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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이 소리는 △△마을…”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25년

등록 2014-11-23 19:45수정 2014-11-24 15:23

‘이 소리는…’ 바통 넘기는 최상일 피디
“우리소리 1만8천곡…곧 은퇴인데 아시아소리가 궁금해”
최상일 프로듀서가 지난 18일 서울 인사동 마루에서 열린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헌정 전시회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그는 20여년 동안 전국을 돌며 사라져가는 토속민요를 채집해 문화방송 라디오로 방송해왔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최상일 프로듀서가 지난 18일 서울 인사동 마루에서 열린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헌정 전시회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그는 20여년 동안 전국을 돌며 사라져가는 토속민요를 채집해 문화방송 라디오로 방송해왔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하나~ 두울~ 두울~ 셋이여….”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이 소리는 △△마을에서 ○○○ 할아버지가 노적가리에서 볏단을 내리며 부르는 소리입니다.” 언제부턴가 라디오에서 늘상 들려오는 이 소리. 갖가지 패러디로 변용될 정도로 누구에게나 익숙해진 소리이기도 하다.

25년 넘게 우리의 소리를 찾아 널리 알려온 이가 있다. 문화방송 라디오의 최상일(57) 프로듀서다. 1989년 <한국민요대전>을 시작한 이래 하루 몇 차례씩 짧게 내보내는 스폿 꼭지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를 만들어 지금까지도 방송하고 있다. 정규 꼭지인 <한국민요대전>은 2008년 막을 내렸지만,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는 1991년 첫 방송 이후 8160여회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으면 최 피디가 만드는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를 더는 들을 수 없게 된다. 이달 방송분을 마지막으로 최 피디는 안식년에 들어간다. 안식년에서 돌아오면 정년퇴임이다. 그래도 후임 피디가 프로그램을 이어받기로 해서 다행이다.

작업 준비를 하고 있는 최상일 피디.
작업 준비를 하고 있는 최상일 피디.
지난달 말부터 24일까지 서울 인사동 마루에서 이진경 작가의 ‘아부레이수나’전이 열리고 있다. 최 피디가 채집해온 토속민요 1만8000곡에 바치는 헌정 전시다. 민요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그림, 글씨 등을 내걸었다. 토요일마다 ‘최상일 피디와 함께하는 우리 민요 감상회’도 열었다. 지난 18일 전시장에서 최 피디를 만났다. 오랫동안 해오던 일을 그만둘 때 흔히들 “시원섭섭하다”고 한다지만, 그의 얼굴에선 시원함보다 섭섭함이 훨씬 더 짙어 보였다. 어릴 적부터 마음 깊이 품어온 우리 소리를 이제 놓으려 하니 오죽할까.

24년간 900여 마을 다니며
2만여명 만나 토속민요 들어
일년 중 절반 이상은 출장중

기억 가물가물한 할머니들
서로 내가 맞다고 다투다가도
즉석 마을잔치가 벌어졌지요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생 시절 상여행렬이 지나가는 소리만 들리면 밥 먹다가도 숟가락을 던지고 뛰쳐나갔다. 상여 소리, 풍물 소리가 왠지 좋았다. 서울대 사회학과 76학번으로 들어간 그는 탈춤과 판소리 강습을 받았다. 강원도 원주로 농활 갔을 때 일이다. 할머니가 콩밭 매며 노래하는데, 난생처음 듣는 노래였다. ‘이렇게나 내가 모르는 노래가 있었나? 그런데 왜 이리 좋지?’ 기억해 따라 부르려 애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게 토속민요 ‘아라리’였다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뒤였다.

학생운동으로 구속된 전력 때문에 신문기자로 채용되는 게 어렵다고 직감한 그는 대신 문화방송 피디로 입사했다. 라디오 영화음악 프로그램 등을 만들다 토속민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토속민요를 모은 <팔도소리전집>이라는 음반집이 나왔어요. 그걸 보고 방송국에서 훨씬 더 많은 토속민요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시작한 게 <한국민요대전>이다. 2년 뒤 기업 협찬을 받아 캠페인처럼 방송하는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도 만들었다.

