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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붉어도 너무 붉은 춘향, 정의와 승리는 너의 것

등록 2014-11-25 19:45

[리뷰] 안드레이 서반 ‘다른 춘향’
<다른 춘향>은 역시 달랐다.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안드레이 서반이 ‘수절 아이콘’ 춘향을 ‘저항 아이콘’으로 재탄생시킨다는 건 프리뷰 기사에서 예고한 대로였다. 권선징악의 봉건시대 해학은 거장 서반의 손을 거치며 정치권력에 맞선 저항의 현대 서사로 거듭났다. 중언부언이기 십상인 내용은 싹둑 잘라내고, 이미지를 중심에 놓고 ‘다른 춘향’의 다른 점을 미시적으로 뜯어봤다.

변학도는 금속성 은빛 표현
권력 냉혹-저항 열정 ‘대비’
철탑농성 등 숨은 상징도

먼저 춘향은 붉어도 너무 붉었다.

붉은 ‘콘 브래지어’에 붉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춘향. 심지어 치맛속까지 붉었다. 꼬깔 모양의 콘 브래지어는 프랑스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가 1990년 팝스타 마돈나의 의상으로 활용해 주목을 받은 바로 그 복장이다. 춘향의 콘 브래지어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당당히 과시하는 상징으로 읽힌다.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에서는 춘향을 권력에 맞서는 인물로 그린다. 변학도로 대표되는 국가권력은 춘향을 공안사범으로 몰아 사형을 선고한다.  
 국립극장 제공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에서는 춘향을 권력에 맞서는 인물로 그린다. 변학도로 대표되는 국가권력은 춘향을 공안사범으로 몰아 사형을 선고한다. 국립극장 제공
전통적으로 붉은색은 일편단심으로 표현되는 ‘수절 춘향’이었지만, 이 작품에서 붉은색은 춘향을 반체제 인사 또는 ‘빨갱이’로 낙인찍는 색깔론이라는 심증이다. 변학도로 대표되는 국가기관이 춘향에게 붉은 물감을 탄 물을 들이부을 때, 색깔론의 심증은 물증으로 바뀐다.

붉은 춘향은 공중에 매달리자 하얀 춘향으로 변했다. 수청들기를 거부한 춘향은 공안사범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구속수감된다. 춘향은 새장처럼 생긴 ‘공중 감옥’에 갇혔다. 새처럼 자유로운 정신을 새장에 가두는 표현이다. 춘향의 검은 머리가 하얗게 셌다. 시간이 흘러도 꺾이지 않는 정신의 상징이다.

붉디붉은 춘향과 달리 변학도는 금속성의 은빛이다.

번쩍이는 모자와 옷을 차려입은 권력자 변학도. 은빛은 칼날로 보인다. 칼날은 차가움으로, 뜨거움을 나타내는 춘향의 붉음과 대비를 이룬다. 최고권력자 변학도의 주변엔 총을 든 여성 병사들이 그를 호위한다. 병사들이 군복을 벗자, 변학도를 모실 기생들로 변한다. ‘권력을 지탱하는 총칼’과 ‘권력이 탐닉하는 욕망’이 동전의 앞뒤와 같다고 말하는 듯하다. 관객에 따라서는 ‘북한 최고 지도자와 기쁨조’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객석과 가까운 무대 앞쪽엔 모래와 물이 있다. 그곳에서 춘향과 몽룡은 물처럼 젖었고 모래밭을 뒹굴었다. 하지만 사랑은 물처럼 흘러가버리고, 바람 앞의 모래처럼 흩어져버렸다. 무대 깊은 곳의 양쪽에는 2층의 철골 구조물이 있다. 그 꼭대기에서 노동자들이 ‘생존권 보장’이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맸다. 종주먹을 흔들며 구호를 외쳤다. 철탑 농성 코스프레다. 연출가 서반은 작품 곳곳에 여러 상징을 숨겨뒀다. 그걸 찾는 것도 이 작품을 보는 재미다.

하지만 ‘다른 춘향’이 아무리 다르다 해도 창극은 창극. 오페라의 매력을 합창에서 찾는 이들이 많은데, 이 창극의 장점은 독창뿐 아니라 합창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남녀 3명씩 6명으로 이뤄진 도창팀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노래뿐만 아니라 극의 해설자로, 기자로, 엑스트라로 다양한 연기도 펼친다.

“쑤욱대에 머어리 구우신 형용~.” 우리 소리는 언제 들어도 감칠맛 난다. 하지만 너무 현대적인 이미지에 둘러싸여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점은 아쉬움이다. 12월6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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