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철씨의 굿판 사진. 동해안 진오기굿을 마치고 진설상에 차린 것들을 태우는 장면을 담은 ‘굿-징소리#6’.
이규철 개인전 ‘굿-징소리’
모든 굿판이 끝났다. 죽은자는 하늘길로 올랐다. 이젠 남은 것들을 태우고 흘려보내야 한다.
푸른 파도 철썩거리는 동해안 모래밭.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굿판상 제물들을 조금씩 태운다. 혹여 숨었을 법한 잡귀들을 몰아내려는 참이다. 스카프 두른 그의 뒤태에 굿판의 뜨거웠던 기억이 깃들었다. 징과 장구의 내림막 장단에 무당이 뱅뱅 뛰며 살판이 났었지…죽은자 목소리를 무녀가 대신 전해준 공수의 순간도 휙 지나갔을 터. 산자가 되풀이할 삶을 할머니는 태우면서 준비한다.
전국 누비며 찍은 사진만 10만컷
굿판에 흐르는 극한 슬픔
무서움에 떠는 아이 등 포착
김수남·이갑철과 차별되는
또다른 사진굿 전형 일궈
20여년 나라안 굿판을 누벼온 사진가 이규철(사진)씨의 작품 ‘굿-징소리 #6’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실타래처럼 말려있다. 2001년 찍은 동해안 진오기 굿의 이 마지막 장면은 그가 가장 아끼는 컷이다. “굿판의 모든 고락을 끝내고 한자락 피우는 거지요. 굿은 저 할머니의 삶 속에 고스란히 녹은 생활일 거예요. 굿상을 태우는 건 할머니 인생에서 중요한 중심이었던 거죠. 그래서 가슴에 남아요.”
지금 서울 강남의 사진화랑 스페이스 22에 펼친 개인전 ‘굿-징소리’에서 작가는 20여년 찍은 굿판 사진들을 추려 내걸었다. 93년 다니던 학교(중대 사진과) 과제물을 내려고 인천 서해안별신굿판에 들렀던 게 시작이었다. 그뒤로 서울과 내륙, 바닷가 곳곳의 신당들을 누비며 사진기행을 거듭해왔다. 그간 찍은 필름·디지털 사진들은 10만컷이 넘는다. 50여점 출품작들로 정리하는데만 수개월이 걸렸다.
휴게실의 작은 소품 사진들과 전시장 대작들로 나뉜 출품작들은 기존 굿판 사진과 느낌이 다르다. 무당들의 신기어린 자태와 극적인 몸짓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다. 새남굿판 직전 무서움에 절어 어른들 뒤에 숨은 아이 얼굴과 공수를 전하는 무당 앞에서 망자의 전언을 들으려 애쓰는 유족들의 몸짓이 앵글에 잡혔다. 진도에서 모친 씻김굿을 한 뒤 느꺼운 눈길 나누는 유족 남매의 시선을 지나치면, 벙거지 쓰고 오방기를 든 채 점치려하는 남자의 침울한 표정이 눈을 때린다.
작가가 주시하는 건 굿판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감정들이다. 풍어제든, 망자를 위한 해원굿이든 모인 이들은 무당과 함께 극한의 슬픔을 발산하며 마음풀기를 한다. 작가또한 몰입하는 구경꾼이 되어 그들 사이 벌어지는 그 ‘무엇’을 포착하려 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이전 어떤 다큐작가도 포착하지 못했던 김금화 만신의 매섭고도 해학적인 눈사위와 앉은뱅이 춤사위를 함께 만나게 된다. 인천 세월호 추모식장에 덩그러니 고시레로 벌여놓은 밥 두덩이가 형언할 수 없는 비애감의 덩어리라는 것도.
굿판은 사진계 여러 대가들이 찍어왔다. 무녀들 춤사위, 도약의 극적인 순간과 다큐적인 서사에 집중하며 40여권의 사진집을 남긴 김수남의 사진과 어울렁더울렁 사선으로 흔들리는 화면 속에 굿판 사람들의 음울한 신기운이 눈을 치는 이갑철씨의 사진이 우뚝했다. 그 두 봉우리 사이에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대신, 따뜻한 관계와 삶의 비장감이 넘치는 장면들로 사진굿의 또다른 전형을 일궈냈다고 동료 사진가 이한구씨는 평한다. 작가는 유년시절, 고향인 전북 진안 당골의 신당을 할머니 따라 드나들면서 이웃사람들과 친척들이 치유받고 삶이 바뀌는 것을 자주 봤다고 털어놓는다.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 없는 그 시절 당골의 기억이 알게 모르게 그를 굿판 사진가의 길로 이끌었을 터다.
섬이나 해안가의 신당 굿판들은 전승이 끊기면서 의례가 간소화하거나 해체되는 위기에 놓였다. 연평도 등 연안 섬들의 굿판이 사라지고 훼손되는 게 가장 안타깝다는 작가는 굿판 주요 만신들 초상사진과 이들이 쓰는 무구의 세부를 찍는 작업에 집중하겠다는 구상을 털어놓았다. 전시는 25일까지. (02)3469-0822.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스페이스 22 제공
굿판에 흐르는 극한 슬픔
무서움에 떠는 아이 등 포착
김수남·이갑철과 차별되는
또다른 사진굿 전형 일궈
사진가 이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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