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풀, 나무, 인물상이 정밀하게 그려진 특유의 정원 벽화.
국립중앙박물관 ‘폼페이 유물전’
예술품·가구 등 280여점
회칠한 프레스코 벽화 ‘진수’
서구 명품컬렉션 직수입 전시
국립 박물관에 ‘부적절’ 시선도
예술품·가구 등 280여점
회칠한 프레스코 벽화 ‘진수’
서구 명품컬렉션 직수입 전시
국립 박물관에 ‘부적절’ 시선도
출입문을 지나자 곧장 1900여년 전 로마인들의 실내 정원으로 들어왔다. 서기 79년 화산폭발로 사라진 로마제국 소도시 폼페이의 한 저택 안을 재현한 것이다. 그리스식 장식기둥 12개를 줄지어 세우며 짠 사각의 정원 둘레와 내부엔 크고 작은 조각상들이 줄지어 놓였다. 등신대 여신상과 사자발톱 받침대가 달린 대리석 탁상, 돌고래를 어깨에 휘감은 큐피트 같은 아기상 등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9일 시작하는 기획특별전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 (내년 4월5일까지)는 들머리부터 입체적인 시각적 공간을 연출했다. 기원전후 로마 제정 초기 도시 문화를 담은 폼페이의 예술품, 생활유물, 건축부재, 가구 등 280여점을 눈맛좋게 차렸다. 18세기부터 시작된 폼페이 발굴 전시를 전담해온 나폴리국립고고학박물관과 폼페이·헤르클라네움·스타비아에 문화유산관리국의 소장 컬렉션을 들여왔다. 전반부는 밝은 톤으로 향락적인 폼페이 생활문화를, 후반부는 어두운 빛으로 화산폭발 당시 희생자, 가축들의 주검을 본뜬 캐스트 모형을 대비시켜 전시하는 얼개다.
박물관이 첫손꼽는 화제작은 첫 전시실 안쪽 벽에 붙은, 회칠한 프레스코 벽화들이다. 푸른 하늘 아래 풀 숲 속에서 새들이 날고, 사이사이로 인물과 신상들이 등장하는 싱그러운 그림이다. 묘사가 정밀해 벽화 자체가 실제 정원 같은 착시를 부른다. 고구려벽화가 태동하기 300여년 전에 중국 송·원대나 조선후기의 정밀한 화조도 같은 그림이 있었다니 믿겨지지 않는다. 술의 신 바커스와 아리아드네,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등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을 담은 프레스코 회화판들도 수작이다. 생동하는 인물 움직임과 표정의 묘사, 구도의 치밀함이 르네상스, 바로크 대가들 못지 않다. 정원 기둥 앞에 선 페플로포로스 여신상은 전시의 최고 걸작품이다. 실제 실크원단처럼 물결쳐 흘러내리는 옷주름의 생생한 조형과 원숙한 시원의 미소가 압권이다.
다음의 눈대목은 생활유물들이다. 수도꼭지, 다채로운 장식이 새겨진 검투사의 칼과 투구, ‘사랑하는 자는 번영할지어다’ 등의 낙서판, 후라이팬 등의 식기, 뼈를 묻은 큰 유리단지, 15살 미만은 들어갈 수 없는 에로틱방의 성교 장면 그려진 프레스코판과 남근 모양의 등잔 등… 오늘날 우리 일상 취향과 별다를 바 없는 약 2000년전의 유물들이 기묘한 친근감으로 와닿는다. 로마인의 생활을 타임캡슐처럼 저장한 폼페이 유물들의 매혹은 지금 우리 삶의 일상, 욕망과 놀랄만큼 빼어닮았다는 데 있다. 그것은 로마 문화가 근대 이후에도 보편성을 지니며 동서양문화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쳐왔다는 역사적 의미와도 맞닿는다.
폼페이 전은 17년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도 거의 비슷한 틀거지로 치러졌다. 문화재·미술동네에서는 이 전시가 국가박물관 품격에 걸맞지 않다는 뒷담화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 여름 오르세미술관 전처럼 외교 인맥과 민간기획사를 통해 저가로 컬렉션을 대여한 까닭이다. 학예사들이 기획과 연구 대신 실무자로 뒤치닥거리하는 양상도 거의 똑같다. 비행기 값 내지 않고 현지 명품을 볼 수 있는 서비스라고 박물관 쪽은 자랑했다. 하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 전시의 얼굴인 기획전이 서구 명품컬렉션을 직수입하는 블록버스터 전 중심으로 꾸려진다는 것은 숙고해봐야 할 문제다. 입장료 성인 1만3000원. (02)2077-900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대리석에 여신을 묘사한 페플로포로스 조각상.
화산 폭발 때 죽은 개의 석고 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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