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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할망구 치마 속 우주에 보름달 피네

등록 2015-01-15 19:25수정 2015-01-16 07:59

봉산탈춤에서 미얄할미의 춤을 본뜬 박연정의 춤 <망구-그믐달>에서 요강은 조명을 넣으면 태아의 형상으로 변한다. 사진 손준현 기자
봉산탈춤에서 미얄할미의 춤을 본뜬 박연정의 춤 <망구-그믐달>에서 요강은 조명을 넣으면 태아의 형상으로 변한다. 사진 손준현 기자
20일 아르코예술극장 무대 오르는 ‘망구-그믐달’
‘엉덩이춤’이 걸그룹 카라의 전유물은 아니다. 할머니가 엉덩이를 좌우로 흔든다. 실룩샐룩 삐뚤빼뚤. 봉산탈춤에서 미얄할미의 춤 동작이다. 카라의 엉덩이춤이 보름달처럼 부풀어오른 욕망의 발현이라면, 할머니의 엉덩이춤은 그믐달처럼 잦아든 절제의 미학이다. 할머니는 하체를 바짝 낮춘다. 아기처럼 바닥을 긴다. 욕망과 억압의 인생 고비를 넘어온 할머니가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어부바 춤’도 춘다. 여전히 무거운 짐을 진 모양이다.

지난 12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3층 연습실. 서른네 살의 여성춤꾼 박연정이 팔순의 할머니로 변신했다. 오는 20일 이곳 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망구-그믐달> 연습에 한창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젊은 예술가 발굴 프로젝트(AYAF)에 뽑힌 박연정 안무의 작품이다. 망구(望九)는 ‘구십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81살을 말한다. 그냥 ‘할망구’에서 한 자 뺐다고 봐도 된다. 연습실 무대는 특이하다. 스테인리스 요강이 허공에 걸렸다. 뼈대만 남은 우산살도 걸렸다. 우산살엔 어린 소녀, 나무뿌리, 그믐달 형상을 주렁주렁 매달았다. 무대 뒤쪽과 바닥에는 재생종이를 붙이고 깔았다. 우산살에 손전등을 비추면, 소녀 형상 등이 재생종이 위에 나타난다. 소녀가 소년을 만나 사랑을 하고, 전쟁 통에 이들의 사랑이 뿌리처럼 꼬이고, 마침내 그믐달이 나타난다. 그믐달은 할머니의 소멸을 가리키지만, 할머니의 재생과 부활을 상징하기도 한다.

34살 박연정 팔순 할머니 변신
미얄할미 엉덩이춤…어부바춤…
탈춤서 따온 춤에 1인극 성격도
달 생멸 따른 재생과 부활 그려

그런데 조심, 조심! 할머니의 엉덩이춤에 요강이 뒤집힐지 모른다. 박연정은 요강을 깔고 앉는다. 소피를 보는 듯하다. 실제 봉산탈춤에도 꽹과리에 소피를 본다. 소피처럼 빗줄기가 쏟아지길 기원하는 의미다. 요강은 다산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는 요강 속에 전등을 넣었다. 할머니는 치마 속으로 요강을 집어넣는다. 치마 속 요강에서 둥근 빛이 서서히 빛난다. 둥근 빛은 마치 태아처럼 자란다. 배는 점점 부풀어 보름달만 해진다.

아리송하다. 춤이라는 이 작품 <망구-그믐달>은 꼭 연극 같은 느낌이다. 탈춤에서 따온 춤이면서도 1인극적 요소를 갖췄기 때문이다. 장르가 애매한 것은 그만큼 실험적이라는 얘기다. 실험적 성격은 소품들에서 뚜렷하다. 누런 재생종이와 검은 비닐봉투는 산업사회에서 하찮은 존재다. 밀가루 포대 같은 재질의 두꺼운 재생종이는 구기면 구긴 상태로 남는다. 울퉁불퉁한 땅의 이미지로 제격인 셈이다. 검은 비닐봉투는 악기처럼 쓰인다. 박자에 맞춰 부스럭거리는 소리로 연주를 한다. 일회용 비닐봉투는 산업사회에서 쉽게 버려지는 존재를 상징한다. 할머니의 이미지와 놀랍도록 비슷하다.

토이 피아노와 우리 전통노래인 정가도 이색적이다. 안정아가 부르는 정가와 차혜리가 연주하는 토이 피아노는 동심과 그리움의 세계를 불러낸다.

끝까지 남는 궁금증 하나. 젊은 춤꾼 박연정은 왜 할머니 춤을 출까? “어렸을 때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오랫동안 함께 생활했어요. 그래서 할머니 역할이 너무 익숙해요. 나이 든 사람을 늘 관찰하고 동작도 따라 합니다. 할머니 춤으로 관객과 소통하면서, 저는 좀 망가져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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