토속민요는 우리에게 익숙한 통속민요와는 다르다. ‘늴리리야’, ‘도라지타령’ 등 전문 소리꾼들이 직업적으로 부른 통속민요와 달리, 토속민요는 일반 백성들이 즐기기 위해 부른 노래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와 변화가 더디고 지역성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단순하고 소박한 노래가 대부분이며, 때론 집단 노동요처럼 웅장하고 씩씩한 분위기를 띠기도 한다. 국악계에서는 비전문적인 토속민요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최 피디는 전국 방방곡곡 토속민요를 채집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민요를 물려받은 마지막 세대들이 하나둘 세상을 뜨던 무렵이었다. 1년의 절반 이상이 출장이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피디를 5명까지 늘렸다. 민요를 기억하는 이들이 사라지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기 때문이다. 120개 시·군 900여 마을을 찾아다니며 2만여명을 만나 1만8000곡을 녹음했다. 이를 음반으로도 만들어 국공립 도서관, 문화기관, 대학, 국외공관, 외국 유명 대학 등에 배포했다.

“더 늦었으면 절반도 못 건졌을 거예요. 한번은 강원도에서 ‘정선아라리’ 녹음을 잘 하고 두달 뒤 복사본을 드리려고 할머니를 찾아가니 돌아가시고 없는 거예요. 얼마나 안타깝던지요. 대부분 70대 중반 이상이어서 가물가물 기억을 잘 못해낼 때도 많고, 서로 곡조가 틀렸네, 내가 맞네 다툴 때도 있었죠. 어느 기억력 좋은 할머니는 반나절 내내 노래했어요. 한자리에서 30곡을 채집할 땐 어찌나 신나고 즐겁던지요.”

최 피디는 민요를 두고 “지금은 사라져버린 옛 공동체문화를 들여다보는 창”이라고 설명했다. “지나는 사람 불러다 새참과 술을 나눠 먹고, 서로 일도 해주고, 농사 다 끝나면 씨름대회나 마을잔치를 하는 등 공동체문화가 노랫말에 스며들어 있거든요. 그땐 지금보다 먹고살기 힘들었어도 행복지수는 더 높았을 거라 확신해요. 노래를 부르는 노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알아요. 옛날 얘기만 나오면 화색이 돌거든요. 그러다 그 자리에서 마을잔치가 벌어지기도 해요.”

강원 철원에서 무덤 다지는 소리 녹음.
강원 철원에서 무덤 다지는 소리 녹음.
강원 삼척에서 풀 써는 소리 녹음.
강원 삼척에서 풀 써는 소리 녹음.
충북 음성에서 할머니들을 모시고 녹음.
충북 음성에서 할머니들을 모시고 녹음.
전남 장성에서 실내 녹음.
전남 장성에서 실내 녹음.
북한 토속민요 음원 3000곡을 어렵게 구해 <북한민요전집>을 내기도 했다. “남들이 잘 알아주진 않아도 참 잘한 일 같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책도 냈고, 최근에는 이진경 작가의 그림을 곁들인 어린이 책 <어야디야차 우리 소리에 풍덩실 빠져보자>도 냈다. “어른들은 민요를 얕보는 분위기가 있는데, 아이들은 선입견 없이 받아들여요. 아이들을 잘 교육하면 전통음악을 회복하는 세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제 아시아 토속민요로 넓혀가고 싶다고 했다. 예전에 인도, 우즈베키스탄, 중국 서남부, 몽골을 잠깐 다니며 특집 방송을 만든 적도 있지만, 그걸로는 택도 없단다. “이제 한국도 아시아의 일원임을 깨닫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아시아 노동자와 이주민들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거든요. 그들의 토속민요와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게 소통의 매개체가 될 수 있어요.”

개인 차원에서 하기 힘든 작업이라 그는 요즘 관련 기관을 찾아다니고 있다.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그의 ‘소리 찾기’ 여정은 멈출 줄을 모른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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