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다방 내부. 60년대 옛 건물의 콘트리트벽을 헐고 적벽돌 벽체를 드러내 옛적 분위기를 살린 모습이 인상적이다.
“도끼눈 뜬 주민들 아직 있죠
서로 이질적이니까요…
이 거리와 공존할밖에요”
서로 이질적이니까요…
이 거리와 공존할밖에요”
“야, 이거 작품이네!”“전시 잘 골랐지? 나도 뭐가 뭔지 모르고 했는데 느낌이 좋아.”
15일 낮 서울 문래동 3가 철공소 거리 골목길의 대안공간 이포 전시장. 그림 그리는 김재준 작가와 이곳 주인인 사진가 박지원 대표가 수십년 주물공장이던 내부를 휘휘 둘러봤다. 그을음 내려 앉은 천정과 벽체를 배경으로 그들 앞에 산업용 목형들이 널부러져 있다. 맨홀 뚜껑이나 고기 굽는 불판, 알미늄 섀시 등을 떠내는 나무 거푸집으로, 흔히 ‘로구로’라고 부른다. 다기한 기하학적 모양새에 표면에는 도톨도톨하게 점이나 선 같은 무늬들이 솟아있다. 영낙없는 현대미술품 같지만, 이곳 목형 기술자들이 만든 생업의 산물이다. 100점 가까운 목형들 사이를 길고양이들이 냐옹냐옹 울면서 어슬렁거렸다.
가을바람 부는 요즘, 철공소거리의 풍경, 냄새, 소음을 벗 삼는 문래동 작가들은 바쁘다. 이포에서 12월 열릴 작가와 철공소 사람들의 협업전시 ‘내용증명’과 각자 전시를 준비하고, 아르바이트 생계를 챙기느라 할 일들이 빠듯하다. 이포에서 열릴 ‘내용증명’전은 문래동 역사를 지켜본 철공소 사람들의 삶과 일상을 작가들 다큐기록과 목형 등을 재창작한 작업에 담아 보여주게 된다. 3~4월 이곳 건물들 옥상에서 작가들의 사회적 예술작업들을 선보였던 ‘옥상민국’전시를 주도했던 이포는 문래동의 대표 사랑방. 온지 7년째라는 박 대표는 “이곳의 일상과 삶을 기록하는 작가이자 아카이브팀원이며 이를 세상에 내보이는 연출자로서 1인 다역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60~80년대 철공소단지로 번성하다가 90년대 이후 업체 이전으로 퇴락해가던 문래동 거리에 홍대 등에서 흘러와 예술촌을 형성한 작가들이 이제 300명 가까이 된다. 서울시의 지역 예술거점 정책으로 예술촌들이 만들어졌지만, 이곳만큼 주민, 작가 사이에 공동체 작업이 역동적으로 진행되는 곳은 드물다. 샤링, 밀링, 단조 업체들이 작업실과 맞붙은 거리 아트투어와 옥상 텃밭, 용접 체험, 철공소 사진찍기 자제를 권하는 표지판 프로젝트 등이 잇따라 나왔다.
