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구시가 쪽에서 바라본 프라하 성과 주변을 찍은 얀 브라베츠의 사진.
“내 인생은 이 작은 원 속에 갇혀 있습니다.”
<변신><성>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41년간 온삶을 살았던 프라하를 감옥처럼 묘사했다. 오늘날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체코 수도 프라하는 다른 얼굴들을 갖고 있다. 외지인들은 유럽 중세·바로크 문화의 진수가 담긴 고도로 상찬하지만, 유산들을 지켜낸 건 시내 곳곳에 1000년 동안 구축된 성곽과 요새들이었다. 중세 이래 프라하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 외세의 발길이 끊일 새 없었다. 주민, 귀족들은 블타바 강 연안에 철옹성 같은 성벽과 보루, 요새를 쌓고 지키며 도시역사를 일궈나갔다. 카프카가 프라하를 ‘맹수의 발톱을 가진 도시’라고도 했던 것은 요새 도시의 숙명인 고립과 유폐의 역사를 기억했기 때문이리라.
서울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일부터 시작한 국제교류전 ‘프라하, 유럽 중앙의 요새’는 카프카가 말한 ‘맹수의 발톱’을 실감할 수 있는 자리다. 중세기 요새도시로 시작되어 19세기까지 방어시설의 구축과 정비에 진력해온 프라하 역사의 속내를 프라하시립박물관이 소장한 갑옷·무기류 컬렉션, 성곽 유물, 영상 등을 통해 선보이게 된다.
시내 곳곳 구축한 성곽·요새 덕분
유럽 중세·바로크 문화 진수 보존
19세기까지도 방어시설 구축 진력
성벽모양 블록에 요새 역사 ‘한눈에’
갑옷·권총 등 무기류 컬렉션 눈길
언덕 분지 아래에 강을 낀 프라하는 지세가 서울 도성과 비슷하다. 9세기께 블타바 강 유역 북쪽 언덕 위에 체코 공작들이 프라하성을 쌓으면서 도시가 태동했다. 1000년께 남쪽 강 건너편에 비셰흐라드 성채가 만들어졌고 두 성곽 사이로 시가지가 뻗어나갔다. 14세기 카렐 4세 때 보루와 대문을 갖춘 방어시설 공사가 대대적으로 벌어져 지금 도시의 원형이 갖춰졌으나, 17세기 30년전쟁 포화에 성곽이 파괴된다. 이후 프라하 군주들은 옛 석성 앞에 돌출부를 낸 ‘바스티온’ 성채를 짓고 19세기말까지 보수를 거듭했다.
전시장은 프라하 대표 유적인 프라하궁과 비셰흐라드 성을 중심으로 10~19세기 지속된 프라하 성곽의 요새화 과정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해준다. 프라하의 요새 역사를 설명하는 도입부를 지나면 초기 성채시대와 중세, 근현대로 각각 이름붙은 성벽모양 블록들이 나타난다. 각 시대별 블록에 옛 성곽 사진과 도면, 각종 무기류와 축성도구 등을 다기하게 배치한 얼개다.
유물들로는 세계적인 명품총기 생산국 체코의 전통을 보여주는 무기 컬렉션들이 우뚝하다. 유럽에서 가장 오랜 화승총 무기로 꼽히는 15세기의 참나무제 총과 노리쇠의 현란한 곡선미가 돋보이는 18세기 결투용 권총, 마상전투용 강철장갑, 기마병 갑옷 등이 프라하의 전쟁사를 증언한다. 17세기의 시내 전경을 그린 동판화인쇄본과 1830년대 만든 방어시설 도면, 19세기말~20세기초 찍은 성곽, 대포, 대문, 구시가 다리탑 등의 사진들이 지금 명승지 풍경과는 또다른 감흥을 안겨준다.
20일 열린 전시설명회에서 프라하시립박물관의 학예사 카렐 쿠체라는 “널리 알려진 프라하 명승지들을 지키기위해 이 도시 사람들이 고투해온 숨은 역사를 도시성곽이란 주제 아래 알려주려 했다”고 밝혔다. 전시장 안쪽에 한국관광객을 위해 설치한 중세, 근대기 성곽 유적 대형 지도판은 프라하 도시사를 이해하는 데 요긴한 답사 정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2월1일까지. (02)724-019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