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미술관 ‘즐거운 나의 집’전에 나온 예스퍼 바흐트마이스터의 다큐 영상 속 가상 주택인 ‘마이크로토피아’.
‘우리에게 집이란?’ 근본 묻는 전시들
지금 한국인에게 집은 무엇일까? 당장 많은 이들의 머리 속이 헝클어진다. 투자와 자산가치, 학군 등의 여러 요소들이 집의 인문 가치를 성큼 덮어버리는 탓이다. 내수 부진에, 극한 경쟁으로 개인 실존이 위협 받는 지금 한국에서 안온한 추억의 산실이던 옛 집에 다시 눈길 주는 흐름은 당연해 보인다. 연말부터 예술가와 보통사람의 감성으로 집을 뜯어보는 전시들이 잇따르는 배경이다. 집에 얽힌 본래의 감각과 정서를 호출하고, 대안을 찾아보려는 시도들이 살갑다.
안정된 휴식·가족과의 유대보다
투자와 자산가치·학군 등 우선 세태 아르코미술관 ‘즐거운 나의 집’전
기억-현재-꿈속의 집 지어놓고
집 본래 감각·기억 환기시켜 저출산·1인가구 등 현실 반영한
대안적 주거공동체 구상 전시도
집전시들 가운데 눈대목은 70년대 건축가 김수근이 빨간 벽돌건물로 지은 서울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이다. 지난달부터 내부가 집 공간으로 바뀌었다. 1층 1전시실은 ‘기억의 집’, 2층 2전시실은 ‘현재 사는 집’, 2층 아카이브실과 1전시실 맞은편 스페이스 필룩스 공간은 ‘꿈 속의 집’으로 명명됐다. 삶 속의 집을 이 세가지로 나눈 고 정기용 건축가의 분류에 따라 기획전 ‘즐거운 나의 집’(2월15일까지)이 펼치는 풍경이다.
집의 의미를 묻기 위해 영상·설치·회화·사진 작가 10여명과 건축가, 디자이너 등이 손잡고 짜낸 이 전시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은 1층에 있다. 들머리 통로 깊숙한 안쪽은 현관문이다. 통로 벽에는 귀가길에 봄직한 한강변과 아파트촌 영상들이 흘러간다. 누군가의 집을 찾는 느낌으로 지나가면 거실이 보인다. 탁자 위에 유리 잔과 트로피, 인물상 등이 널브러지고, 전화기·재털이 등을 그린 그림도 양벽에 걸려 10~20년 전 중류층 집안 같다. 벽 한쪽엔 소설가 보르헤스가 <사물들>에서 쓴 경구가 선뜩하다. “우리가 자취를 감춘 후에도 이것들은 남겠지. 그리고 우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끝내 모르겠지.”
거실 뒤로는 둥글둥글하거나 각진 식탁과 그 위에 빈 접시, 수저가 위에 놓인 식당방이 나타난다. 식기 자리마다 옆에 신경숙, 요시모토 바나나 같은 국내외 작가들 소설의 식사를 묘사한 구절들이 적힌 종이쪽지가 붙어있다. 더 안쪽 구석엔 금민정 작가가 만든 숨쉬는 문 영상 아래 유년시절 들어갔음직한 다락방 같은 틈새공간이 보인다. 커튼으로 가린 여러 곳의 수세식 화장실 공간도 눈을 끄는데, 다가가면 변기 뚜껑이 올라간다. 변기에 앉으면, 그 앞 거울을 보거나, 옆 책꽂이의 책을 꺼내 읽을 수 있다. 전시장 말미 원형의 대형 공기쿠션이 있는 침실 뒤켠에 어릴 적 자기집 가족 모습들을 떠올리며 그린 문성식 작가의 섬세한 드로잉이 내걸려 향수를 일으킨다.