철공소 사람들의 삶과 일상
다큐기록·목형 등에 담기로
각자 전시 준비 겹쳐 바쁜 일상 ‘사랑방’ 문래다방 모인 작가·주민
서울시 예술촌 지원 움직임에
지나친 상업화 우려 목소리 커 점심 때가 지나자, 이포에 음악기획자 한민규씨가 찾아왔다. 인근 지하에 작업실을 차린 한씨는 9월 문래동 기업은행 앞에서 성악가들을 초대해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차린 기획통. ‘내용증명’전 공연으로 선보일 ‘철의 노래’에 대해 상의하러 왔다.“형님, 공연 콘셉트를 철공소 거리의 소리와 클래식 등이 만나는 무대로 하려는데 어때요?”“이 거리 소리가 밤낮 다르잖아. 재미있는 조합이네.” “참, 오후 5시에 김윤정씨 전시 개막해요.” 20대 작가 김윤정씨는 벽화작업도 함께 한 절친한 후배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문래동 1가 문래예술공장이 전시장이다. 가보자고 한 감독이 채근한다. 오후 2시반, 작가 정웅선씨가 운영하는 길 건너편 문래다방에 잠시 들렀다. 그림과 출판디자인, 커피 전문가인 정 작가가 1년전 문을 연 이 다방도 작가, 주민들이 모이는 이야기 마당. 은행 지점장 출신으로 작가들의 큰 형님인 주민 최영식씨가 손 흔들어 인사했다. 속속 여러 작가들이 모여들었다. 말판은 재개발과 창작촌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풀려갔다. 문래 1~3가 철공소 거리는 2000년대초 재개발 지구로 고시됐지만, 최근 예술촌이 유명세를 얻자 시 쪽에서는 예술촌 지원으로 방향을 바꾸려는 낌새다. 쫓겨날 우려는 덜었지만, 상업화로 임대료가 치솟고 다시 밀려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생겨났다. 최씨는 “예술촌의 미래는 작가와 철공소 사람들이 서로 이질적인 존재임을 인정하고 공존하려는 현실적 태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오후 5시 문래예술공장. 목탄가루를 흩뿌려 대자연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김윤정씨 전시장에 작가들이 다시 모였다. 전시장 옆 주방에서 맥주를 기울이며 예술촌 장래에 대한 고민들을 쏟아낸다. “여전히 우리를 도끼눈 뜨고 보는 주민들도 적지않아요. 철공소의 거리의 삶과 공존하며 가는 수밖에 없어요.”(김윤정) “딱 부러진 대안은 없어요. 아카이브팀처럼 거리에서 주민들과 일대일로 인연 맺으며 지속가능한 예술촌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중요하죠.”(박지원)
생각의 결들은 조금씩 달라도, 서울 한 구석 문화지도를 그들은 그렇게 각자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김현정씨의 전시 개막 뒤 문래다방에 모여 서로를 찍어주며 뒤풀이를 즐기는 이곳 입주작가들.
다큐기록·목형 등에 담기로
각자 전시 준비 겹쳐 바쁜 일상 ‘사랑방’ 문래다방 모인 작가·주민
서울시 예술촌 지원 움직임에
지나친 상업화 우려 목소리 커 점심 때가 지나자, 이포에 음악기획자 한민규씨가 찾아왔다. 인근 지하에 작업실을 차린 한씨는 9월 문래동 기업은행 앞에서 성악가들을 초대해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차린 기획통. ‘내용증명’전 공연으로 선보일 ‘철의 노래’에 대해 상의하러 왔다.“형님, 공연 콘셉트를 철공소 거리의 소리와 클래식 등이 만나는 무대로 하려는데 어때요?”“이 거리 소리가 밤낮 다르잖아. 재미있는 조합이네.” “참, 오후 5시에 김윤정씨 전시 개막해요.” 20대 작가 김윤정씨는 벽화작업도 함께 한 절친한 후배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문래동 1가 문래예술공장이 전시장이다. 가보자고 한 감독이 채근한다. 오후 2시반, 작가 정웅선씨가 운영하는 길 건너편 문래다방에 잠시 들렀다. 그림과 출판디자인, 커피 전문가인 정 작가가 1년전 문을 연 이 다방도 작가, 주민들이 모이는 이야기 마당. 은행 지점장 출신으로 작가들의 큰 형님인 주민 최영식씨가 손 흔들어 인사했다. 속속 여러 작가들이 모여들었다. 말판은 재개발과 창작촌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풀려갔다. 문래 1~3가 철공소 거리는 2000년대초 재개발 지구로 고시됐지만, 최근 예술촌이 유명세를 얻자 시 쪽에서는 예술촌 지원으로 방향을 바꾸려는 낌새다. 쫓겨날 우려는 덜었지만, 상업화로 임대료가 치솟고 다시 밀려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생겨났다. 최씨는 “예술촌의 미래는 작가와 철공소 사람들이 서로 이질적인 존재임을 인정하고 공존하려는 현실적 태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15일 낮 서울 문래동 철공소 거리 안 골목길에 자리한 대안공간 이포의 전시장에서 박지원 대표와 김재준 작가가 쌓인 목형들을 보며 작업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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