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와 대본가들의 집단공부를 거쳐 만들어진 <달이 물로 걸어오듯>은 창작오페라 제작의 한 전범이 될 만하다. 토론을 통해 수없이 고쳐 완성한 악보. 세종문화회관 제공
‘달이 물로 걸어오듯’ 만들기까지
한 편의 창작오페라가 우리 곁으로 걸어왔다. 오는 20~23일 세종문화회관 엠씨어터 무대에 오르는 서울시오페라단의 <달이 물로 걸어오듯>이다. 으레 오페라 하면 100년 넘은 이탈리아 등 서구의 작품을 떠올리게 마련. 2014년 한국 땅에서 창작자들의 집단공부로 잉태된 이번 작품은 창작오페라 제작의 한 전범이 될 만하다. 2년여 제작과정을 ‘탐구’해봤다.
두해 전 ‘세종 카메라타’에
작곡가 넷·대본가 넷 모여
토론과 워크숍의 나날들…
드디어 말과 음이 섞여
세상에 둘 없는 오페라 나왔다 ■ 서먹했던 말과 음악, 몸을 섞었다 옛날 옛적 음악과 연극이 결혼해 오페라를 낳았다. 음악과 연극은 늘 밀월관계를 유지하지는 못했다. 서로 티격태격 ‘밀당’을 벌였다. 대체 오페라에서 작곡과 대본은 어떤 관계일까? 좋아서 결혼했지만 서로 너무 몰랐다. 좋은 대본이 없으면 좋은 음악이 나오지 않고, 좋은 음악이 없으면 좋은 대본도 무용지물이란 걸.
2006년 이건용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뉴욕대 뮤지컬 창작과정을 청강했다. 그때 작곡가와 대본가의 협업을 눈여겨봤다. 대본가는 작곡가에게 배우고 작곡가는 대본가에 배우는 게 한눈에 보였다. 서울시오페라단장을 맡은 이건용은 2012년 ‘세종 카메라타’라는 작곡가-대본가 모임을 꾸렸다. 16세기 말 피렌체의 학자·시인·음악가 모임인 카메라타를 본뜬 것이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 연극을 연구하며 오페라를 만들기 위해 공을 들였다.
세종 카메라타에는 대본가 4명, 작곡가 4명이 참여했다. 이 단장을 비롯해 9명은 창작오페라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강원도로 하룻밤 밀월여행도 다녀왔다. 2013년 봄, 다른 작가나 자신이 쓴 대본을 읽고 읽었다. 음표에 따라 노랫소리도 오갔다. 피땀 흘려 쓴 대본이 음표와 맞지 않으면 곧장 지우개 밥이 됐다. 여름,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악보가 건반으로 옮겨졌다. 어느 순간 데면데면하던 말과 음이 몸을 섞기 시작했다. 가을, 대사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개별적인 모임을 뺀 공식모임만 12번, 토론과 워크숍의 나날이었다.
■ ‘선 공부 후 위촉’ 제작공식 나왔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지난해 11월 첫 수확을 거뒀다. 바로 ‘리딩 공연’이다. 이건용 단장은 공약을 내걸었다. “4편 중 1편은 2014년 공연할 예정이다. 이제 남은 것은 당신의 선택뿐.” 이 리딩 공연에서 <달이 물로 걸어오듯>(고연옥 대본, 최우정 작곡), <당신 이야기>(고재귀 대본, 황호준 작곡), <로미오 대 줄리엣>(박춘근 대본, 신동일 작곡), <바리>(배삼식 대본, 임준희 작곡) 등 4편이 발표됐다.
그리고 <달이 물로 걸어오듯>이 2014년 공연작으로 결정됐다. 첫 공연작을 따낸 대본가와 작곡가는 어떻게 호흡을 맞췄을까?
먼저 고연옥 작가. “오페라와 연극이 다른 게 아니라는 걸 배웠다. 인물의 심리상태를 설명했더니, 작곡가가 심리와 입장을 대본보다 훨씬 잘 표현했다. 연극 대본보다 더 어려운 대본을 쓰더라도 오페라에서는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오페라가 인간 본성을 더 깊게 파고든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 최우정 작곡가. “인물의 성격과 관계를 알려고 작가한테 많이 물었다. 그러면서 음악적 아이디어도 많이 얻었다. 이번 작업을 통해 드라마에 대해 이해가 깊어졌고 인간의 구체적인 문제를 많이 배웠다.”
