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목판화 ‘독도-서도’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판화가 김준권씨. 그는 “판화는 예부터 판을 짜고 내용을 새겨 넣은 이들의 역사와 철학이 깃든 장르였다”며 “판화의 본질에 대한 미술계와 대중의 각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사진 노형석 기자
김준권 회고전 ‘나무에 새긴 30년’
“이런 거 처음 보시죠? 우리 전통 판화는 사람의 마음으로 찍는 겁니다. 찍을 인(印), 그림 화(畵), 그래서 인화(印畵)라고 해요.”
전시장에 재현된 작업실 앞에서 판화가 김준권(58)씨는 머리카락 뭉치를 집어들고 힘주어 말했다. 이른바 ‘인체(印體)’라는 것이었다. 전통 판화에서 밑그림 새긴 목판의 선과 색면을 찍을 화선지에 골고루 배어들도록 문질러주는 도구다. 사람 기운 받아 몸에서 나온 이 도구를 마음을 다해 부여잡고 종이의 화면을 주시하면서 슥슥 문질러야 그림이 제대로 찍혀 나온다고 한다. 일본의 판화 작업에서는 이와달리 둥근 나무판에 천을 입힌 ‘바랭’이란 문지르개를 쓴다. 머리카락을 문지르개로 쓰는 건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으로 대표되는 이땅 고유의 목판 인쇄본 전통이다. 이 목판각본을 일컫는 인화(印畵)는 그래서 사람 기운으로 찍은 인화(人畵)이기도 한 셈이다.
10일 서울 견지동 아라아트 센터 2~5층에서 시작된 그의 판화 회고전 ‘나무에 새긴 30년’은 이처럼 전통기법과 현대적 감성 사이에서 쉼없이 교감을 고민해온 작가의 판화 인생 30여년을 갈무리해 보여준다. 판화계에서 김씨는 기름 아닌 물과 먹, 다색의 담채 안료로 찍는 중국의 전통 수인목판화 기법을 심화시켜 자신만의 수묵 목판화 형식을 창안해냈다. 하나의 밑그림 판에 수십벌까지 별개의 색판들을 파서 겹겹이 찍어내는 독창적 기법으로 한국 목판화의 새로운 경지를 일궈낸 것이다.
1980년대 미술교사로 일했던 그는 참여미술운동의 사회변혁 수단으로 판화를 지목하고 작업에 처음 뛰어든 이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89년 전교조 참여로 해직된 뒤에는 판화 매체의 본질을 탐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전통 산수와 중국, 일본 전통 판화의 세계를 섭렵하면서, 목판 판각 기법의 심층을 파고들며 새 지평을 찾는 고투를 그 뒤 20년 이상 계속해온 것이다. 끊임없는 갱신과 변화로 이어진 그의 판화 작업 흐름을 조망하는 자리가 바로 이번 전시다. 개막식 전날 늦은 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2~5층을 열심히 뛰어다니며 마지막 작품 준비에 부산한 모습이었다.
아라아트 센터는 인사동 화랑가에서 가장 큰 전시장이다. 그런데도, 200점 그의 작품을 내건 4개층 공간은 되려 좁아 보이까지 한다. 작업량이 방대하고 100호를 넘는 대작들이 많은 까닭이다. 충북 진천군 백곡면 산골에 92년 11월 작업실을 낸 뒤로 가족들과 도 떨어진 채 “농부가 밭고랑 매듯” 그리고, 새기고, 찍는 일만 거듭해온 결과일 것이다. “30년간 3000여장을 찍었습니다. 어림해보니 1년에 100여장, 사흘에 한판 꼴로 찍었더군요. 제가 생각해도 참 독하게 세월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는 판화가 김준권의 삶과 작품을 통해 들여다본 8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선 초창기부터 이어져온 작가의 작품 맥락을 알려면 5층에 걸린 초창기 유화와 판화들을 눈여겨봐야 한다. 70년대 홍대 재학중 그린 화난 자화상과 80년대 초반 ‘상(像)-5월 광주’연작 등의 극사실적 유화가 서구 모더니즘 계열의 비판적 사실주의를 보여준다면, 80년대 중반 교육운동을 하면서 만든 전봉준의 초상(‘새야새야’), ‘통일대원도’ 등은 칼맛나는 날카로운 선묘에 민족해방과 변혁의 메시지를 담은 단색 판화들이다. 역사와 시대 앞에 품은 작가의 결기를 민화풍의 구도에 담아낸 당시 판화들은 산하와 들녘, 농촌 정경 등을 담아낸 90년대 이래 김준권 목판화의 서정성이 작가 특유의 현실의식에서 태동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민중판화에서 정경판화까지
30년간 3000여점 새기고 찍고
200여점 골라 4개층에 빼곡 수십 벌 별도 색판 겹겹이 찍어내
정교한 농담 조절까지 표현 경지
수묵목판화의 새 이정표 세워 “89년 제가 학교에서 해직되고, 민중미술운동도 새 전망을 모색해야하는 상황에서 왜 기존 목판화는 유성잉크를 묻혀 롤러로 그냥 찍는데 급급하냐는 지적을 지인에게서 들었습니다. 민족, 민중을 이야기했지만, 그 기법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지요. 형식적으로 어떻게 우리 민족 전통을 살린 목판화를 만들어낼까 고민하던 즈음에 한줄기 빛처럼 다가온 경험이 바로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 전통 경판을 찍던 장인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먹을 쓰고 머리카락 뭉치를 문질러 종이에 찍는 전통 판각술을 배웠습니다.” 해인사에서 먹판의 재발견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90년대 초반부터 그는 소나무나 들녘의 보리밭, 농가의 모습들, 꽃나무 등을 묘사한 다색 수묵목판화들을 선보이게 된다. 산속으로 들어간 그의 작업은 10여년 사이에 기존 수묵화나 산수화처럼 정교한 농담의 바림을 통해 대기의 기운까지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깊어졌다. 