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 관절 가동범위 넘긴 훈련
늘 근육통·탈구·관절염 등 시달려
창작 스트레스로 정신적 고통도
아름다운 모습 보여주고자 숨겨
국립현대무용단 ‘춤이 말하다’
최고 춤꾼 6명 ‘몸의 미시사’ 그려
늘 근육통·탈구·관절염 등 시달려
창작 스트레스로 정신적 고통도
아름다운 모습 보여주고자 숨겨
국립현대무용단 ‘춤이 말하다’
최고 춤꾼 6명 ‘몸의 미시사’ 그려
뱅그르르 팽이처럼 몸이 돌았다. ‘턴’은 잽싸지만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이어 한쪽 발은 바닥에, 한쪽 발은 허공에 점을 찍었다. 뜨거운 호흡과 박동이 허공에 걸렸다.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이다. 가쁜 맥박이 바닥에 내려앉기도 전, 김지영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는 말과 숨을 동시에 뱉었다. “사실…저는…행복…하지만은…않아요. 제가 춤을 춘 지 18년이 다 돼 가는데요, 지금도 너무너무 떨려요.” 지난 4일 서울 서초동 국립현대무용단 연습실에서 김지영은 무대 위와 무대 바깥에서 느끼는 심리적 고통을 토로했다.
춤꾼의 몸은 하나. 어떻게 한 몸으로 아름다움과 고통을 동시에 표현하나? 아름다움은 박수를 받으며 외부로 향하지만, 고통은 폐부를 찌르며 내부로 숨는다. 해부학적으로 정상적인 관절의 가동 범위를 넘기도록 훈련되는 몸. 늘 근육통에 시달리고, 탈구와 골절, 관절염에 시달리는 춤꾼. 육체의 고통 뒤엔 정신의 고통이 버티고 있다. 창작 스트레스, 경쟁과 공연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은 위궤양과 불면의 나날로 이어진다. 한국 최고의 춤꾼 6명이 19~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몸, 춤, 삶을 얘기하고 춤춘다. 국립현대무용단의 렉처 퍼포먼스 <춤이 말하다>는 안애순 예술감독의 연출로 춤과 이야기를 통해 동시대적 무용의 스펙트럼을 되짚어 보는 자리다. 전문의 상담을 통해 부상과 통증, 정신적·신체적 고통이 점철된 이들 춤꾼의 몸에 관한 미시사를 끄집어낸다. 그 고통을 견뎌낸 몸으로 춤추고, 몸과 춤이 하나가 된 ‘춤꾼의 인간학’을 보여준다. ‘부상에서 비상으로.’ 고통 속에서 한 인간으로, 예술가로 거듭난 춤꾼들의 역사다.
■ 진료 상담으로 본 ‘몸의 미시사’
춤꾼에게 몸은 자신을 표현하는 미디어다. 대부분의 춤꾼은 무릎, 허리, 발목의 통증을 느낀다. 하지만 겉으로는 잘 표현하지 않는다. 이순신 장군의 말에 빗대면 “나의 부상을 남에게 알리지 말라”이다. 춤꾼은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진료기록과 상담 내용은 상당히 민감한 개인정보다. 춤꾼들의 양해를 얻어,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와 상담한 내용을 들어본다.
전통춤꾼 오철주(56) 청명무용단 대표의 몸 상태도 여느 춤꾼들과 다르지 않다. 공연 때마다 신경성 위장병이 도지고 약을 먹으면 좀 괜찮아진다. 무릎은 겨울이면 뻑뻑하고 시큰거린다. 한 발을 내디딜 때 살짝 아픈 정도다. 북을 칠 때는 손목도 시큰거린다. 15년 전에 허리를 다쳐서 지인한테 침을 맞았다. 건강검진을 받아본 적은 없다.
김용걸(41)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는 15살 때 발레를 시작했다. 무릎, 발목, 허리 통증이 계속됐지만 본격적인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발목은 인대가 늘어나 통증이 심하다. 저절로 아물었지만 왼발 쓰는 자세는 되도록 피한다. 리프트 동작에서 무리하면 아프다. 무릎은 자신의 모든 것인 무용을 접을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하다. 공복 상태에서 일을 하는 그는 3년 전 종합검진에서 위염 소견 판정을 받았다.
김 교수처럼 발레를 하는 김지영(36) 수석무용수는 365일 중에 300일은 아프다. 2004년 발목 수술을 받은 그는 관절과 인대에 문제가 있어 담당 물리치료사도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부상을 밖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춤을 보는 관객이 ‘아픈 몸으로 어찌 저렇게 춤을 출까’라는 생각을 한다면 관객들에게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차진엽(36) 콜렉티브 에이 예술감독은 현대무용 전공이다. 연습하다 허리를 다친 적이 있다. 목은 뻐근하며, 무릎은 끓었을 때 통증을 느낀다.
■ 부상에서 비상으로 ‘춤의 인간학’
“다쳤을 때가 아니라 다시 돌아올 때가 더 힘들어요. 왜냐면 자기 기량이 예전 같지 않거든요. 그게 한 2년 걸린 것 같아요. 그 안에서 그만둘까란 고민도 많이 했고, 제가 정신적으로 강한 것은 아니라서 많이 힘들었죠.”(발레 김지영)
“연세 드신 분들은 평생을 하셨기 때문에 가만히만 계셔도 뭔가 느낌이 되게 좋거든요. 근데 그 느낌 때문에 젊은 사람이 그렇게 하면 ‘저 사람 허리나 등에 뼈가 한두 개 빠졌나 보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전통춤 오철주)
“현대무용은 굉장히 기교적으로 움직이며 근력을 요하는 움직임들도 많거든요. 한때 추세가 굉장히 남성적인 춤이 경향이어서 남자 동작을 해내려고 무리를 했는데, 지금은 내 몸에 맞는 춤을 찾으려고 하거든요.”(현대춤 차진엽)
춤꾼은 고통 속에서 한 인간으로, 한 예술가로 성장한다. “날자, 날자꾸나!” 부상에서 비상으로, 춤꾼은 스스로한테 주술을 건다. 이번에 춤꾼들의 신체와 정신상태를 상담한 김인아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연세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는 “그들의 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안타깝지만 아름다웠습니다”라고 했다. “노동자의 몸은 육체·정신·감정노동이든 비슷한 감정을 부르지만, 무용수의 몸은 모든 노동의 형태가 혼합돼 있습니다. 마치 안전장치 하나 없이 에펠탑에 매달린 페인트공들의 사진을 보면서 안타까운 불안과 해학을 동시에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드라마투르그를 맡은 서동진 계원예술대 교수(문화비평가)는 말한다. “무용수가 자신의 몸에 관하여 무대 위에서 말을 하고 또 그렇게 발언된 몸으로 춤을 춘다는 것은 무용에 관한 새로운 체험과 지식을 생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춤에 관한 춤, 춤추는 자의 몸에 관한 춤을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전과 같이 춤을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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