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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기수를 넘고 넘어 ‘패기 연극’ 쭉~

등록 2015-01-11 19:13수정 2015-01-11 21:31

한국 연극의 기관차로 불리는 연출가 동인인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5기(오른쪽 네명)와 6기 연출가들이 7일 밤 그들의 극장 앞에서 임무를 교대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한국 연극의 기관차로 불리는 연출가 동인인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5기(오른쪽 네명)와 6기 연출가들이 7일 밤 그들의 극장 앞에서 임무를 교대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혜화동1번지’ 6기-5기 한밤 대화
불가에서 ‘의발을 전한다’는 말이 있다. 가사(衣)와 밥그릇 바리때(鉢)를 전하는 것은 ‘스승이 제자에게 깨달음을 전한다’는 뜻이다. 초조 달마에서 육조 혜능으로 의발이 전해지듯, 국내 유일의 연출가 동인인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도 올해 5기에서 6기로 의발을 전했다. 하지만 혜화동1번지의 임무 교대는 다음 기수가 앞 기수를 ‘밟는’ 것이다. 선불교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는(살불살조) 치열한 부정정신을 빼닮았다. “저는 5기 시작할 때 앞 세대를 부정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어요. 1기부터 5기까지를 다 부정하지 않고는 오롯이 6기를 시작할 수 없을 거예요.” 5기의 맏형인 윤한솔(43)은 6기에게 ‘앞 기수를 철저히 부정하라’고 했다. 지난 7일 엄혹한 시대를 닮은 혹한이 젊은 정신을 매섭게 단련시키던 밤, 서울 대학로의 중국집 2층. 5기 동인 5명 중 4명과 6기 동인 6명이 모였다. 회한과 울분, 당부와 다짐을 넘나들며 대화는 ‘차수를 변경하며’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상업성과 거리 두고 실험정신 지킨
‘94년 출범’ 국내 유일 연출가 동인

보안법 페스티벌 등 열었던 5기
“앞 기수를 철저 부정하라” 당부

새출발 6기도 겁없는 다짐 당당
“남 눈치 안보고 ‘꼴리는 대로’”
“세상이 불편해하는 진실 소재로”

■ 5기 “그리운 얼굴로 돌아보라, 성난 젊은이여”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88-1.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라는 간판 아래 어두컴컴한 층계를 내려가면 지하에 극장이 있다. 한때 지하는 비합법의 상징이었다. 이들은 어떤 불온한 꿈을 꾸는가. 혜화동1번지는 소극장이면서 연출가 동인의 이름이다. 기국서, 이윤택, 박근형, 김광보, 양정웅, 김재엽 등 혜화동1번지 동인들을 빼놓고는 한국연극의 지난 20여년을 얘기할 수 없다. 이들은 상업성과 기성 연극의 문법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예술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실험정신이 강한 연극집단이다.

이들의 역사는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국서, 김아라, 박찬빈, 류근혜, 이병훈, 이윤택, 채승훈이 첫 단추를 끼웠다. 경쟁, 속도, 경제논리로부터 자유로운 ‘실험’을 표방하며 첫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그러나 운영에 난항을 겪으면서 휴업 상태에 빠졌다. 이때 나타난 게 2기 동인. 이성열, 박근형, 최용훈, 김광보, 손정우 등 당시 30대 젊은 연출들이 이 소극장을 운영하겠다고 나섰다. 3년간 극장을 운영한 이들은 후배들로 새로운 동인을 구성하고 극장 운영을 넘겼다. 양정웅, 박장렬, 김낙형, 송형종, 오유경, 이해제(이상 3기), 김재엽, 박정석, 김한길, 김혜영(이상 4기) 등이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동인으로 활동했다.

5기 동인이 출범한 건 2011년이었다. 윤한솔, 이양구, 김수희, 김제민, 김한내 등 5명이다. 20년이 다 된 극장은 허름했지만, 그 정신은 허름하지도 낡지도 않았다. “그동안 혜화동1번지는 상업주의와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진지한 문제의식을 견지하며 작업을 해온 전통이 있다. 이는 우리 5기 동인이 계속해서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정신이다. ”(5기 동인 선언문)

과연 그리됐을까? 지난해 이들 ‘성난 젊은이’들은 ‘그리운 얼굴’로 자신들의 활동을 되돌아봤다. 김소연 연극평론가는 5기와의 좌담회에서 “동인 활동도 성장하고 개인도 성장하는 과정이 보인다. 더불어 극장도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5기는 국가보안법을 주제로 내건 동인 페스티벌도 열었고, 동인 페스티벌은 아니지만 ‘재능교육 해고노동자와 함께하는 단막극 페스티벌 아름다운 동행’도 마련해 주목을 받았다.

■ 6기 “한국 연극에 ‘뻐큐’를 날리고 싶어요”

5기 동인은 6기 동인에게 1200만원을 종잣돈으로 넘겨줬다. 아끼고 아껴 후배에게 챙겨준 피 같은 돈이다. ‘혜화동1번지 동인’ 연출가들은 ‘소극장 혜화동1번지’의 운영비와 임대료를 낸다. 5기는 동인 페스티벌에서 발생한 수입금을 공동 기금으로 적립하고 극장의 운영 및 동인제 유지를 위해서 썼다. 이제 막 출범한 6기도 곧 운영방침을 정할 것이다.

혜화동1번지는 직전 기수가 각자 후보를 추천한 뒤, 전원 합의로 다음 기수를 뽑는다. 5기는 모두 4배수 20여명을 추천받아 6명을 선정했다. 바로 신재훈(38), 백석현(35), 구자혜(33), 김수정(32), 송경화(31), 전윤환(29) 연출이다. 6기는 아직 서로 깊은 토론을 하지 않아 공통된 주제를 찾지도 못했다. 하지만 패기는 누구 못지않았다.

“고민은 어떻게 풀든지 간에 넉살 좋게 웃을 수 있는 연극을 하고 싶어요.”(신재훈) “창조적인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창조경제를 말하는) 그분은 창조를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백석현) “남 눈치만 보고 사는데, 여기서는 남 눈치 안 보고 ‘꼴리는 대로’ 해보고 싶어요.”(구자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세상이 불편해하는 진실을 공연으로 자유롭게 하고 싶어요.”(김수정) “이 시대의 위로와 희망이 되는 연극을 만들고 싶어요.”(송경화) “되바라지고 까진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한국 연극에 ‘뻐큐’를 날리고 싶어요.”(전윤환)

이들의 ‘독함’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전윤환 연출은 지난해 9월 페이스북에 “예산도 계획도 없다, 맨땅에 헤딩하자!”며 ‘이십할 페스티벌’을 제안했다. 일주일 만에 단체가 아닌 개인 180명이 모였다. 벽만 쳐다보고 있던 20대의 울분이 멍석을 깔자 구름처럼 몰려든 것이다. 12월18~28일 엄동설한의 마로니에공원에서 야외극을 올렸다. 이십할 페스티벌은 원래 ‘이, 씨팔’이라는 욕에서 거듭 순화해 만든 축제명이다.

이들의 겁 없는 패기를 부추기는 충동질이 나왔다. 5기 윤한솔이다. “여기 혜화동1번지는 ‘거칠고 실험적인 공연이 올라간다’는 딱지가 붙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해도 돼! 뭐 대한민국에서는 모르겠고, 서울에 유일한 공공성이 있는 극장이라고 봐요, 저는.” 5기 이양구가 맞장구를 친다. “우리가 유일하게 잘한 거네요.” 5기와 6기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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