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토슈즈 벗어던진 분노, 그러나…

등록 2014-12-22 19:13

모던발레 <RAGE>의 모습. 사진 서울발레시어터 제공
모던발레 의 모습. 사진 서울발레시어터 제공
서울발레시어터 모던발레 ‘분노’
상처 안은 현대인의 허탈한 저항
암울한 무대 위 숨가쁜 몸짓으로
숨가쁜 분노의 질주 70분. 발레지만 토슈즈도 벗어던졌다. 맨발은 저항이다.

무대 뒤편 회색 콘크리트 빌딩이 왼쪽으로 기울었다. 기운 것은 불공정이고 불평등이다. 앵그리 버드가 아니라도 “화가 난다!” 화가 나더라도 콘크리트벽을 넘을 순 없다. 좌절이다. 공중에선 철제 구조물이 압살할 듯 위협한다. 억압과 공포다. 그 속에서 인간은 왜소하다. 억눌리고 좌절한 그들이 질주한다. 자본주의의 속도구조는 현대인을 닦달하고 채찍질한다.

지난 18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서울발레시어터의 모던발레 (레이지·분노)가 전막 초연됐다. 춤꾼은 헐벗었다. 여성은 검은색 팬티에 가슴만 가린 빨간 탱크톱 차림이다. 검은 상처를 안은 현대인의 붉은 분노다. 답답하다며 가슴을 치고, 억울하다며 땅을 친다. 웃통을 벗은 남성 춤꾼은 고슴도치처럼 온몸을 도사리고 권투선수처럼 두 주먹을 쥔다. 여성과 남성 춤꾼들이 두 손을 들고 아우성친다. 살려달라는 비명이다.

제임스 전의 안무는 현대 사회에 대한 분노와 살아남기 위해 질주할 수밖에 없는 생존본능을 ‘숨가쁘게’ 신체언어로 통역한다. 때로 금속처럼 거칠게 주조되는가 하면 때론 피륙처럼 정교하게 교직한다. 고전발레의 동작들이 대부분 현대적으로 변형됐지만, 정통 발레 동작들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는 우스꽝스럽게 자신을 비하한다. 코를 잡고 머리를 툭툭 치며 폴짝 폴짝 뛴다. 저항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허탈한 저항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조종하는 마리오네트다. 자조에 지칠 때 비로소 자유를 향한 갈망이 분수처럼 치솟는다. 남녀 춤꾼이 두 팔을 펴 새의 모양을 그려낸다. 벗어날 수 없는 억압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안쓰러운 안간힘이다.

작품은 공격적이고 변덕스러운 세상에 대한 분노로 시작해서 자조, 갈망을 지나 새로운 희망으로 막을 내린다. 파격적 안무를 돋보이게 한 것은 무겁고 억압적인 무대장치다. 거친 콘크리트와 차가운 금속성 구조물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암울한 디스토피아다.

하지만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게 한 건 음악의 밀고당김 때문이다. 칼 젠킨스의 ‘비바체’는 폭력적 속도구조를 극대화시켰다. 필립 글래스의 ‘컴퍼니 4’는 참을 수 없는 분노의 수위를 극한치 위로 범람시켰다. 존 케이지의 ‘미스테리어스 어드벤처’는 현대인의 자조를 비극적 유희로 담아냈다. 70분의 질주를 끝낸 춤꾼들은 기진맥진. 가쁜 숨결과 같은 박자로 박수가 쏟아졌다.

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가 제임스 전은 “질주하는 현대인의 애환을 담았다. 그들의 지친 마음을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는 ‘2014년 무용부문 창작산실 우수작’으로 뽑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서울발레시어터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