올라간 2전시실은 그룹 옵티컬레이스의 설치공간 ‘확률가족’이 지금 한국인의 주거상황을 눈앞 수치로 절감시켜준다. 먼저 80만~800만원대까지 자기의 월급 수준이 조목조목 적힌 바닥패널 앞에 선다. 각자 해당되는 패널을 밟고 그 앞문을 열면, 자기 봉급으로 대출가능한 금액이 점점이 적힌 넓은 바닥이 펼쳐진다. 바닥 사면 벽에 부모의 재산과 소득별 거주 가능구역이 적힌 이미지들이 그려져 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주거의 한계를 곱씹으며 다음 공간으로 발을 떼면, 철거촌 집의 간유리를 떼어 고층빌딩 같은 조형물을 만든 조혜진씨 작품이 맞는다. 아카이브실과 3전시실에는 바하트마이스터의 기계주택(마이크로토피아) 같은 작가들의 전위적인 가상 주택이나, 서구 대안 주거 모델들의 영상·자료들을 풀었다. “집에 얽힌 사람들의 본래 감각과 기억을 환기시키고 싶었다”는 차승주 큐레이터의 말처럼 건축 모형전과는 다른 집 공간과 그 속 일상 기물들의 감각적 배치와 구성이 신선하다. 오늘날 주거를 상당부분 분담하는 도시의 다른 유사 공간에 대한 접근이나, 집 성격의 변천사 등이 빠진 아쉬움도 남는다.
서울시립미술관의 ‘협력적 주거공동체’ 전(25일까지)은 집이 지닌 연대와 협력의 본래 기능을 되살리려는 대안모음전이다. 도시화와 저출산, 1인가구 증가 등의 현실을 감안해, 약 30평 집의 3분의1 공간을 이웃과 공유한다면 어떤 대안을 꾸릴 것인지를 놓고 건축가 9명이 각양각색 상상력을 펼쳐놓았다. 아파트 가구마다 ‘바깥채’ 성격의 현관 쪽 공간을 목욕실·운동실·명상실 등의 공유 공간으로 서로 붙여 쓰자는 큐제이케이(QJK)그룹의 ‘아파트멘트’, 아파트에 사는 독신자가 필수 생활공간을 뺀 나머지 거실 등은 채소텃밭, 사랑방 등으로 이웃주민에게 내어주는 구상을 풀어낸 황두진씨의 도시영농공동체 제안 등이 흥미롭다. 앞서 지난달 서울 북촌 송원아트센터에서 열린 ‘모바일 홈프로젝트’전에는 고정 거주공간이 없는 빈민, 노숙자들을 위해 이동식 부엌과 옷처럼 입는 주거모델 등을 제안한 국내외 작가들 작품들이 대거 나와 또다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편, 젊은 건축가들은 서울 서촌 일대에서 도시와 건축, 집에 대한 ‘포럼+전시’형 담론장을 꾸려갈 조짐이다. 건축상 수상경력이 있는 소장건축가 40여명이 꾸린 ‘젊은건축가포럼코리아’가 지난 29일부터 창성동 온그라운드 갤러리와 통의동 보안여관 등에 마련한 ‘어반 매니페스토 2024’전이 그것이다. 그간 ‘콘퍼런스 파티’란 이름아래 벌여온 도시·건축에 대한 대안 담론들을 건축의 ‘일상’과 ‘확장’, ‘유희’, ‘협업’이란 주제로 재구성해 전시하고, 이들이 꿈꾸는 2024년 서울의 미래상을 영상, 이미지, 텍스트 등으로 내보이는 얼개다. 전시가 끝나는 31일까지 매주 목요일 문화계 인사들과 대화마당을 꾸리며 대안적 담론을 쌓을 계획이어서 연초 건축계 눈길이 서촌에 쏠리고 있다.
글·사진/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서울시립미술관, 아르코미술관 제공
투자와 자산가치·학군 등 우선 세태 아르코미술관 ‘즐거운 나의 집’전
기억-현재-꿈속의 집 지어놓고
집 본래 감각·기억 환기시켜 저출산·1인가구 등 현실 반영한
대안적 주거공동체 구상 전시도
이 미술관 1층에 나온 작가그룹 베리띵즈의 식당.
숨 쉬는 방문을 담은 금민정 작가의 영상 및 아래 틈새 방
서울시립미술관 ‘협력적 주거공동체’전에 나온 큐제이케이그룹의 ‘아파트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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