여러벌의 그림 목판에 각각 다른 색깔의 채색을 입히고 섬세한 호흡으로 윤곽을 맞춰 찍는 다색 수묵 목판화 기법은 갈수록 농익어갔다.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의 진경산수화풍을 판화 속에 독자적으로 재해석해 풀어내는 경지까지 성취하게 된다. 숲에서 나무 가지들의 겹치는 부분까지도 바림으로 표현하고, 산세가 겹친 판화 속에서 사철의 산과 낮, 밤, 새벽 산의 울림과 분위기도 그의 생각대로 나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3년여간의 중국 루신미술대학 연구원 생활과 일본 우키요에 연수, 틈나는대로 다녔던 현장 사생이 이런 성취를 뒷받침하는 기반이 됐다. 우키요에 풍의 압축된 공간미학이 돋보이는 90년대 초의 엉겅퀴 연작이나 올해 찍은 채묵 목판화 ‘푸른 소나무’ 등에서 관객들은 한·중·일 고금의 판화기법에 통달한 판화대가의 공력을 읽을 수 있다. 지난달 전시를 앞두고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그는 의사의 만류에도 마음에 품은 울분 때문에 전시를 꼭 해야한다는 고집을 부렸다고 털어놓았다. “화랑들이 원로 중견 유명작가의 원화를 복제판화로 만들어 마구 판매하면서 사람들이 기존 판화도 헐값 복제물로 여기기 일쑤입니다. 판화의 본령은 복제가 아니라 창작과 복사라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리겠다는 절박한 생각을 안고 전시를 차리게 됐지요.” 어리석은 이가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의 다짐으로 김씨는 한발짝 한발짝 수묵목판화의 심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오직 앞으로만 갈 뿐이다. 세상의 그 어떤 판화가도 가지 못했던 전인미답의 경지가 그의 눈 앞에 계속 펼쳐질 것이다. 29일까지. (02)733-1981.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30년간 3000여점 새기고 찍고
200여점 골라 4개층에 빼곡 수십 벌 별도 색판 겹겹이 찍어내
정교한 농담 조절까지 표현 경지
수묵목판화의 새 이정표 세워 “89년 제가 학교에서 해직되고, 민중미술운동도 새 전망을 모색해야하는 상황에서 왜 기존 목판화는 유성잉크를 묻혀 롤러로 그냥 찍는데 급급하냐는 지적을 지인에게서 들었습니다. 민족, 민중을 이야기했지만, 그 기법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지요. 형식적으로 어떻게 우리 민족 전통을 살린 목판화를 만들어낼까 고민하던 즈음에 한줄기 빛처럼 다가온 경험이 바로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 전통 경판을 찍던 장인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먹을 쓰고 머리카락 뭉치를 문질러 종이에 찍는 전통 판각술을 배웠습니다.” 해인사에서 먹판의 재발견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90년대 초반부터 그는 소나무나 들녘의 보리밭, 농가의 모습들, 꽃나무 등을 묘사한 다색 수묵목판화들을 선보이게 된다. 산속으로 들어간 그의 작업은 10여년 사이에 기존 수묵화나 산수화처럼 정교한 농담의 바림을 통해 대기의 기운까지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깊어졌다. 여러벌의 그림 목판에 각각 다른 색깔의 채색을 입히고 섬세한 호흡으로 윤곽을 맞춰 찍는 다색 수묵 목판화 기법은 갈수록 농익어갔다.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의 진경산수화풍을 판화 속에 독자적으로 재해석해 풀어내는 경지까지 성취하게 된다. 숲에서 나무 가지들의 겹치는 부분까지도 바림으로 표현하고, 산세가 겹친 판화 속에서 사철의 산과 낮, 밤, 새벽 산의 울림과 분위기도 그의 생각대로 나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3년여간의 중국 루신미술대학 연구원 생활과 일본 우키요에 연수, 틈나는대로 다녔던 현장 사생이 이런 성취를 뒷받침하는 기반이 됐다. 우키요에 풍의 압축된 공간미학이 돋보이는 90년대 초의 엉겅퀴 연작이나 올해 찍은 채묵 목판화 ‘푸른 소나무’ 등에서 관객들은 한·중·일 고금의 판화기법에 통달한 판화대가의 공력을 읽을 수 있다. 지난달 전시를 앞두고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그는 의사의 만류에도 마음에 품은 울분 때문에 전시를 꼭 해야한다는 고집을 부렸다고 털어놓았다. “화랑들이 원로 중견 유명작가의 원화를 복제판화로 만들어 마구 판매하면서 사람들이 기존 판화도 헐값 복제물로 여기기 일쑤입니다. 판화의 본령은 복제가 아니라 창작과 복사라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리겠다는 절박한 생각을 안고 전시를 차리게 됐지요.” 어리석은 이가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의 다짐으로 김씨는 한발짝 한발짝 수묵목판화의 심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오직 앞으로만 갈 뿐이다. 세상의 그 어떤 판화가도 가지 못했던 전인미답의 경지가 그의 눈 앞에 계속 펼쳐질 것이다. 29일까지. (02)733-1981.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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