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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환상을 지운 사랑, 치유의 자연…여자라 볼 수 있는 찰나의 세상

등록 2014-10-30 19:00수정 2014-11-01 13:32

고현주 작 ‘중산간 3-1’
고현주 작 ‘중산간 3-1’
중견작가 안옥현·고현주 사진전
한국에서 중년여성이 여가 취미가 아닌 전문 사진가로 활동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육아와 가사 등의 제약을 뚫고 파벌 중심의 보수적인 사진계 구도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는 건 사진에 대한 독한 열정과 더불어 세상에 대한 여성작가 특유의 시선을 인정받아야 가능하다. 올 가을, 초상사진과 풍경사진에서 10년 이상 자신만의 길을 열어온 두 여성 사진가 안옥현, 고현주씨의 근작전시는 이런 나름의 고투가 녹아든 자리로 비친다.

10여년간 일상 속 사람들의 포트레이트(초상사진) 작업에 몰두해온 안옥현씨는 서울 강남역 근처 스페이스 22에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본 세상’이란 생뚱한 제목의 전시를 차려놓았다.

출품작들은 제목에서 떠올릴법한 산악사진이 아니다. 사랑 영화에 종종 배경으로 등장하는 석양의 갈대밭에서 서로 얼싸안은 보통 남녀의 모습들을 비춘다. 한쪽에는 젊거나 중년인 여성이 평상복을 입고 한쪽 젖가슴을 드러내거나, 살찐 몸에 속옷을 입은 중년 여성들의 자태도 내걸려있다. 작품들을 관통하는 것은 지금 한국인의 사랑과 성에 드리운 권태감이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낭만적으로 혹은 환상적으로 접하고 소비하는 사랑의 이미지가 비루한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작가는 적나라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그러니까 에베레스트란 제목은 일종의 암시이자 상징이 되는 셈이다. 누구나 이미지로 알고있다고 생각하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의 실체를 경험한 이는 매우 드물다. 이 역설은 사랑의 본질, 나아가 사진의 본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안옥현 작 ‘진국과 풍경화’
안옥현 작 ‘진국과 풍경화’
안 작가는 권태로운 사랑의 모습과 이를 담은 사진의 형식을 통해 다가가려할 수록 미끄러지기 일쑤인 사랑과 사진의 모호한 맥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전시의 공허한 메시지와 별개로, 등장인물 섭외나, 배경과 조명 등에서 영화처럼 공들인 연출작업을 거쳤다는 역설이 흥미롭다. 11월1일까지. (02)3469-0822.

11월5일부터 서울 강남의 갤러리 이에서 신작전 ‘중산간(重山艮)’을 여는 고현주씨는 산과 바다, 숲 등의 숭고미 어린 거대 풍경들을 보여준다. 대자연의 무한성과 포용성을 드러내는 풍경들 속에는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작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처럼 뒷모습만 보이는 여성이 줄곧 등장한다. 끝없는 바다 혹은 첩첩 산들로 둘러쌓인 숲을 보는 여성의 뒷모습은 치유받는 작가의 자화상이자, 관객들의 모습이 된다. 제목인 중산간은 중국고전 <주역>에 나오는 52번째 괘로 산들이 첩첩히 쌓여있는 형국이란 뜻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 멈추고 숨을 고르라는 것, 숭고한 대자연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보는 이를 치유하는 경험을 주고 싶다고 작가는 말한다. 6년간의 음악교사 생활을 접고 사진을 다시 공부한 고씨는 2002년 <재건축아파트> 시리즈로 5회 사진비평상을 수상했다. 2006년 국회 현관, 대검찰청 회의실, 총리접견실 등 정부권력기관의 권위적 풍경을 찍은 ‘기관의 경관’ 연작은 지금도 회자되는 역작으로 꼽힌다. 이 전시는 소년원 아이들과 만나 사진으로 마음을 치유해주는 ‘꿈꾸는 카메라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11월21일까지. (02)557-195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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