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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낯설어서 반가운…한국화 ‘혁신’의 증거들

등록 2014-11-12 18:46

유근택 작가의 수묵채색화 ‘말하는 벽’
유근택 작가의 수묵채색화 ‘말하는 벽’
한지에다 먹으로 대상을 그리는 한국화 장르에는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 2000년대 이래 미대생 전공자들은 졸업 뒤 다른 현대작업들로 전향하기 일쑤다. 시장에서는 작품 시세가 형성되지 않을 만큼 외면당한다. 옛것에서 새로움 찾는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과 사물 이면의 정신을 끌어낸다는 ‘전신사조(傳神寫照)’란 전통적 화두는 질곡처럼 비쳐지는 게 지금 현실이다.

한국화의 대표작가들로 꼽히는 김호득(64·영남대 교수)씨와 유근택(49·성신여대 교수)씨의 근작들은 그래서 주시할 수밖에 없다. 한국화 혁신을 위해 그들이 묵묵히 실천해온 유력한 방법론을 집약하고 있는 까닭이다. 먹의 본질에 대한 집요한 탐구(김호득)와 지금 현실공간의 면면들을 한국화 형식에 녹여넣는 이미지 놀이(유근택)가 그것이다.

서울 수송동 오시아이(OCI)미술관에 차려진 유 작가의 개인전 ‘끝없는 내일’(12월28일까지)은 모호하고 기괴한, 이른바 ‘언캐니’한 일상 풍경의 연속이다. 제자들과 수년전 수학여행 갔던 충주호 산수 풍경 파노라마를 담은 10점의 ‘산수’ 연작들과 서울 사간동 옛 미대사관 직원 숙소터 돌 담장 아래 수근거리는 아이들을 그린 ‘말하는 벽’ 연작들이 대표적이다. 소름돋듯 기괴한 작품 속 풍경은 끊임없이 작가한테 말 걸기를 한다는 경치와 사물들의 불가해한 단면을 나름의 붓질로 풀어낸 것이다.

유근택 ‘끝없는 내일’
산수 풍경에 모호한 일상 녹여

김호득 ‘그냥 문득’
글자 연작 등 먹·한지 본질 탐구

그림 속 충주호 수면에는 피카추 인형, 앤디 워홀의 그림, 자전거, 화분, 빨래, 변기, 가재도구 등이 뒤섞여 떠다닌다. 달걀에 안료 섞은 템페라와 호분 등으로 붓질한 뒤 주걱으로 뭉개어 불온하게 아른거리는 이미지들이다. 사물들이 홍수로 밀려와 호수에 뒤발된 듯한 풍경은 댐 개발로 수면 위 산록이 벌거벗은 충주호를 보며 부딪히듯 느낀 마음과 감정의 표현이라고 한다. 사간동 돌담벼락의 조밀한 이미지와 그 아래 모인 아이들 모습(‘말하는 벽’)은 세대간, 계층간 단절로 우선 읽히지만, 소곤거리는듯한 벽의 조밀한 이미지를 통해 소통의 염원으로 비치기도 한다.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한 정서와 감정이 얽힌 근작들을 두고 작가는 “지독하게 조여진 삶 속에서 또다른 욕망과 꿈을 간직하며 인내하는 지금 한국인들의 정서 그 자체”라고 이야기한다.

광목에 먹으로 거꾸로 된 글자를 그린 김호득 작가의 ‘그냥’ 연작
광목에 먹으로 거꾸로 된 글자를 그린 김호득 작가의 ‘그냥’ 연작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의 김호득 개인전 ‘그냥 문득’(12월5일까지)은 30여년간 먹과 한지의 조형 실험에 몰두해온 작가의 최근 작품 흐름을 세 갈래로 간추려 보여준다. 먹물 든 수조 위에 세운 한지 입면체인 2층의 설치작업과 먹바림의 농도를 달리해 미세한 겹층을 보여주거나, 폭포와 계곡, 글자의 기운을 휙 갈긴 먹기운으로 전해주는 먹 작업들이다. 왼손으로 ‘그냥’ ‘물’ 등의 뒤집어진 글자를 휙 그려넣거나 꾹꾹 찍은 점들을 차츰 쌓아나가며 먹층의 미세한 색감 변화를 담은 최근 작품들이 하이라이트다. “한국화 퇴조는 장르 재생을 위한 큰 흐름”이라며 먹과 한지의 본질 파고들기에 더욱 힘써온 작가의 열정을 실감할 수 있다.

글·사진/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제공 오시아이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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