득 당하게 된다.

첫 곡은 바흐가 오르간용으로 쓴 ‘환상곡과 푸가 g단조’를 리스트가 피아노용으로 편곡한 작품이었다. 트리포노프는 건반에 엎드리다시피 몸을 밀착시키고 테누토(음표 길이의 한도껏 음을 충분히 유지하는 것)로 연주하면서 댐퍼 페달을 이용해 공연장 안을 잔향으로 채워나갔다. 피아노를 이용해 오르간적인 거대한 음향층을 형성하고, 파이프에 따라 음색이 바뀌듯 다양한 음색을 뽑아내는 그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이어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번’에서 그는 동물적 본능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다. 온 몸의 감각을 곤두세워 작품에 내재한 방향성과 힘에 올라탔다. 속도를 당기며 에너지를 분출하듯 기세를 올렸다가 다시 부드럽고 여리게 잦아드는 ‘밀고 당기기’로 듣는 이의 심장까지 덜컹거리게 했다. 동시에 대위법적 구조의 견고함도 놓치지 않았다. 안개 속에서 빛나는 반딧불이 같은 2악장 4번째 변주도 인상적이었다.

리스트의 ‘12개의 초절기교 연습곡’은 긴장의 완급과 음색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재배치된 순서로 연주됐다. 한층 몰입도가 높아진 트리포노프는 이 작품에서 무아지경에 이른 듯했다. 제4곡 ‘마제파’에서 그는 명징한 타건, 노련한 패달링, 무섭게 질주하는 속도 등 기교적인 모든 부분에서 압도적이었다. 제5곡 ‘도깨비 불’과 제9곡 ‘회상’에서는 마치 성대를 대신해 손가락으로 노래하는 듯한 독특한 표현력으로 여운을 남겼다.

분명한 것은 다닐 트리포노프가 또래 피아니스트들과 다른 트랙을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피 튀기게’ 경쟁하는 전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이제 스물 셋인 그가 앞으로 어디까지 이르게 될 지 그의 잠재력을 주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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