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과 작가의 협업전시 ‘내용증명’
#1. 서울 문래동 철공소거리를 떠도는 길고양이 이포와 광명이는 최근 영상작가로 데뷔했다. 지난해 여름과 가을 김미련 작가가 걸어준 핸드캠을 목에 걸고서 거리의 다큐영상을 찍고 철공소 소리도 채집했다. 작업한 영상에는 그네들의 몸 움직임에 따라 즐겨 노는 차 밑이나 담벼락 틈새 풍경 등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유기동물 눈길로 바라본 ‘문래동의 낮과 밤’이다.
#2. 냉기 가득한 전시장 바닥 곳곳은 빙판이다. 이 춥고 외진 곳에 서울 변두리 사람들이 자기네 삶을 증명하려고 남긴 사진 등의 기록과 애장품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1960~80년대 자재 생산기지였던 문래동 철공소 사람들과 주민, 최근 예술촌을 형성한 작가들이 함께 품을 열고 꺼내 보여준 기억들이 모락모락 훈기를 피우며 관객들 가슴을 풀어준다.
‘당신의 삶을 증명하라’는 구호 아래 서울 문래동 대안공간 이포에서 지난달 시작한 ‘내용증명’ 전은 주민과 철공소 사람들, 작가, 동물들이 빚어낸 이미지 별천지다. 심야에도 전시가 이어지고 작가, 관객, 주민, 고양이가 공간에 모여들어 관계와 사건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온기 남은 철난로에 손을 찰싹 붙인 채 둘레 작품들을 휘휘 둘러보는 관객들 풍경도 재미있다.
작가들은 주민 초상화 등 내걸고
주민들은 별의별 애장품 모아
목에 캠코더 건 동네고양이
철공소 골목 소리 채집하기도
삶의 흔적·동네의 역사 한자리에 출품작들은 대부분 현장에서 수집한 물건들이다. 기름밥 먹으며 뿌리내린 철공소 장인과 식당, 가게 등을 꾸리며 살아온 주민들, 최근 예술촌을 형성한 작가들이 자기네 삶의 다기한 흔적들을 아카이브, 영상, 그림, 스케치, 드로잉 등으로 집약해 보여준다. 50여평 남짓한 전시장 들머리를 차지한 것은 주민들 사진과 삶을 담은 애장품, 기록물 등을 보여주는 아카이브 공간. 50년대 문래교회의 신도 기념사진과 지금도 남아있는 골목 귀퉁이 건물과 거리에 선 소녀들의 아련한 이미지들이 보인다. 애장품 코너에는 별의별 물건들이 다 있다. 페인트집 아줌마가 준 말린 애호박과 동네 작가들의 멘토인 주민 최영식씨가 내준 모친의 복을 비는 주문집, ‘남과 같이 해서는 남이상 될 수 없다’는 교훈 글씨 등이 내걸렸다. 중간방과 안쪽 중정 공간에는 공업용 나무틀(목형)에 작업한 13명 작가의 오브제 작업과 그림·판화 작업들이, 지하공간에는 김미련 작가가 갈무리한 길고양이 작가들의 문래동 영상과 전시 기획자 박지원씨가 찍은 오물 퍼내는 사람의 영상이 욕설문자와 합성된 작업들이 나왔다. 따뜻한 색조로 그린 이상권 작가의 문래동 거리 그림과 이곳에 관심 많은 왕년의 참여미술작가인 김정헌·주재환·성완경씨의 그림, 영상들도 내걸렸다. 이포 기획자 박지원씨와 화가, 영상작가 등으로 구성된 준비팀은 문래동 길거리에서 이 전시의 콘텐츠를 캐냈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부터 거리에서 문래동 주민과 철공소 사람들을 붙잡고 끈질기게 따라붙어 대화하고 관계맺으며 얻어낸 기록들이다. 자신과 대화한 철공소 주인, 주민들 30여명의 초상 석판화를 내건 나현정 작가는 “주민들이 바라보는 공공예술에 대해 날것으로 듣고 이야기해볼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공간은 열악하지만, ‘내용증명’전은 근래 미술판에서 보기 드물게 도시 변방의 역동성과 생성의 실체를 포착하려 한 시도를 보여준다. 