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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부동산 투기·세월호 연상 장면 등…137년 전 노르웨이-지금 한국 ‘일치’

등록 2014-11-18 20:13수정 2014-11-18 22:03

김광보가 연출을 맡은 입센 원작의 한국 초연작 <사회의 기둥>은 이른바 ‘사회 지도층’의 위선과 탐욕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왼쪽은 주인공 베르니크 역의 박지일. 엘지아트센터 제공
김광보가 연출을 맡은 입센 원작의 한국 초연작 <사회의 기둥>은 이른바 ‘사회 지도층’의 위선과 탐욕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왼쪽은 주인공 베르니크 역의 박지일. 엘지아트센터 제공
입센 ‘사회의 기둥들’ 한국 첫 공연
지도층 가식 뒤에 숨은 탐욕 폭로
배에 치명적 결함이 있는 줄 알면서도 출항시킨다. 그뿐 아니다. 개발예정지의 땅을 미리 사들여 막대한 차익을 챙긴다. 야, 이거 우리나라 얘기잖아. 어, 그런데 137년 전 노르웨이 상황이네.

현대극의 아버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한국 초연작 <사회의 기둥들>은 원작 대본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기존 희곡에서 첨가하거나 바꾼 부분은 한 곳도 없습니다.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은 것 빼고는요. 그런데 오늘 한국상황과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김광보(50) 연출은 입센의 통찰력에 무릎을 쳤다.

그는 해방 직후 혼란기를 그린 전작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오영진 1949년 작)를 연출할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탈세·횡령죄를 저지른 이중생이 사위에게 재산을 거짓으로 양도하는데, 60여 년 뒤 한국의 ‘차명재산’과 판에 박은 듯 빼닮았다. “사람 사는 일이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안 바뀌었다는 얘기죠.” 그의 관심은 사회와 경제를 넘어 정치로 향했다. 올해 6·4지방선거 직전 5월에 올린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에선 브루터스의 혁명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대중은 어떻게 ‘이미지 정치’에 현혹 당했는지를 탐구한 바 있다.

김광보 연출은 ‘연극의 통시성’을 중요시한다. 어느 시대에나 통용될 수 있는 얘기. 입센의 연극을 선택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입센의 입을 통해 ‘지금 여기’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베르니크가 철도 부설을 앞세워 부동산 투자로 수익을 챙기려는 음모를 꾸미고, 자신의 과거를 아는 처남 요한이 타려는 배가 수리되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묵인하는 등 지금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많이 담겼습니다.”

제목 ‘사회의 기둥’은 ‘사회 지도층’으로 불리지만, 자기이익에만 급급한 자본가나 정치인으로 읽힌다. 베르니크의 대사는 그 실체를 잘 드러낸다. “내가 공정하지 못한 방법을 쓰는 것도 다 지역사회를 위해서요. 이런 대규모 사업을 처리할 줄 아는 사람은 나 말고 없어. 내 손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축복이 되는 거요. 일자리가 생길 테니까.”

19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역삼동 엘지아트센터 공연을 앞두고 <사회의 기둥들>의 지하 연습실을 찾았다. 먼저 위에서 아래로 기울어진 무대가 눈에 띈다. 우리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이 어렵다는 뜻으로 쓰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연상된다. 김광보 연출이 마치 3루 주루코치같이 팔을 풍차처럼 돌린다. 홈으로 쇄도하라는 뜻이 아니라, 연기 템포를 더 빨리 하자는 뜻이다.

주인공 베르니크가 의자에 앉아 있다. 안경을 낀 눈 밑의 주름, 찌푸린 미간, 얼굴을 걸어다니는 선병질적인 표정. 그가 이른바 ‘사회의 기둥’이다. 베르니크 역의 박지일(54)은 “따뜻함과 정의로움을 가장하는 표정도 있고 탐욕 때문에 숨길 수 없는 비겁함도 있죠. 죄악이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표현하려 해요”라고 했다. 빙고! 바로 관객이 원하는 모습, 가식 뒤에 숨은 ‘사회의 기둥’의 탐욕스러운 본모습이다. 출연자들은 김광보 연출이 1994년 데뷔한 이래 20년 연극 인생을 함께 작업했던 배우들 중에 엄선된 16명이다. 김광보와 함께한 ‘연극의 기둥들’인 셈이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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