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라 참아라 고생 끝에 낙이 온다 꾹 참고 배우니 낙동강 오리알”
“밖에서도 일하고 집에서도 일하네 쓸고 닦고 한들 무슨 소용 있나”
“밖에서도 일하고 집에서도 일하네 쓸고 닦고 한들 무슨 소용 있나”
경기민요 소리꾼 모임 ‘앵비’가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공장에서 현대판 노동요를 담은 <굿 들은 무당: 전해들은 이야기>를 연습하며 복잡한 지하철로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5명 여성 소리꾼 각자 직업군 택해
옛 경기소리 가락에 직접 가사 붙여
비정규직·서비스직 등 애환 풀어내 ■ 비정규직 장그래는 ‘우리 이야기’ “세상은 넓구나 할 일도 많구나 내 꿈도 크구나 월급만 작구나/ 니 달력 색깔은 알록달록 예쁜데 내 달력 색깔은 어두컴컴 하구나/ 이것도 해봐라 저것도 해봐라 시키는 일 다하니 해 볼 일이 없구나/ 배워라 참아라 고생 끝에 낙이온다 꾹 참고 배우니 낙동강 오리알.” 경기민요 ‘천안도삼거리’ 선율이 흐른다. 그런데 가사는 천안삼거리와 전혀 관계없다. 바로 채수현이 부르는 비정규직 노동요다. 지난해 말 이윤택 작·연출의 음악극 <공무도하>에서 여옥을 맡았던 채수현도 비정규직이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준단원으로 1년 6개월마다 새로 계약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앵비의 대표를 맡은 채수현이 그의 처지와 같은 비정규직의 가사를 쓴 것은 너무 당연하다. “서비스 서비스 친절 친절 고객은 왕 고객은 왕/ 미소짓는 로봇으로 변신하자 변신하자.”(예천논매는소리 중 방아타령) “하하하 호호호 나는 스마일 우먼/ 비위를 맞추느라 텅텅 빈 강정속 같은 내 마음/ 속마음은 썩은 채 고객을 왕처럼 모시는 불편한 서비스/ 간 쓸개 다 빼주는 나는 ‘을’, 하늘 같은 고객은 ‘갑’ 이로구나.”(신고산타령) 채수현이 장그래로 대표되는 비정규직 차별을 노래했다면, 성슬기는 감정노동을 하는 서비스직 노동자의 속 울음을 함께 운다. 그는 “저희도 서비스직이잖아요. 예술을 하지만 웃기 싫은데 억지로 웃는 로봇으로 변신해야 하고요”라고 했다. 이미 감정노동의 아픔을 동병상련으로 느끼고 있다. ■ 5명이 직접 쓴 ‘이 시대의 노동요’ <굿 들은 무당: 전해들은 이야기>의 바탕은 김슬기 드라마터그와 공동조사를 거쳐 나왔다. 토론하는 과정에서 우리 생활과 밀접한 직업군을 추려내고 각자 하나씩 직업군을 선택했다. 가사는 다섯 명 소리꾼이 직접 썼다. 처음 서울문화재단 유망예술지원 작품으로 뽑힐 때만 해도 노동요의 범위는 ‘문래동 철공소’에 국한됐었다. 공동창작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직종의 노동자로 범위가 확장된 것이다. 이제 ‘이 시대의 노동요’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하지만 비록 사전취재를 했더라도 그 직종을 다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솔직하게 ‘전해들은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았다. 회사원 역을 맡은 이미리는 “일하는 건 부하직원, 생색 내는 건 상사일세. 늴 늴 내가 돌아간다/ 속이 썩어 괴로운 건 보기 싫은 상사 얼굴 늴 늴 내가 돌아간다”(뉠리리아)라고 푸념한다. 교사 역을 맡은 최주연은 “거기 너 자꾸만 반항할래 오늘도 애들은 청개구리 참자 참자 참아야 한다 참을 인자만 수천번”(태평가)을 되뇐다. 직장 일에다 가사노동까지 떠맡은 김미림은 “밖에서도 일하고 집에서도 일하네 쓸고 닦고 한들 무슨 소용 있나”(청춘가)라고 한숨을 쉰다. <굿 들은 무당…>은 현대적 안무를 곁들인 일종의 음악극이다. 다섯 명의 경기민요 소리꾼은 저마다 다른 직종의 노동자가 돼 이 시대를 그려낸다. 대사는 없지만 노래와 함께 연기를 한다. 지옥철 출근길에서 아등바등 싸우며 버티고, 고객을 위해 로봇처럼 웃고 인사한다.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철탑에 오르고, 종주먹을 흔들며 구호를 외친다. (010)9797-4740.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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