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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수심에 잠기다

등록 2015-01-06 19:16

강경구씨의 2014년 작품인 ‘여행자’.
강경구씨의 2014년 작품인 ‘여행자’.
강경구 개인전 ‘부유하다’
쌓고 또 쌓은 색층 위 물살 통해
우리가 안았던 ‘현실의 절망’ 그려
입이 없고, 눈동자가 없고, 얼굴이 없는 사람들. 기척이 있어야하는데, 도통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한국화가 강경구(63)씨의 근작들은 이렇게 기형적인 용모를 하거나 장승처럼 뻣뻣해진 사람들이 물 위에 마냥 서있거나 떠다니는 모습들을 담고있다. 배경엔 허연 포말 뒤섞인 물살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물살이 사람들 머리까지 찰랑찰랑 차오르거나 기울어진 집을 떠내려 보낸다. 떠내려가는 집엔,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는 사람의 퀭한 얼굴이 보이고, 다른 쪽 물살 위엔 비닐자루 같은 투명인간도 떠있다. 집은, 사람은 이제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스페이스 K에서 열리고 있는 강씨의 개인전 ‘浮遊(부유)하다’는 음울하고 막막한 인간실존의 풍경이다. 색층을 쌓고 또 쌓으며 빚어낸 인간군상과 물살은 구체적인 형태감보다, 그 윤곽을 표현한 색층들이 내뿜는 무게감이 크다. 작가는 지난해 물과 결부되어 우리가 안았던 현실의 절망을 털어놓은 작품이라고 했다. 그러나, 전시작들은 그의 말처럼 쉽게 눈에 감겨오지 않는다. 화선지 대신 캔버스에 묵직한 불투명 안료를 꾸역꾸역 쌓아올리며 그리는 특유의 작업방식 탓일 것이다.

강씨는 1990년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 심취했다. 인왕산과 현대 서울의 풍경을 독특한 먹덩어리 작업으로 풀어냈던 이력이 있다. 지금도 “체질상 화선지에 붓질을 휘갈기는 것보다는 자꾸 쌓고 중첩시켜 새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그래서 두껍게 갠 황토빛, 붉은빛, 회색빛 등의 아크릴 물감덩이를 붓질로 이겨넣어 인간군상들의 축적된 윤곽을 표현한다.

강씨의 근작들은 어떤 실제의 풍경이라기보다 최근 우리가 감내했던 현실 기억들의 잔상에 가깝다. 물을 매개로 지난해 사람들을 수심에 잠기게 했던 한국 사회의 여러 트라우마들과, 말하고 싶어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시대적 분위기에 대한 한탄이 맺혀있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이루 헤아리기 힘든 여러 기억들의 풍경을, 작가는 갖가지 묵직하고 어두운 색들이 덕지덕지 덧칠된 화면 속에서 힘겹게 정리하고 풀어내려 한다. 22일까지. (02)3677-3197.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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