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1일부터 서울 남산 국립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단테의 신곡>은 “통렬한 반성을 통해 지옥의 출구를 찾는 이야기”로 새롭게 태어났다. 지금 여기의 이야기, 세월호 이야기로도 읽힐 수 있다. 국립극장 제공
1년 만에 돌아온 ‘단테의 신곡’
원작 없던 늙은 단테, 자신 꾸짖고
통렬한 반성 끝 세상에 나가기로
“세월호 출구, 지식인 반성 때 열릴것”
무대도 유리건물 늘려 연옥 강조
원작 없던 늙은 단테, 자신 꾸짖고
통렬한 반성 끝 세상에 나가기로
“세월호 출구, 지식인 반성 때 열릴것”
무대도 유리건물 늘려 연옥 강조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아래 1층보다 조금 더 낮은 지층이 있다. 해오름극장에서 내려가면 마치 지하실 같다. 바로 그곳에 지옥-연옥-천국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그린 연극 <단테의 신곡> 연습장이 있다. 지층에서 꿈꾸는 천국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21일 연습실을 찾았다. 오는 31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 공연을 앞두고, 연습이 한창인 임시무대는 뒤쪽이 높고 아래쪽이 낮았다. 지옥에 떨어진 단테가 서서히 일어났다.
“나는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시인으로 살 것을 다짐했지만 어느 누구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했어요. (중략) 나는 정의를 말하면서도 한번도 불의와 싸우지 않았고, 상처 하나 없는 몸으로 죽어가는 자들을 비웃었습니다. 나는 한 여인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구하지 않았어요. 나는…죄인입니다.” 그 순간 지옥의 출구가 열린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너머 새로운 공간이 보인다. 그때 단테는 “내 이름은 단테, 지옥을 견디는 자입니다”라는 대사를 고통스럽게 내뱉었다.
■ “지옥의 지식인이여, 통렬히 반성하라”
<단테의 신곡>이 새롭게 변신했다.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지난해 공연 마지막날, 국립극장은 한태숙 연출에게 재공연을 제안했다. 한 연출은 “다시 공연한다면 변경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1년 전 다짐대로 올해 오르는 ‘신곡’은 확 달라졌다. 변화의 뼈대는 단테의 통렬한 자기반성, 원작에 없는 늙은 단테의 등장, 무대 전면개편 등이다.
먼저 대본이 바뀌었다. ‘불의와 싸우지도 않고 죽어가는 자를 비웃은’ 지식인 단테는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친다. 뼈아픈 반성을 통해 지옥의 출구를 찾는다는 이 부분이 변화의 핵심이다. 마치 신곡을 쓰기 위해 태어난 듯 이름이 ‘연옥’인 고연옥 작가는 ‘세월호’에서 지옥을 봤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절망하고 잊어버리고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돌아가죠. 신곡에서 지옥의 죄인들이 형벌에 익숙해져 죄의식이 없어진 모습과 굉장히 유사해요. 단테는 지옥을 빠져나가는 방법으로 자신을 통렬하게 반성하지요. 지식인들이 반성했을 때 출구가 열리는 것이죠. 이런 고민과 결단이 지금 여기 우리들의 얘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고 작가는 세월호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데는 부정적이다. “세월호를 다루는 연극들이 많아지는 건 사실이고요. 하지만 소재로 다루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 단테 옆의 늙은 단테, 자신과의 싸움
“천국에 가자!” 지현준, 정동환, 박정자 등 25명 남짓한 배우들은 연습을 시작하기 전 둥글게 스크럼을 짜고 외쳤다. 천국 편의 마지막 장면. 기울어진 무대 위쪽으로부터 늙은 단테가 내려와 단테 옆에 선다. 늙은 단테는 원작에 없던 인물이다.
늙은 단테는 “천국은 그저 한때 내 마음을 스쳐간 풍경이었을 뿐. 난 한번도 싸워보지 못한 도망자, 어느 누구의 마음 하나 움직이지 못한 패배자였다”며 자기 자신인 단테에게 말한다. 단테는 “(고민 끝에) 분명 그랬을 겁니다. 나 이제 두려움 없이 세상 속으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아”라며 다시 지상으로 돌아온다.
고연옥 작가는 “단테 원작에는 구체적으로 지상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안 나옵니다. 단테는 쫓겨난 망명자 신세로 지옥-연옥-천국을 경험한 뒤, 늙은 단테로부터 패배자, 도망자라는 말을 듣죠. 단테는 그걸 알면서도 지상으로 가는 거죠. 꿈속에서만 살지 않고, 삶과 대면하겠다는 거죠”라고 설명한다. 단테는 삶을 반성하고, 성찰하고, 삶과 맞서는 자가 된 것이다.
천국 부분이 많이 보강된 <단테의 신곡>은 대본뿐 아니라 무대도 달라졌다. 지난해 회전 구축물을 사용했다면, 올해는 유리 건물로 연옥을 표현했다. 지옥의 죄와 천국의 희망이 공존하는 공간을 새로 만들어낸 것이다. (02)2280-4114~6.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연극 <단테의 신곡>의 한 장면. 국립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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