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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이상과 김수영, 연극이 된 시인들

등록 2014-10-29 19:28수정 2014-10-29 21:08

시인 이상(1910∼1937)이 또 다른 자아인 이상과 만났다. 그의 수필 <권태>를 소재로 한 연극 <하늘은 위에 둥둥 태양을 들고>에서다. 식민지 조선의 이상이 자신과 만났다면, 자유가 억압된 시대를 산 시인 김수영(1921~1968)을 통해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보는 연극도 곧 무대에 오른다. 시 <고궁을 나서며>를 모티브로 한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다. 이상과 김수영, 연극이 된 두 시인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질까. 이상을 통해 우리 내면의 일그러진 고독과 불안을 대면한다면, 김수영을 통해서는 우리 내면의 왜소한 소시민성과 마주한다.

이상 시인을 통해 우리 내면의 일그러진 고독과 불안을 그리는 연극 <하늘은 위에 둥둥 태양을 들고>. 극단 골목길 제공
이상 시인을 통해 우리 내면의 일그러진 고독과 불안을 그리는 연극 <하늘은 위에 둥둥 태양을 들고>. 극단 골목길 제공
외로워 둘이 된 이상

■ 이상이 자신 속의 이상을 만날 때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중략)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또꽤닮았소”

이상의 1933년작 <거울>이다. 다음달 2일까지 서울 대학로 ‘소극장 시월’에서 공연하는 <하늘은 위에 둥둥 태양을 들고>(박근형 작·연출)에서 이상은 거울 속의 자신을 보듯, 또 다른 자아인 조카를 만든다. 너무 외롭고 아프기 때문이다. 그는 가공인물인 조카와 장기를 두며 놀기도 하고 돌연 꾸짖기도 한다. 부인한테 편지를 쓰기도 하고, 스스로 쓴 편지를 마치 부인이 자신한테 보낸 것처럼 받아보기도 한다. 폐결핵에 걸린 자신과 의사의 역할을 뒤바꾸기도 한다.

‘하늘은 위에 둥둥 태양을 들고’
또다른 자아 ‘조카’ 만들어
존재 의미 묻는 모습 조명

이런 뒤집기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묻는 과정이다. 하지만 심각하지 않다. 모두 장난이고 놀이다. 실제로 장기를 두는 장면에선, 성냥불을 던지면 화공(火攻)이요, 주전자 물을 머금은 뒤 뿜으면 수공(水攻)이 된다. 기발한 상징과 도착적 이미지를 통해, 난해한 식민지시대 모더니스트 이상의 모습이 새로 그려냈다. 관객도 그리 심각할 건 없다. 간간이 터지는 웃음 뒤에, 나름대로 한 줌 의미를 짚으면 그만이다.

박근형 연출은 “동시대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이상의 고독과 권태는 현대인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오는 12월30일 김소월 시인을 다룬 연극 <소월산천>도 올릴 예정이다. (02)6012-2845.


김수영 시인을 통해 우리 내면의 왜소한 소시민성을 마주하는 연극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남산예술센터 제공
김수영 시인을 통해 우리 내면의 왜소한 소시민성을 마주하는 연극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남산예술센터 제공
우리 안의 김수영

■ 관객이 자신 속의 김수영을 만날 때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중략)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김수영 시인의 1965년작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다. 시인은 ‘왕궁’으로 상징되는 권력과 싸우지 못하고, 구속된 소설가의 석방과 언론자유를 요구하지 못하며, 파병을 반대하지 못하는 옹졸한 자신을 책망한다. 약자들에게만 분개하는 치사한 자신을 조롱한다.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자유 억압된 시절 김수영 통해
옹졸하고 치사한 소시민성 그려

연극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김재엽 작·연출)가 다음달 4일부터 30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은 정치적 자유가 억압된 1950~60년대 김수영을 통해, 21세기 현대인들이 똑같이 느끼는 소시민적 삶을 끄집어 낸다. 50여 년 전 김수영이 느낀 왜소성은 카카오톡까지 들여다보는 정치권력 앞에서 위축된 21세기 소시민의 왜소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재엽 연출은 “김수영의 시는 우리에게 자신으로 살고 싶은 소망을 들여다보게 한다. 우리 안의 김수영을 만나는 순간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다음달 20일 남산예술센터에서 ‘시인들이 좋아하는 김수영 시’ 행사도 진행된다. 심보선, 성기완, 안현미 시인이 나오며 미리 예약해야 한다. (02)758-2150.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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