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죽음과 소녀>. 사진 두산아트센터 제공
[리뷰] 연극 ‘죽음과 소녀’
연극은 70분 동안 관객을 인질로 잡았다. 그리고 숨 돌릴 틈도 없이 관객을 다그쳤다. 복수할 것이냐, 용서할 것이냐고. 24일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에서 막 올린 <죽음과 소녀>는 군사독재시절 고문당한 여성이 복수와 용서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야기다.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가장 공포스럽다. 고문실 어둠 속에 울리던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 의사 로베르또는 현악 4중주를 틀어놓고 대학생 빠울리나를 고문했다, 강간했다. 15년이 지났다. 독재정권은 쫓겨나고 민주정부가 들어섰다. 하지만 빠울리나는 여전히 그 악몽 때문에 현악 4중주를 들을 수 없다. ‘나는 언젠가 4중주를 들을 거야. 그런데 그 개자식도 듣고 있을 걸 생각하면 참을 수 없어!’
탁자 다섯개, 마이크 하나, 의자 2개. 무대는 극도로 단순하다 못해 휑하다. 그 빈 공간을 온전히 배우들의 연기로 채운다. 탁자는 취조대가 되기도 하고, 빠울리나가 되짚어가는 과거나 헤쳐나가야 할 앞날도 된다. 탁자는 시간과 공간을 상징하는 가변 무대다. 무대와 객석 사이엔 경계를 느낄 수 없다. 침 방울이 객석에 튀고 관객의 눈동자 속에 여배우의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관객 여러분, 지나친 몰입을 삼가 주세요!’ .
고문피해자 출구 잃은 고통 그려
선택 기로 선 주인공에 감정이입 어느 날 빠울리나는 고문 의사를 붙잡는다. 불타는 적개심으로 권총을 들이댄다. 처음엔 ‘자백하면 용서해 주겠다’라고 했다. 하지만 자백한 이후에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진정으로 뉘우치는 기색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떠오른다. 빠울리나는 그들이 절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지 못하며, 반성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고 생각을 굳힌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인 빠울리나의 남편은 이제 용서하라고 한다. 사적인 복수나 응징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뒤 김 대통령은 물론이고 1980년 신군부에 고문당했던 인사들은 “나를 발가벗기고, 고문했던 그 놈들을~, 솔직히 잊을 수 없어. 그런데, 아! 이젠 용서하기로 했다”고 말하곤 했다. 눈물을 글썽이면서. 연극을 보는 관객도 비슷한 선택에 내몰린다. “이제, 그만 용서하지그래!” 한 관객의 입이 달싹거린다. “아니야, 절대 용서할 수 없어!” 다른 관객의 입은 단호하다. 연극 <죽음과 소녀>는 재작년에 이어 올해 다시 올랐다. 초점도 고문 트라우마에서, 어떻게 고통을 벗어날 것인가로 이동했다. 박지혜 연출은 “폭력은 순환되고, 고통은 전이된다. 내면의 고통이 출구를 잃었을 때, 그것이 주변의 가족도, 가해자도, 심지어 사회에서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한 상황이라면 삶을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연극은 마지막으로 치닫는다. 빠울리나가 총을 들어 누군가를 겨눈다. 고문범에게? 아니면 자신에게? 그리고 불이 꺼졌다.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극장을 나선 관객의 총구는 어디로 향했을까. 아니면 조용히 총을 내려놓았을까. 11월15일까지.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선택 기로 선 주인공에 감정이입 어느 날 빠울리나는 고문 의사를 붙잡는다. 불타는 적개심으로 권총을 들이댄다. 처음엔 ‘자백하면 용서해 주겠다’라고 했다. 하지만 자백한 이후에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진정으로 뉘우치는 기색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떠오른다. 빠울리나는 그들이 절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지 못하며, 반성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고 생각을 굳힌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인 빠울리나의 남편은 이제 용서하라고 한다. 사적인 복수나 응징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뒤 김 대통령은 물론이고 1980년 신군부에 고문당했던 인사들은 “나를 발가벗기고, 고문했던 그 놈들을~, 솔직히 잊을 수 없어. 그런데, 아! 이젠 용서하기로 했다”고 말하곤 했다. 눈물을 글썽이면서. 연극을 보는 관객도 비슷한 선택에 내몰린다. “이제, 그만 용서하지그래!” 한 관객의 입이 달싹거린다. “아니야, 절대 용서할 수 없어!” 다른 관객의 입은 단호하다. 연극 <죽음과 소녀>는 재작년에 이어 올해 다시 올랐다. 초점도 고문 트라우마에서, 어떻게 고통을 벗어날 것인가로 이동했다. 박지혜 연출은 “폭력은 순환되고, 고통은 전이된다. 내면의 고통이 출구를 잃었을 때, 그것이 주변의 가족도, 가해자도, 심지어 사회에서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한 상황이라면 삶을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연극은 마지막으로 치닫는다. 빠울리나가 총을 들어 누군가를 겨눈다. 고문범에게? 아니면 자신에게? 그리고 불이 꺼졌다.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극장을 나선 관객의 총구는 어디로 향했을까. 아니면 조용히 총을 내려놓았을까. 11월15일까지.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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