마지막으로 이건용 단장이 창작과정을 쉽게 정리했다. “한마디로 ‘선 공부 후 위촉’이다.” 먼저 작품을 만들기 위한 토론과 음악과 연극에 대한 상호이해를 진행하고, 그다음에 작품을 맡기면 된다는 것이다. “옛날 영화아카데미가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 배출된 사람들이 창작오페라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네편 중 ‘달이…’ 20~23일 첫무대
의붓어머니 살해한 실화 바탕
‘신데렐라 콤플렉스’ 다뤄 ■ ‘달이 물로 걸어오듯’ 오페라가 왔다 그렇게 해서 한 편의 창작오페라가 탄생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창작오페라와 달리 소재가 파격적이다. 공연 홍보물엔 ‘신데렐라 콤플렉스 핏빛 버전’이라고 씌어 있다. 아내와 힘을 합쳐 아내의 의붓어머니와 여동생을 살해·암매장한 남자의 실화가 바탕이다. 내용이 상당히 ‘쎄다.’ 국공립오페라단은 지금까지 역사 인물이나 전통적 소재를 ‘안전빵’으로 다뤘다. 하지만 ‘쎈 내용’조차 세종 카메라타가 고민을 나누고 전문가 견해를 경청한 끝에 나온 것이다. 이건용 단장은 동시대 우리의 얘기를 강조했다. “한때 임권택 감독의 전통적인 주제는 국제적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당대 우리의 삶이 먼저다.”
이제 작품은 연출가, 지휘자, 성악가의 손으로 넘어갔다. 사이토 리에코 연출은 2008년 이 작품을 일본에서 연극으로 올렸다. 사소한 눈빛이나 동작까지도 잡아챌 만큼 작품을 충분히 이해한다. “연기 지도가 가끔 소름끼친다”는 게 고 작가의 설명이다. 윤호근 지휘자는 제작기간 내내 대본가, 작곡가와 논의하며 냉철하게 음악을 이끌고 있다. 여주인공 경자 역은 소프라노 정혜욱·장유리, 남편 수남 역은 바리톤 염경욱과 베이스 바리톤 김재섭이 맡았다.
미리 오페라의 마지막 장면을 봤다. 살인죄로 수감된 경자의 가슴에선 흥건하게 젖이 흐른다. 생명을 죽이고 새 생명인 아이를 낳은 뒤다. 면회 온 수남이 묻는다. “지금까지 눈물 대신 젖을 흘린 거야? 가슴으로 울고 있던 거야?” 눈물 대신 젖이 흐를 때, 참절한 춤곡 ‘경자의 왈츠’도 흐른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작곡가 넷·대본가 넷 모여
토론과 워크숍의 나날들…
드디어 말과 음이 섞여
세상에 둘 없는 오페라 나왔다 ■ 서먹했던 말과 음악, 몸을 섞었다 옛날 옛적 음악과 연극이 결혼해 오페라를 낳았다. 음악과 연극은 늘 밀월관계를 유지하지는 못했다. 서로 티격태격 ‘밀당’을 벌였다. 대체 오페라에서 작곡과 대본은 어떤 관계일까? 좋아서 결혼했지만 서로 너무 몰랐다. 좋은 대본이 없으면 좋은 음악이 나오지 않고, 좋은 음악이 없으면 좋은 대본도 무용지물이란 걸.
이건용 서울시오페라단장 등이 참여한 제작발표회. 세종문화회관 제공
의붓어머니 살해한 실화 바탕
‘신데렐라 콤플렉스’ 다뤄 ■ ‘달이 물로 걸어오듯’ 오페라가 왔다 그렇게 해서 한 편의 창작오페라가 탄생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창작오페라와 달리 소재가 파격적이다. 공연 홍보물엔 ‘신데렐라 콤플렉스 핏빛 버전’이라고 씌어 있다. 아내와 힘을 합쳐 아내의 의붓어머니와 여동생을 살해·암매장한 남자의 실화가 바탕이다. 내용이 상당히 ‘쎄다.’ 국공립오페라단은 지금까지 역사 인물이나 전통적 소재를 ‘안전빵’으로 다뤘다. 하지만 ‘쎈 내용’조차 세종 카메라타가 고민을 나누고 전문가 견해를 경청한 끝에 나온 것이다. 이건용 단장은 동시대 우리의 얘기를 강조했다. “한때 임권택 감독의 전통적인 주제는 국제적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당대 우리의 삶이 먼저다.”
남편과 힘을 합쳐 의붓어머니와 여동생을 살해한 경자 역을 맡은 소프라노 정혜욱. 세종문화회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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