안쪽 공간에 있는 작가 신해철씨의 설치작품 ‘의자가 있는 집’은 이런 생성의 의미를 단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한명 들어앉을 정도로 좁은 목형 구조물 안에 앉으면 자전거 타는 사람, 철공소 작업 모습 등 문래동 일상의 움직임들을 철사선을 엮어 풀어낸 송기두씨의 공간 드로잉이 코앞에 비친다. 좁은 공간 속에 다닥다닥붙은 인간들 움직임은 그 자체로 삶에 얽힌 절박한 감각을 전해준다. 디자이너 문승영씨는 “문화와 재개발 사이에 놓인 문래동 사람들의 상황을 최대한 그대로 드러낸 점이 좋다”며 “예술이 결국 삶과 같이 논다는 진실을 담은 기획전”이라고 평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주민들은 별의별 애장품 모아
목에 캠코더 건 동네고양이
철공소 골목 소리 채집하기도
삶의 흔적·동네의 역사 한자리에 출품작들은 대부분 현장에서 수집한 물건들이다. 기름밥 먹으며 뿌리내린 철공소 장인과 식당, 가게 등을 꾸리며 살아온 주민들, 최근 예술촌을 형성한 작가들이 자기네 삶의 다기한 흔적들을 아카이브, 영상, 그림, 스케치, 드로잉 등으로 집약해 보여준다. 50여평 남짓한 전시장 들머리를 차지한 것은 주민들 사진과 삶을 담은 애장품, 기록물 등을 보여주는 아카이브 공간. 50년대 문래교회의 신도 기념사진과 지금도 남아있는 골목 귀퉁이 건물과 거리에 선 소녀들의 아련한 이미지들이 보인다. 애장품 코너에는 별의별 물건들이 다 있다. 페인트집 아줌마가 준 말린 애호박과 동네 작가들의 멘토인 주민 최영식씨가 내준 모친의 복을 비는 주문집, ‘남과 같이 해서는 남이상 될 수 없다’는 교훈 글씨 등이 내걸렸다. 중간방과 안쪽 중정 공간에는 공업용 나무틀(목형)에 작업한 13명 작가의 오브제 작업과 그림·판화 작업들이, 지하공간에는 김미련 작가가 갈무리한 길고양이 작가들의 문래동 영상과 전시 기획자 박지원씨가 찍은 오물 퍼내는 사람의 영상이 욕설문자와 합성된 작업들이 나왔다. 따뜻한 색조로 그린 이상권 작가의 문래동 거리 그림과 이곳에 관심 많은 왕년의 참여미술작가인 김정헌·주재환·성완경씨의 그림, 영상들도 내걸렸다. 이포 기획자 박지원씨와 화가, 영상작가 등으로 구성된 준비팀은 문래동 길거리에서 이 전시의 콘텐츠를 캐냈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부터 거리에서 문래동 주민과 철공소 사람들을 붙잡고 끈질기게 따라붙어 대화하고 관계맺으며 얻어낸 기록들이다. 자신과 대화한 철공소 주인, 주민들 30여명의 초상 석판화를 내건 나현정 작가는 “주민들이 바라보는 공공예술에 대해 날것으로 듣고 이야기해볼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공간은 열악하지만, ‘내용증명’전은 근래 미술판에서 보기 드물게 도시 변방의 역동성과 생성의 실체를 포착하려 한 시도를 보여준다. 안쪽 공간에 있는 작가 신해철씨의 설치작품 ‘의자가 있는 집’은 이런 생성의 의미를 단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한명 들어앉을 정도로 좁은 목형 구조물 안에 앉으면 자전거 타는 사람, 철공소 작업 모습 등 문래동 일상의 움직임들을 철사선을 엮어 풀어낸 송기두씨의 공간 드로잉이 코앞에 비친다. 좁은 공간 속에 다닥다닥붙은 인간들 움직임은 그 자체로 삶에 얽힌 절박한 감각을 전해준다. 디자이너 문승영씨는 “문화와 재개발 사이에 놓인 문래동 사람들의 상황을 최대한 그대로 드러낸 점이 좋다”며 “예술이 결국 삶과 같이 논다는 진실을 담은 기획전”이라고 평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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