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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피아노에 실린 말코비치 음성 ‘오싹’

등록 2015-01-13 19:45수정 2015-01-13 19:46

14일 서울바로크합주단 50돌 공연
슈니트케 ‘피아노와…협주곡’ 맞춰
소설 ‘영웅들과 무덤에 부쳐’ 낭독
광기실린 목소리 연기…영화 보는듯
존 말코비치는 할리우드에서 성격파 배우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날은 서울바로크합주단과 함께 리허설을 진행했다.
존 말코비치는 할리우드에서 성격파 배우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날은 서울바로크합주단과 함께 리허설을 진행했다.
피아노 건반 위로 육중한 불협화음이 ‘쿵’하고 내려 앉았다. 현악주자들은 금속 줄을 떠받치는 브리지 옆 팽팽하게 날이 선 현을 활로 날카롭게 긁어댔다. 불규칙한 악센트와 튀어 오르는 음의 파편들 사이에 할리우드 성격파 배우 존 말코비치(62)의 느릿하고 오싹한 음성이 끼어들었다.

“눈 먼 자들은 악몽과 망상, 환각, 전염병, 마녀, 점쟁이, 새, 구렁이 등과 같은 모든 어둠의 괴물들을 동원해 세상을 지배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음악당 연습실에서는 이틀 뒤 14일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바로크합주단(새 이름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창단 50주년 기념 특별연주회의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피아니스트 크세니아 코간의 협연으로 알프레드 슈니트케의 ‘피아노와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하는 가운데, 아르헨티나 작가 에르네스토 사바토의 소설 <영웅들과 무덤에 부쳐> 중 세 번째 장(章) ‘장님에 대한 보고서’가 존 말코비치의 내레이션으로 더해졌다. 시적이면서 편집증적인 내레이션, 협화와 불협화가 뒤엉킨 음악은 기묘한 어울림을 빚어내며 듣는 이의 머리카락을 곤두서게 했다. 말코비치가 몸짓 연기 없이 피아노 옆에 서서 목소리만 들려주는데도 눈 앞에 영화 같은 장면들이 펼쳐졌다. 약 30분간의 리허설은 압도적이었다.

이 협주곡은 1979년에 작곡됐지만 내레이션이 더해진 새로운 버전은 이번이 세계 초연이다. 서울 공연 후에는 역시 말코비치의 내레이션과 함께 런던과 베를린에서도 연주된다. 새로운 버전의 음악적 아이디어는 피아니스트 크세니아 코간이, 문학적 아이디어는 존 말코비치가 냈다. 말코비치는 사바토의 원작 소설 영화판권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말코비치는 “2012년 한 페스티벌에서 크세니아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뒤 피아노와 내레이션이 어우러질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며 “크세니아에게서 소개 받은 슈니트케의 <피아노와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으로 여러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음악 작업은 연기에도 도움이 된다”며 “지금까지 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을 합해 7~8회 가량 음악 작업에 참여했는데, 매번 강렬한 영감과 자극을 받았다”라고 덧붙였다.

말코비치는 영화나 연극에서 불안정하고 편집증적인 인물들을 빈번히 연기해왔다. 그런 경험이 내레이션의 주인공 페르난도의 집착과 광기를 표현하는 데에는 도움이 됐을까. 예상과 달리 그는 “내레이션 속 인물을 캐릭터화 하는 것은 연극과 전혀 다르다”며 “작가가 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부분을 잘 구현해내는 것이 이 작품에서의 목표”라고 했다.

14일 서울바로크합주단 창단 50주년 기념 특별연주회는 존 말코비치가 출연하는 슈니트케의 협주곡 외에도 이 악단의 역사와 예술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레퍼토리들로 다채롭게 꾸며진다. 헨델의 오페라 <줄리어스 시저> 중 ‘폭풍에 부서진 배라도’와 모차르트의 모테트 <환호하라, 기뻐하라>(협연 소프라노 서예리)를 통해 바로크와 고전 음악에서의 저력을 드러내고, 지난 1992년 이 악단이 국내 초연했던 츠빌리히의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서주와 변주>를 통해 현대음악의 전파에 앞장서 온 악단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2관 편성 관현악단으로의 체제 개편을 상징하는 슈베르트의 <교향곡 5번 내림나장조>도 연주한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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