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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침묵한 진실이여, 처연한 몸짓이여

등록 2014-12-25 18:56수정 2014-12-31 11:26

장민승, 정재일씨의 영상설치작품 ‘검은 나무여’. 사진 노형석 기자
장민승, 정재일씨의 영상설치작품 ‘검은 나무여’. 사진 노형석 기자
에르메스 미술상 세 후보작 전시
세월호 다룬 영상 ‘검은 나무여’
수화 매개로 감정절제 보여줘
캄캄한 화면에 처연한 현악기 선율이 흐르면서, 열개의 손가락들이 튀어나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손가락들은 건반 치듯 마디를 하늘거리며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가, 무언가 쿡 움켜잡으며 위로 뻗쳐 올라오기를 되풀이한다. 종주먹 쥐며 손을 서로 겹쳤다가, 손바닥 펼쳐 보이며 스르르 가라앉는다. 상승과 하강을 되풀이하는 손가락 놀림이 점차 격해지자, 선율도 점점 높아지고 날카로워진다. 어느순간 음향과 몸짓은 비명처럼 자지러지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

젊은 디자이너·영상작가 장민승씨가 음악가 정재일씨와 함께 만든 영상설치 ‘검은 나무여’의 장면들은 누구나 직감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슬픔과 긴장을 담는다. 하강하는 손가락과 암전된 화면은 서해 바닷속에 침몰한 세월호의 운명을 비추는 몸의 은유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과정은 간단치 않다. 옛적 일본 가객들이 자연과 사물의 운명에 대해 읊은 여섯개 하이쿠(단가)에서 발췌한 싯구를 한 여성이 수화로 표현한 퍼포먼스 흑백 영상이 작품을 이끌어간다. 볼 수 없는 소리와 들을 수 없는 수화가 하이쿠를 매개로 어울려 참사에 대한 작가의 속깊은 감정을 절제시켜 보여주는 것이다. 이 독특한 영상 공간 들머리 곳곳에는 참사에 희생된 젊은이들의 비감을 상징하는 하이쿠 시편들이 종잇쪽에 적혀 널려있다. 17세기 가객인 진노 타다토모의 하이쿠 한 대목. ‘타버린 숯이여, 예전엔 흰 눈 쌓인 나뭇가지였겠지.’

‘검은 나무여’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고 있는 2014에르메스 재단미술상 후보작 전시회 출품작이다. 전시장엔 대상을 극단적으로 확대해 흐릿한 이미지를 만든 디자이너 슬기와 민의 ‘테크니컬 드로잉’ 연작과 상품의 플라스틱 포장재 폐기물을 석고로 본뜬 ‘죽은 불’과 동상의 여러 포즈를 막춤으로 만든 여다함 작가의 영상물 ‘무뢰한 정신’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무뢰한 정신’은 요란한 음악 속에 도시 변두리 공터에서 미친 듯 동상의 몸짓을 막춤으로 풀어내는 한 여성과 두명의 힙합 춤꾼을 보여준다. 절박해보이는 그들의 춤동작 속에서 동상의 권위성을 전혀 다른 맥락으로 전복시키는 이 시대 청춘들의 스산한 감성을 엿볼 수 있다. 2월15일까지. (02)3015-3248.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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