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전후 민초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재현하는 ‘응답하라 1894, 새야새야 파랑새야’ 무대에서는 재담꾼들이 당시 시대상황과 노래를 소개한다. 경서도소리포럼 제공
경서도소리포럼 ‘응답하라 1894…’
함경도 농부가·담바귀타령 등
동학혁명 전후 민초 노래 재현
김옥심 명창 ‘기판시조’ 복원도
함경도 농부가·담바귀타령 등
동학혁명 전후 민초 노래 재현
김옥심 명창 ‘기판시조’ 복원도
“새야새야 파랑새야 너는 어이 나왔느냐/ 솔잎 댓잎 푸르기로 봄철인가 나왔더니/ 백설 펄펄 흩날린다.”(새야새야)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사람으로 치면 환갑이 두 번인 2주갑이다. 당시 격전지 우금치뿐 아니라 마포 장터에서, 구월산 재인 마을에서, 천안 삼거리 봉놋방에서 불렀던 서민들의 노래는 어땠을까? 동학농민혁명 전후 이 땅의 민초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재현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경서도소리포럼’이 오는 8일 서울 대치동 한국문화의집 코우스에서 여는 ‘응답하라 1894, 새야새야 파랑새야’ 무대다.
“시작일세 시작일세 담바귀 타령이 시작일세/ 담바귀야 담바귀야 동래나 울산에 담바귀야/ 너의 국이 어떻길래 대한의 국을 왜 나왔나/ 우리 국도 좋건마는 대한의 국을 유람 왔네.”(담바귀타령) 일본에서 건너온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풍자한 노래다. 반외세 반봉건을 내세운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물밀듯 밀려온 외세의 침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학농민혁명은 반봉건의 기치로 시작되었으나 제국주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반봉건과 반외세 전쟁으로 발전했다.
그런가 하면 여전히 강고한 봉건 착취를 풍자하는 노래도 있다. “한평생 소작에 등뼈만 휘구요 삼사십 총각은 쇠고둥만 된다네/ 농부일생은 유한한데 춘경추수는 연연사라/ 어럴럴럴 어럴럴럴 상사디여 아서라 사람의 괄시를 네가 그리마라.”(함경도 농부가)
이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노래는 고단한 서민의 일상을 국문(우리글)에 빗댄 노래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 잊었구나 기역니은 디귿 리을/ 기역자로 집을 짓고 지긋 지긋이 살잿더니/ 가갸거겨 가이 없는 이내 몸이 그지없이도 되었구나/ 고교구규 고생하던 우리 낭군 구간 하기가 짝이 없네.”(국문 뒤풀이)
동학농민혁명은 정치사회사뿐 아니라 우리 예술사에서도 근대의 출발점이 됐다. 그 시작은 광대, 재인 등 예술인의 신분제 폐지였다.
“(예인집단의 해방으로) 김창조의 가야금 산조와 백낙준의 거문고 산조 등이 1890년대에 민족음악 형식으로 그 뿌리를 내리고, 1900년대 전반에 춘향전, 심청가 등이 판소리 연주 형태와 병행하여 발생한 창극이 민족가극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판소리, 민요, 잡가, 기생가무, 줄타기, 재담기술, 잡희, 승무 등이 상설무대화를 통해 대중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노동은 교수가 ‘한국근현대음악사’에서 밝힌 내용이다.
모두 3부 공연 가운데 2부에서는 한양 장터를 배경으로 세태를 풍자한다. 양담배를 피우는 풍경, 국문풀이를 하는 풍경, 경복궁 중건 때 유행한 아리랑타령을 부르는 풍경, 각설이들이 장터를 누비는 풍경 등이 어우러진다. ‘가보세요’, ‘건드렁타령’, ‘도화라지’, ‘군밤타령’ 등 세태를 풍자한 노래인 다양한 ‘참요’가 소개된다.
1부는 녹두장군을 추모하는 창작곡 ‘장군을 그리며’와 ‘살풀이’, ‘회심곡’ 등으로 꾸며진다. 전북지역의 ‘동초제살풀이’를 이윤진 명무가 추고, 조유순 명창이 서도회심곡조를 부른다. 3부는 농부가를 중심으로 한바탕 어우러지는 해원의 무대다. 앞서 7일에는 같은 한국문화의집에서 김옥심 명창의 ‘기판시조’를 복원하는 공연이 열린다. 기판시조는 기생들이 부르던 시조다. 두 공연 모두 무료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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